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서울무드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고 May 30. 2020

솔직히라는 말은 언제나 설렌다.

#서울무드, 첫 번째 이야기. 솔직함이 주는 간질거림

나에게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말을 골라보라고 한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솔직히'라는 말을 고를 것 같다.

이 말 뒤에 누군가를 험담하거나 하는 것이 나와서는 안된다. 순전히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못한 무언가를 나에게 말해준다는 느낌에서 이 단어는 둘 사이의 벽을 허무는 기능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특히 연애를 하기 전, 상대방과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솔직히'라는 말을 들으면 마음 한 구석이 간지러워 온 몸이 부르르 떨릴 것만 같다. 너무 자주 남발하는 것은 좋지 않지만, 가끔씩 써준다면 상대방과의 거리를 확실히 좁힐 수 있는 단어. 난 이 단어를 좋아한다.


노들섬, Nikon F3, Kodak Proimage 100, 2020


친했던 여자 사람 친구인 A는 햇살이 아주 강했던 여름, 카페에 앉아 나와 수다를 떨면서 이런 말을 했다.

"'솔직히'라는 말 좋아해?"

"나는 다른 말 보다 솔직히라는 말이 가장 좋은 것 같아. 일단 단어의 의미로 보자면 거짓은 없고, 뭔가 둘만 아는 이야기가 생긴 것 같잖아?"

처음에 나는 동의하지 못했다. 그게 그렇게까지 좋아할 만한 단어인가? 오히려 '좋아해'나 '사랑해' 같은 단어가 조금 더 그 나이대에 맞는 좋아하는 단어가 되지 않을까?


"아냐 그런 직설적인 말보다는, 오히려 이런 쪽이 고급적인 작업 멘트라고 볼 수 있다고"

이미 우리는 어른이었지만 단호하게 말하면서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A를 보니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A로 말할 것 같으면 일 년에 남자 친구를 네다섯 번이나 바꾸는 친구로, 이상형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연애를 처음 시작할 때 도움을 많이 받은 친구였기에 이런 말에도 묘한 설득력이 있었다. 도대체 얘는 어떻게 남자들을 그렇게 많이 만나고 다니는 걸까. 그런 그녀가 헤프다기보다는 부러웠다. 나에게 그런 능력이 있어도 아무 사람이나 만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어떤 특정한 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만이라도 A의 능력을 조금이라도 받고 싶었던 적은 있었다.


'솔직히'에 대한 이야기는 끝나고 다시 시답잖은 주제로 넘어가다가 갑작스럽게 A가 물었다.

"솔직히. 솔직히 말해봐. 나 여자로 봤던 적 있어?"

"뭔 미친 소리세요. 커피가 잘못됐나?"

실은 이보다 더 심한 말을 했지만, 확실히 솔직히라는 말에는 나도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을 간질거리는 힘이 있었다. 오랜만에 바뀐 헤어스타일을 보고 그랬는지, 혹은 얇은 체인 팔찌를 살랑살랑 흔들어대던 얇은 손목 때문이었는지, 혹은 갑작스러운 약속은 잡지 않던 A가 갑자기 약속을 잡았기 때문인지는 아직도 모른다. 하지만 '솔직히'라는 말을 듣게 되는 순간, 마법처럼 누군가 내 마음을 손 끝으로 살살 약 올리듯 간지럼 태우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솔직히'라는 말을 좋아하게 된 것은 A 때문인 것이 분명하다. 지금은 서로 바빠지고 연락도 오래 하지 않아 자연스럽게 뜸해졌지만, 이따금 '솔직히'라는 말을 누군가에게 들으면 A의 생각이 날 때가 있다. 보고 싶다거나 하는 느낌이 아닌, 나에게 그 단어의 감정을 가르쳐준 사람으로서 말이다.  



/



서울무드에 나오는 사진은 하고필름(@hago.film) 인스타그램에서 나온 사진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을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시면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서울무드>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서울무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