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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Apr 08. 2018

03. 재즈, 하드 밥(Hard Bop), 완벽

Art Blakey, 『Moanin'』

재즈는 계속해서 변화해가는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재미있는 장르이다. 대게 그 주기는 10년을 주기로 변화가 되는데, 대중적인 것이 유행할 때에는 예술성을 고려하고, 그 반대가 될 때에는 마찬가지로 대중을 의식한다. 이런 주기를 가지고 계속해서 변화한다는 것은 재즈를 즐기는 대중들과 호흡한다는 의미도 된다.


모던 재즈의 틀을 제시한 비밥(Bebop) 재즈


오늘 소개하고 싶은 시대는 1950년대로, 하드 밥(Hard Bop)이 주를 이루던 시대였다. 비슷한 주기로 유행이 변하다 보니 재즈의 종류를 나누자면 수십 가지가 있겠지만, 1940년대부터 뉴욕에서 성장하던 비밥(Bebop)은 댄스용으로 쓰이던 스윙 재즈를 예술적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스윙 재즈에 비해 복잡한 화성빠른 템포, 격렬하고 난해한 즉흥연주로 인해 대중들의 호응을 끌지는 못했다.  반면 비밥에서 태동한 쿨 재즈(Cool Jazz)는 백인 재즈라고 불리며 웨스트 코스트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다.

(말이 백인 재즈일 뿐 쿨 재즈 아티스트로 마일즈 데이비스가 중요 인물로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참 아이러니하고 대단하다. 마일즈 데이비스는 비밥이 주를 이룰 때, 비밥의 편성과는 다른 9중주로 앨범을 녹음했는데, 그 앨범의 이름이 <Birth of the Cool>이다.)


쿨 재즈를 이끌었던 Miles Davis.


어쩌면 비밥이라는 장르에서는 대중들과의 호흡을 크게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당시 대중들이 듣기 좋아하는 재즈는 곧 스윙 재즈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대로 대중들이 좋아하는 음악만 했더라면 비밥이라는 장르가 생긴 의미도 없어졌을뿐더러, 후에 '모던 재즈'로 불리는 더욱 많은 장르의 재즈들이 발전할 수 있는 기회 또한 없었을 것이다.


마일즈 데이비스, 빌 에반스 같은 연주자들의 쿨 재즈가 화려하고 열정적이었던 비밥과 반대로 잔잔하고 애절한 감성으로 대중들의 인기를 얻자 비밥을 연주하던 흑인 연주자들은 자극을 받아 변화를 도모하기 시작한다.


바로 하드 밥(Hard Bop)의 탄생이었다.


하드 밥은 대체적으로 쿨 재즈와 대립된 개념으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하드 밥대중적이고 친숙한 요소들이 비밥에 비해서 많은 편인데, 이는 대중들에게서 멀어진 재즈를 다시 함께하는 재즈로 만들기 위한 흑인 연주자들의 노력이었다. 하드 밥은 비밥에 비해 더욱 강렬하고 자극적이지만 연주에 있어서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는데, 비밥이 그동안 복잡하고 아슬아슬한 즉흥연주가 특징이었다면 하드 밥은 이러한 기교보다는 개연성 있고 안정적인 진행을 꾀했다.


둘의 연주 방식과 분위기가 달라서 서로 대립한다는 표현을 많이 쓰지만 나는 두 장르 모두 재즈로서 서로 상호 보완하며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더 좋다.

둘 중 어느 한 장르라도 없었으면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이 두 세명씩은 사라졌을 테니까.


또한 그동안 멜로디 파트들에 한정되어있던 즉흥 연주에서 벗어나 베이스와 드럼 같은 리듬 파트 역시 즉흥 솔로를 통해 전체적인 음악과 어울리는 연주를 했어야 했는데, 이것을 인터플레이(Interplay)라고 부른다.


그래서 연주를 듣다 보면 지금까지의 연주들과는 다르게 악기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예전에는 모든 세션의 악기들이 함께 어우러져 한 가지 주제를 연주했다면, 인터플레이를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각각의 악기들이 주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느낌으로 연주가 진행된다. 덕분에 연주의 밀도가 더욱 높아졌다는 생각도 든다.


하드 밥 재즈의 선두주자


여러 자료를 찾아보고, 이야기들을 들으면 하드 밥의 시초로 빠지지 않고 거론되는 인물이 두 명 있다.

바로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아트 블래키(Art Blakey)이다.

왼쪽이 호레이스 실버(Horace Silver), 오른쪽이 아트 블래키(Art Blakey)

호레이스 실버재즈 피아니스트로 아트 블래키와 함께 재즈 메신저스(the Jazz Messengers)를 조직해 활동하면서 하드 밥을 널리 알리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재즈 메신저스는 재즈 역사에서 이름을 널리 알린 연주자들을 많이 배출한 아티스트들의 요람이라고 생각하면 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하지만 오늘은 호레이스 실버는 나중으로 미뤄두고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스(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왜 바로 아트 블래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고 비밥에서부터 구구절절 설명했냐고 물어본다면, 아트 블래키가 하드 밥의 거장이라는 말을 그냥 하는 것보다는 하드 밥이 어떻게 생겨났고, 그다음에 왜 아트 블래키가 엄청난 사람인지를 설명해 주는 것이 더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 남을 것 같아서였다.


