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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 Jun 02. 2020

안녕하세요,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서울무드, 두 번째 이야기. 초상권(肖像權)은 어려워.

사진을 찍다 보면 찍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장면들을 볼 때가 더러 있다.

풍경이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게는 사람에게 있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할 때가 더 많다. 그럴 경우에는 어떻게 할지가 고민이다. 사람이 나오게 찍어야 하나, 아니면 찍지 말아야 하나.


사진 커뮤니티에서는 이전부터 쭈욱 도촬에 대해 굉장히 민감하게 생각한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 한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공공장소에서의 촬영이 금지되어 있지는 않다. 이는 미국도 마찬가지다. 미국 스트리트 포토그래퍼들의 유튜브 영상을 보면 지나가면서 처음 보는 사람에게 카메라를 들이댄다. 하지만 그냥 아무 말 없이 지나간다. 물론 그중에는 기분 나쁘다고 찍지 말라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대게는 그렇다는 것이다. 댓글에서 초상권을 운운하는 사람도 없고, 그 사람이 찍어서 올리는 사진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감상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조금 다르다. 찍히는 당사자보다 보는 사람들이 유독 불편해한다. 대게는 도촬에 대해 경각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죄인 '도촬'은 그 대상에게 정신적 혹은 물질적 피해를 주기 때문에 당연히 금지되어야 하고, 처벌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흔히 예전에 지하철에서 많이 나왔던 치마 속으로 카메라를 넣어 사진을 찍는 것은 확실히 범죄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데 있어서 사람이 빠진다면 우리가 찍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남을까. 삶이 살아 숨 쉬는 모습은 당연히 없고, 그저 꼿꼿이 서 있는 빌딩. 들판에 피어있는 꽃 등만 찍게 될 것이다. 그래서 한 때는 '아 나도 미국에서 사진을 찍어보고 싶다.'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이것저것 신경 쓸 필요 없이 그냥 돌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것이 무엇이 나쁠까. 나는 범죄를 저지르고 싶은 것이 아니라, 그저 내가 보는 풍경을 찍고 싶을 뿐인데.


현행법상 누군가 내가 찍은 사진에 나왔을 때, 이로 인한 피해는 본인이 입증을 해야 한다. 어느 누가 사진을 보고 특정인이라는 걸 알아볼 수 있어야 하고, 사진을 찍은 사람이 특정 인물의 명예를 실추시킬 의도가 있었는지, 더 나아가 이미지 내에서 얼굴을 알아볼 수 있는 크기로 나왔는지, 금전적 피해를 발생시켰는지 등. 생각을 하자면 굉장히 복잡해진다.


결국, 나는 이에 맞춰 나 나름대로의 기준을 세우기로 했다.

1. 사람의 정면 얼굴이 다른 사람이 식별 가능할 정도로 크게 나올 때에는 미리 양해를 구하고 사진을 찍을 것.
2. 그 사람이 누구인지 특정 불가능한 사진의 경우에는 그냥 찍을 것. (뒷모습, 혹은 멀리 떨어져 있어 신체적인 특징을 통해 누구인지 확정할 수 없는 사진)
3. 그 사람의 얼굴이 나오는 경우 반드시 현상, 스캔 후 이메일이나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보내줄 것.


나는 이 기준을 반드시 지키면서 촬영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이 불편한 것도 싫었지만, 내가 그런 의심을 받는 것조차 싫었다.


하지만 오히려 이렇게 규칙을 정해두고 사진을 찍게 되니 마음이 훨씬 편해졌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보고, 안된다고 하면 그냥 '아 이 사진은 그냥 찍으면 안 되겠구나' 하며 넘겼다.

우연히 처음 만난 사람과 대화를 해 볼 기회도 생기고, 생각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도 했다.


특히 이번 노들섬에서 만난 Jerry와 Kathy의 사진이 무척 마음에 드는데, 둘은 해가 쨍쨍한 날에 노들섬에 캠핑의자를 놓고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저 멀리서 봐도 외국인인 것이 확연히 티가 났다. 강 건너 높은 빌딩들과 한강을 마주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와! 센트럴 파크..!'라고 외칠 뻔했다. 이 장면을 꼭 찍고 싶었다.


