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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Aug 17. 2018

25. 코파카바나에서의 완벽한 하루

Coleman Hawkins, <Desafinado>

내가 갖고 있는 꿈 중 하나는 외국에서 꽤 오래 살아보는 것이다. 돈이나 시간적 여유를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말 그대로 생활이다. 그 생활에는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밥을 해 먹고, 커피를 마시면서 여유롭게 있다가 운동을 하고 싶을 때에는 운동을 하고, 글을 쓰고 싶을 때는 글을 쓰는 것이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할 수도 있지만, 로또 당첨을 바라는 것과 같으니 그저 허무맹랑한 백일몽 정도라고 생각해준다면 좋겠다.


일단, 위치는 저 브라질 쪽이 좋다. 브라질이 아니더라도 남미면 좋다. 그래도 이왕이면 브라질이 좋겠다. 내가 텔레비전이나 유튜브로 봐 왔던 브라질은 정열적인 동시에 여유롭다. 물론, 치안적으로는 좋지 못하는 소리를 많이 들었지만 내 상상 속의 브라질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뜨거운 태양처럼 타오르는 정열을 가득 품고 살며, 쉴 때에는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노을을 바라보며 모래밭에 편한 자세로 누워 술을 마시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코파카바나 해변이 있는 리우데자네이루는 범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한다. 내 생각만큼 여유롭거나 한적하지는 않을지도 모르겠다.)


구글 어스에서 찾은 코파카바나의 위치. '그리스도 구속자' 동상 기준으로 오른쪽에 위치해있다.


아무튼 다시 꿈으로 돌아와서, 나는 코파카바나 해변이 보이는 전망이 좋은 단독주택을 계약한다. 한 달이어도 좋다. 좋으면 연장을 하면 되니까. 왜 코파카바나라고 물어본다면 그냥 정한 거다. 베리 매닐로우(Barry Manilow)의 'Copacabana'라는 노래를 듣고 그렇게 결정했다.(하지만 노래에 나온 Copacabana는 미국의 나이트클럽을 의미한다.)


코파카바나에서의 하루.


아침에 일어난 나는 원두커피를 내린다. 커피의 종류는 상관없다. 유명한 커피 체인점에서 원두를 고를 수 있다고는 하지만 원두에 따라서 맛을 구별할 수 있을 정도로 커피에 조예가 깊지 않다. 그저 커피 향이 진하고 아침잠을 깨워줄 수 있을 정도면 딱 좋다. 아침으로는 스크램블 에그와 빵을 두, 세 조각 먹는다. 요리하는 내내 스마트폰으로 넷플릭스를 본다. 한 편 정도 보고 나면 아침식사가 끝나고, 부지런한 아침을 맞이한 나는 뿌듯하게 소파에 앉아 책을 읽는다. 스티븐 킹의 소설을 조금 읽다가 질리면 TV를 본다. 이 두 가지 만으로 부지런했던 아침도 금방 끝나버린다.


오후는 조금 바쁘다. 점심을 차려먹고 난 뒤에는 설거지를 해 두고 미리 저녁 먹을 준비를 마친다. 밥을 해놓거나, 와서 바로 요리할 수 있게 준비를 해야 한다. 준비가 끝나면 서핑을 하기 위해 해변으로 나간다. 내 피부는 이미 검게 그을렸지만 건강을 위해 선크림을 발라준다. 물에 빠지고, 서핑을 하다 보면 두, 세 시간이 훌쩍 지난다. 그럼 해변에서 친구들과 이야기를 조금 나누고 집으로 돌아온다. 샤워를 마치고 잠시 침대에 누우면 4시가 된다. 아직 저녁을 먹기 전까지는 2시간이 남았다. 나는 방 한쪽에 놓인 바이닐들 중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 <Desafinado> 앨범을 고른다. 일정하게 흔들리며 박자를 맞춰주는 쉐이커 소리에 지는 해처럼 묵직한 베이스, 거기에 나른한 오후의 분위기를 닮은 테너 색소폰 소리를 들으면서 잠깐 동안 잠에 든다. 해는 천천히 지고 있고, 열어놓은 창문에 걸어둔 풍경이 조용하고 맑게 울려 퍼진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잠이 들었다가 일어나서는 저녁을 만든다. 뭘 해야 좋을지 모를 때는 고기다. 스테이크를 굽자. 어딘가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나온 찹스테이크를 만든다. 저녁 시간이 되자 친구들이 집에 방문한다. 노랫소리를 적당히 줄이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며 식사 준비를 마친다. 친구 중 술을 좋아하는 친구가 사 온 와인도 한 병 따고, 맛있게 식사를 한다. 식사를 하면서 하는 이야기들은 다 평화로운 이야기들 뿐이다. 날도 시원하고, 좋은 음식과 술에 좋은 사람들까지 있으니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나더라도 이 분위기를 망치고 싶지 않아 마음속에 고이 접어둔다. 