오늘은 전과는 다르게 추천곡이 딱 한 곡이다. 하지만 10분짜리 곡이니 글을 다 읽어도 충분히 감상할 시간이 있을 것이다.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 - Moanin'

https://youtu.be/Cv9NSR-2DwM


아트 블래키와 재즈 메신저스를 대표하는 곡을 뽑자면 누구나 Moanin'을 예로 든다.

아트 블래키가 직접 작곡한 이 곡은 그의 아이덴티티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그의 플레이 스타일을 많은 사람들에게 각인시켰고, 사람들은 그의 스타일을 좋아했다. 이 곡은 40년 이상 지속되는 재즈 메신저스의 타이틀곡 같은 역할을 하면서 매 번 멤버가 바뀔 때마다 새로 녹음되고는 한다. 멤버들이 바뀌면 새로운 느낌의 Moanin'이 생겨나고, 이를 비교하면서 듣는 것도 재미있는 경험이 된다. 특히 아트 블래키는 밴드 내에서 특정 멤버에게 음악 감독의 권한을 일임하는 운영방식을 통해 상대의 음악을 인정해주었기 때문에 같은 곡이어도 감독에 따라 전혀 다른 개성을 가진 노래가 나올 수 있었다.


끝까지 재즈의 정신을 살다 간 예술가


Art Blakey, 1963.


재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모를 수도 있지만, 사실 아트 블래키는 서울에서 내한공연을 했던 적이 있다. 이때 한국의 재즈 뮤지션 1세대인 류복성 씨와 만났던 일화가 전해지는데, 1967년 겨울, 아트 블래키와 그 밴드 멤버들이 한국에 내한하자 그들의 팬이고, 또 재즈 1세대였던 류복성 씨는 그들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어서 스테이크를 먹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는 다르게 아트 블래키는 스테이크 대신 햄버거를 먹자 했다고 한다. 아마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을 보고, 그 안에서 재즈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한국의 재즈 뮤지션들에게 해주는 나름의 배려는 아니었을까.


공연은 서울시민회관(현 세종문화회관)에서 진행이 되었는데, 공연장에 들어온 아트 블래키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공연을 하면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많던 사람들이 맨 앞 한 줄도 채워지지 않은 것이다. 당시 한국은 공연장 시설도 미비했고, 재즈를 듣는 사람은 더욱 찾기 힘들었다. 날씨가 추워서 무대 위에 난로를 가져다 두고 공연을 할 정도였는데, 이를 본 아트 블래키는 진을 한병 주문해서 마신 뒤,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에게 신청곡을 받아서 연주를 해주었다고 한다.


드럼을 치는 모습이 매우 유쾌해 보인다.


이와 더불어 그의 마지막 공연에 대한 일화는 온몸에 소름이 돋게 만든다.

1990년대 일본에 아트 블래키가 공연을 온다는 이야기에 수많은 재즈 팬들의 가슴이 두근거렸다. 당시 아트 블래키의 몸 상태는 많이 좋지 않은 상태였는데, 그는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쓰러져서 병원으로 실려갔고, 의사로부터 공연을 속행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병원에 누워있는 도중, 그는 일본으로 공연을 와 있던 또 다른 거장 '디지 길레스피'의 전화를 받게 된다.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는 모르지만 이는 아트 블래키에게 큰 힘이 되었고, 그는 결국 예정대로 공연을 진행하기로 했다.


그가 공연장에 올라왔을 때, 그는 서 있을 기력조차 없어 보였다고 한다. 속된 말로 시체 같아 보이는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연주를 할 수 있을까?'하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연주가 시작되고 나서 아트 블래키는 드럼이 폭발할 정도로 강렬한 연주를 보여주었다고 한다. 마치 꺼져가는 재즈의 불씨를 되살리려는 듯이. 공연은 아무 탈 없이 끝났고 사람들의 환호에 그는 정열적으로 객석을 향해 인사를 해 주었고, 모든 것이 끝났다. 하지만 무대 뒤로 들어온 아트 블래키는 바로 실신해버리고, 당시 그의 옷은 땀과 오줌으로 완전히 젖어 있었다고 한다.


그 공연이 있고 한 달 뒤, 그는 고국에서 숨을 거둔다. 마지막까지 재즈의 거장다운, 재즈를 위한 삶이었다.



이 곡을 처음 들었을 때는 대학교 1학년 때였다. 한창 친구들하고 성인의 특권이었던 술을 마시러 다닐 때, 친구의 추천으로 재즈 바 같은 곳에 갔던 적이 있다. 홍대입구 쪽 술집이었는데 라이브 연주도 가끔 하는 듯 스테이지에 드럼과 엠프들이 놓여있었다. 나는 술은 많이 마시지 못하지만 그런 분위기 자체는 좋아했다.

Moanin'의 첫 도입부인 바비 티몬스피아노 인트로가 당시 약간 어수선하던 바 내부의 공기와 어우러져서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냈다. 바 내부는 무척 어두웠고, 무드 있는 주황색 등이 천장에 듬성듬성 매달려 있었다. 나중에야 이 노래가 아트 블래키의 노래라는 것을 알았고, 그로부터 수 백번은 들어보았다.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Moanin'의 피아노 인트로와 연주하는 동안 보여주는 각 악기들과의 인터플레이수많은 재즈 곡들 중 꼭 들어봐야 하는 명곡이라고 생각한다.


블루노트사 Art Blakey & the Jazz Messengers의 리이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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