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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Jul 06. 2018

18. 아버지의 노래

Don McLean, 'Vincent'

어렸을 때, 아버지의 핸드폰으로 전화를 하면 항상 외국 팝송이 흘러나왔다. 기타 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남자의 목소리가 나왔고, "Starry, Starry Night~"으로 시작하는 아름다운 첫 소절은 무슨 뜻인지도 몰랐던 어린 나에게 잊을 수 없는 가사가 되었다.


내가 올드 팝을 좋아하게 된 계기에는 어머니도 계셨지만 아버지의 영향이 꽤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 맥클린(Don McLean), 존 덴버(John Denver), 그리고 남자 테너 3 대장이라고 불리는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otti), 호세 카레라스(Josep Maria Carreras)의 노래들을 아버지를 통해 들으며 조금은 나이에 맞지 않는 취향을 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런 취향을 한 번도 후회한 적은 없다. 어떻게 되었든 내가 듣는 노래들은 친구들이 잘 못 들어본 노래들이 대부분이었고, 맨날 듣는 후크송에 질린 친구들은 내가 추천해주는 올드 팝들을 좋아하곤 했다.


내가 좋아하는 올드 팝은 우선 곡의 구성이 단조로워서 좋다. 지금처럼 가공된 전자음이 섞이지 않은, 악기 고유의 음들을 들을 수 있어서 조용히 있거나 혼자서 집중을 하고 싶을 때 듣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또 음이 죽어라 높지 않다. 요즘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는 친구들을 보면 대부분 엄청난 고음이 포함된 노래들을 많이 부른다. 물론 고음을 완벽히 소화해 낼 때 온몸에 돋는 전율도 좋지만, 잔잔한 노래에서 호수의 잔물결 마냥 천천히 밀려오는 감동도 좋다.



위대한 화가 반 고흐를 기리며, Vincent



Don McLean, 'Vincent'


내가 이 글의 시작에 썼던 노래는 돈 맥클린(Don McLean) 'Vincent'라는 곡이다. 잔잔한 나일론 줄의 기타 소리와 감상에 젖은 목소리가 이 노래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Vincent'는 그가 발매한 최고의 앨범이라고 평가받는 <American Pie>의 3번째 수록곡으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돈 맥클린이 위대한 화가였던 빈센트 반 고흐(Vincent Van Gogh)에게 존경을 담아 만든 노래라고 한다. 가사 또한 서정적이고 조용한 편이라 당시 미국 차트에서는 12위, 영국에서는 1위를 기록했고, 1970년대의 반 고흐 박물관에서는 이 노래가 매일같이 흘러나왔다.


돈 맥클린(Don McLean)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e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별이 빛나는 밤에

팔레트를 푸른색과 회색으로 칠해요.

여름날 밖을 내다봐요.

내 영혼의 어둠을 아는 눈으로


(중략)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이제 나 이해해요.

당신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려 했는지.

온전한 정신으로 살기 위해 당신이 얼마나 고통받았는지.

자유롭게 해주려 얼마나 노력했는지.

그들은 들으려고 하지 않았고, 듣는 법도 몰랐죠.

어쩌면 이제는 들을지도 모르겠네요.


돈 맥클린(Don McLean)


가사의 내용을 이해한 것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지만, 나는 그 어떤 노래를 들어도 이 가사가 가지고 있는 감동을 이끌어내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이미 오래전에 죽은, 만나보지도 못한 화가를 기리며 그를 이해하려 하는 내용의 가사는 한 시기를 수놓은 예술가들이 영혼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는 듯하다.



노래는 <사람>을 통해 살아간다.



어머니랑 같이 동묘에 나갔다가 중고 LP를 파는 가게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LP가 성행했던 시대에 걸맞게 오래된 바이닐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며 벽에 가지런히 꽂혀있었고, 나는 어린이날 선물을 받은 어린이처럼 온 얼굴에 미소를 지으며 바이닐들을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바이닐을 고르면서 내가 좋아하거나 갖고 싶은 바이닐을 먼저 찾는다. 하지만 내가 사고 싶은 게 없을 땐, 마음에 드는 앨범 커버를 보고 즉석에서 유튜브를 이용해서 첫 곡을 듣는다. 이 곡이 내 취향에 맞으면 두어 곡을 더 들어본 뒤에, 앨범을 사기로 결정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내 컬렉션에 들어갈 바이닐들을 찾고 있다가, 어딘가 익숙한 얼굴의 가수가 보였다.


동묘에서 구입한 <The Very Best of Don McLean>. 국내 정발 라이센스여서 한국어 라이너 노트가 들어있다.


바로 돈 맥클린의 국내 라이센스 앨범이었다.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모음집(The Very Best of)'이었지만 - 나는 앨범을 하나씩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 내가 좋아하는 'Vincent', 'Castles in the air'가 들어있는 이 앨범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거기다 보기 드물게 미개봉 상태였다. 아버지가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셨을 때, 나는 아버지가 'Vincent'에 맞춰 노래 부르시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언제 들어도 차분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노랫소리다.


돈 맥클린 이외에도 아버지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를 들으면 나는 그 사람의 이미지보다 아버지의 모습이 먼저 떠오른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어떤 것을 봤을 때 그 사람이 자연스럽게 생각나듯, 노래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을 빌려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글쓴이 / 음악 듣는 기린

소개    / Crate Digger, 어쩌다가 LP의 매력에 빠져버려서 모으기 시작한 게 취미가 되어, 블로그와 브런치를 오가며 음악을 소개해 주는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후에 개개인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들만 골라서 소개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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