옆집 아저씨가 기르던 유부남 강아지가 다른 집 강아지와 바람피우는 걸 본 이야기를 듣거나, TV에서 본 웃긴 장면을 시시하게 따라 하는 모습을 보며 조금만 웃겨도 술기운에 크게 웃는다. 이런 이야기는 8시가 넘어서까지 계속된다. 헤어지기 아쉬워하며 자리를 일어나는 친구들을 배웅해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서는 정리를 한다. 로봇 청소기를 돌려놓고, 설거지를 한다. 깨끗하게 설거지가 끝나면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내다 놓는다. 시간은 벌써 9시다.


나는 코파카바나의 밤바다가 보이는 책상 앞에 앉아서 글을 쓴다. 일기도 좋고, 소설도 좋다.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쓴다. 친구들을 만나면 머리가 맑아지고, 글로 쓰고 싶어 지는 이야기들이 머리 속에서 파도처럼 밀려온다. 나는 그 파도들이 바위나 다른 파도에 부딪혀 부서지기 전에 얼른 글로 옮긴다. 그렇게 두 시간 정도 앉아 글을 쓰고는 침대로 들어간다. 침대 맞은 편의 TV에서 넷플릭스를 켜 아침에 보았던 드라마의 다음 편을 본다. 이런, 주인공이 스파이라는 것이 들키면서 끝났다. 다음 편이 궁금하지만 내일 아침에 봐야 되기 때문에 얼른 잠에 든다. 꿈속에서 나는 자기 전에 봤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숙련된 요원처럼 적들 사이를 교묘하게 빠져나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건물이든 차량이든 폭발해버리고 나는 그 앞에서 여주인공과 키스를 나눈다. 좋은 꿈이다.



마음속에 머무르는 풍경 속에 산다.



살다 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많이 겪기 때문에 좀처럼 내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많다. 다른 사람이 좋다고 해서 해 봤는데 막상 나에게는 별로인 일들도 많고, 전체적으로는 좋았지만 한 부분씩은 마음에 안 드는 일들도 있다. 그만큼 '완벽'한 하루를 만들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런 꿈의 세상은 언제나 완벽하다. 사람들은 친절하고, 날씨는 좋고, 음식은 맛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루 종일 해도 된다. 완벽하기 그지없을 테니까.


매일 이런 상상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씩 모든 일이 정말로 안 풀릴 때에는 어딘가로 떠나버리고 싶다. 하지만 여러 가지 문제점들 - 그러니까 비용, 치안, 시간적 여유 등 - 을 고려해 나는 이렇게 무일푼으로 떠날 수 있는 코파카바나로 떠나곤 한다. 하지만 단순히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것 만으로는 뭔가 약하다. 시원한 바닷소리가 들리는 것도 아니고, 해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럴 때는 음악을 이용한다.


Colman Hawkins, 'Desafinando' 


오늘 떠났던 코파카바나의 하루에서는 콜맨 호킨스(Coleman Hawkins)의 <Desafinado> 앨범이 나온다. 'Desafinado'는 보사노바의 아버지라는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빙(Antonio Carlos Jobim)이 만든 곡이다. 빠른 삼바에 재즈를 결합시켜 만들어진 보사노바를 선도했던 그는 브라질의 음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부모님 세대라면 아실 수도 있는 원조 보사노바 아티스트다. 


콜맨 호킨스의 'Desafinado'는 이런 조빙의 노래를 테너 색소폰과 결합시켜 1962년도에 녹음한 곡이다. 조빙의 노래처럼 가사가 있지는 않지만, 색소폰의 중후한 멜로디는 가사를 듣는 것 못지않게 귀에 잘 달라붙는다.


Antonio Carlos Jobim, 'Desafinado'


보사노바의 뿌리가 삼바에서 나온 탓에 음악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브라질의 향을 물씬 풍긴다. 조미료를 조금 더 뿌리자면 모든 브라질의 라이브 클럽에서 보사노바를 연주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자연스럽게 나온다.


가끔씩 모든 일이 안 풀리는 것 같이 힘들고 지칠 때에는 자신만의 장소를 상상하며 노래를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인터넷은 넓고 많은 나라의 음악을 들어볼 수 있다. 북유럽 쪽이 취향이라면 켈트 음악을 들어봐도 좋고, 쿠바를 좋아한다면 쿠반 재즈를 들어도 좋겠다.




오늘의 음반

Coleman Hawkins, <Desafinado>


Doxy Records에서 발매된 콜맨 호킨스의 <Desafinado> 클리어 바이닐로 제작되었다.






글쓴이 / 하고(HAGO) / 前 음악 듣는 기린

소개    / Crate Digger, 어쩌다가 LP의 매력에 빠져버려서 모으기 시작한 게 취미가 되어, 블로그와 브런치를 오가며 음악을 소개해 주는 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후에 개개인의 취향을 저격하는 음악들만 골라서 소개해 주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여러 생각들을 글로 정리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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