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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Aug 09. 2018

24. 나의 방식대로 산다는 것.

Frank Sinatra, 'My Way'

한동안 프랭크 시나트라의 노래가 영화나 광고에 나왔던 적이 있다. 영화 <킹스맨 : 콜든 서클>부터 모바일 게임 광고인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삽입곡까지. 아저씨들이 들을 것이라 생각했던 노래는 이를 통해 젊은 층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삽입곡으로 굉장한 싱크로율을 보여주었다.


'My Way'는 1969년 발표된 노래로, 수많은 시련과 고난 속에서도 자신의 방식대로 묵묵히 걸어온 한 사람의 생애를 담은 노래다. "And now the end is near(이제 끝이 가까워졌네)", "I did it my way(난 내 방식대로 살았다)"라는 가사가 100명 중 1명이 살아남는 게임인 <배틀그라운드>와 잘 맞아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었다.


자 이제 마지막이 가까워졌군.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대하고 있어.
친구,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게 있어.
내가 확신하는 바대로 살았던 삶의 방식에 대해.
난 충만한 삶을 살았고,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며 돌아다녔지만,
그 보다 훨씬 더 굉장했던 것은
난 항상 내 방식대로 살았다는 거야.
...
사랑도 해봤고, 웃기도, 울기도 했었지.
가질 만큼 가져도 봤고, 잃을 만큼 잃어도 봤지.
이제, 눈물이 가신 뒤에 보니,
모두 즐거운 추억일 뿐이야.
내가 했던 모든 걸 생각하니,
부끄러워하지 않는 투로 이렇게 말해도 되겠지.
"아뇨, 무슨 말씀을, 난 달라요. 난 내 방식대로 살았어요."라고
...


노래의 가사는 한 편의 에세이를 보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보며 흘러간다. 여기에 시나트라의 담담하면서도 폭발하는 감정은 이 곡을 '시나트라의 노래'로 만들기 충분했다.


아이돌(Idol)의 원조, 시나트라



아이돌의 어원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프랭크 시나트라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대중음악 중 최초로 '오빠부대'를 거느린 아이돌이었고, 당시 언론들은 시나트라를 <The Idol of the bobby soxers(여학생들의 우상)>이라 말했고, 이후 10대들에게 지지를 얻고 인기가 있는 스타들을 <Teen Idol(10대들의 우상)>이라고 칭하기 시작했고, 이 말이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들어오며 <아이돌>이 되었다.


한 세기를 통틀어 쇼 비즈니스맨의 표상을 보여준 프랭크 시나트라는 그만큼 우여곡절도 많았다. 이탈리아계 이민자라는 이유로 마피아와 연관된 소문도 무성했고, 정치와도 관련되어 곤혹을 치렀다. 또 여자관계도 복잡하여 결혼을 네 번이나 하고, 그런 중에도 세기의 섹스 심벌인 마릴린 먼로와의 스캔들에도 엮였다.


그는 모든 걸 얻어보기도 했고, 모든 걸 잃어보기도 했다. 인생의 굴곡이 정말 심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은퇴를 위한 곡


(좌)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통해 오스카상을 수상했다. (우) 1959년에는 음악계 최고의 상인 그래미 어워즈를 수상했다.


랭크 시나트라는 음악, 영화 등 모든 분야에서 단연 20세기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스탠더드 펍(지금의 재즈 스탠더드)을 확립했고, 이를 통해 재즈를 대중들에게 유행시키는 큰 역할을 수행했다. 그의 잘생긴 외모와 부드럽고도 폭발적인 목소리는 음악 외에도 여러 영화에서 활동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영화 <지상에서 영원으로>를 통해 오스카 상까지 수상하게 되었다. 연기면 연기, 노래면 노래 모두를 잘했던 시나트라가 미국 최고의 인기스타가 된 것은 그리 이상하지 않다.



이런 그의 업적을 기리며, 웅장하고 후회 없는 삶을 산 시나트라를 위해 후배 가수인 폴 앵카(Paul Anka)는 원래 샹송이 될 예정이었던 노래 'My Way'에 영어 가사를 붙여 시나트라에게 헌정했고, 이는 시나트라의 시그니쳐 곡이 되었다.



내 방식대로 살며, 후회하지 않을.


Frank Sinatra, "My Way" 1978년 라이브 영상.


내 방식대로 사는 게 어느새 많이 힘들어졌다. 어떤 일을 하려고 하면 주변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고, 남들이 하는 방식을 따라 안전하게 가려는 모습을 나에게서 많이 보게 된다. 주변에서 대외활동을 하니 나도 해야 될 것 같고, 어느 분야가 유명하니 다른 사람들처럼 그쪽을 따라 공부하는 친구들도 많이 보인다. 물론 취업과 연관되어 있어 뭐라 할 수 없지만, 그런 친구들의 가슴속에서도 꿈틀거리는 자유로운 본성이 있다. 나도 물론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사정과 생각에 따라 더욱 안정된 직장을 찾기도 하고, 돈을 많이 주면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해야 할 때도 있다. 


영화배우 짐 캐리가 마하리쉬 대학에서 한 연설을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제 아버지는 훌륭한 코미디언이 될 수 있었지만, 본인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보수적인 결정으로 코미디언 대신 회계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선택하셨습니다. 하지만 제가 12살 때, 아버지는 직장을 잃으셨고, 저희 가족은 살아남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로부터 훌륭한 교훈들을 많이 얻었는데요. 그중 중요한 하나는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면서도 실패할 수 있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왕이면 하고 싶은 일에 도전하는 것이 낫다' -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영화배우 "짐 캐리", 마하리쉬 대학(MUM) 연설 中


그의 연설을 듣고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한다고 해도 실패할 수 있다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내 방식대로 하는 것이 더욱 후회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이는 굉장히 이상적인 생각이고, 나 또한 굉장한 이상주의자다. 친구들은 나에게 "너 너무 이상적인 거 아니냐"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애구나" 하며 무시하지만, 아직까지는 그래도 이상을 갖고 행동하고 싶은 나이다. 나의 생각은 앞으로 바뀔 수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안될 거야'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실제로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된다면 이런 이상을 추구하는 것이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다. 






글쓴이 / 하고(HAGO) / 前 음악 듣는 기린

소개    / Crate Digger, 어쩌다가 LP의 매력에 빠져버려서 모으기 시작한 게 취미가 되어, 블로그와 브런치를 오가며 음악을 소개해 주는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후에 개개인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들만 골라서 소개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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