만약 내가 뒷모습만 찍었다면 Jerry와 Kathy에게 말을 걸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 날은 날씨 상으로도 너무 완벽한 날이었길래 나는 이 부부의 모습을 모든 각도에서 담아보고 싶었다. 결국,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조심스럽게 두 부부에게 다가갔다. 될 대로 되라지.


나 / "Excuse me..(실례합니다..)"

Jerry / "Hi! Good day! How are you?(안녕하세요! 좋은 날이네요 오늘 어때요?)"

나 / "Fine!, actually... perfect!(좋아요! 솔직히... 완벽해요!)"

Jerry / "How can I help you?(뭘 도와줄까요?)"


아무래도 내가 카메라를 들고 서 있으니 대략적으로는 사진을 찍는 사람이라고 느꼈을 것 같다. 나는 혹시 영어가 틀릴까 걱정하며 천천히 말을 했다.


나 / "umm... I'm amature film photographer. if you okay, can I take your photography? you two are so amazing(음... 저는 아마추어 필름 사진가인데요. 혹시 괜찮으시다면 사진 찍어도 될까요? 두 분 너무 멋있어요.)"

Jerry / "Why not?(왜 안돼? 당연히 되지!)"


사진을 허락받았을 때의 짜릿함이란..!

나는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둘의 모습을 촬영할 수 있었다.

* 다음의 사진들은 둘의 허락을 받고 찍은 사진들이다.


Jerry and Ketty, Zenzabronica SQ-A, Kodak Portra 160, 2020





Jerry and Ketty, Zenzabronica SQ-A, Kodak Portra 160, 2020





Jerry and Ketty, Zenzabronica SQ-A, Kodak Portra 160, 2020



한 롤에 20000원이 넘는 중형 필름을 모두 이 둘을 위해 사용했는데도 하나도 아깝지가 않았다. 나는 다시 Jerry에게 가서 말했다.


나 / "Thank you! It's over and I want to send your pictures when It is developed. can you tell me your e-mail address? (고마워요! 두 분 사진은 다 찍었고, 현상이 되면 이 사진들을 보내주고 싶어요. 혹시 이메일 주소 알려주실 수 있어요?) "


영어가 맞았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다행히 Jerry는 찰떡같이 알아듣고 자신의 이메일 주소를 알려주었다.

물론 나는 사진이 나오자마자 보정한 후 그에게 메일을 보냈다. 그리고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사진이 올라갈 인스타의 주소도 첨부했다. 그리고 하루 뒤, Jerry 에게서 답장이 왔다.



Jerry에게서 받은 답장의 내용



"안녕 건희. 네 사진은 아주 좋아. 내 생각에 너는 사진에서 장래성이 보이는 것 같아. 우리가 가치 있는 피사체라고 생각해줘서 고마워. 너 같은 사람들은, 우리가 한국에서 사는 것을 매우 좋아하는 이유야. 행운을 빌며. Jerry & Kathy"


이 답장을 받고는 하루 종일 기분이 좋아졌다. 장래성이 보인다던지 하는 말보다는 오히려 그들이 한국을 좋아하는 데에 한몫을 했다는 것에서 기분이 좋았다. 지나가던 처음 보는 아마추어 사진사에게 사진을 찍혀주고, 또 그에 감사하다는 말을 이렇게까지 보내주는 모습을 보면서, 언젠가는 먼저 사람들이 와서 찍어달라고 할 정도로 잘 찍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러기는 매우 힘들겠지만.


사진을 찍을 때에 사람이 들어가 있으면 좋은 의미로 굉장히 꽉 찬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몇몇 사람들은 자신이 사진에 나온다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낄 수도 있다. 이는 중요하고, 나도 그들의 의견을 존중한다. 하지만 초상권이라는 문제는 아직도 너무 어렵다. 뭔가 명확한 부분이 없기 때문에 그런 걸 수도 있겠다. 그러니 최대한 찍는 사람인 내가 조심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말 찍고 싶은 장면이 또 생긴다면, 나는 아마 또다시 이번처럼 달려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안녕하세요, 혹시 괜찮다면 사진 좀 찍어도 될까요?




/



서울무드에 나오는 사진은 하고필름(@hago.film) 인스타그램에서 나온 사진들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사진을 보시고 싶으신 분들은 인스타그램 팔로우를 하시면 주기적으로 올라오는 <#서울무드> 시리즈를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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