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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Jun 10. 2022

원숭이 엉덩이

고장 난 바이올린을 타면 깐따삐야에 간다_17

한국에서 나고자란 사람이라면 어릴 적에 거의 세뇌되다시피 부르던 노래가 있습니다.

아마도 소절을 보자마자 무의식적으로 라임이 떠오를겁니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 /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 길면 기차

기차는 빨라 /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 높으면 백두산

백.두.산


이 노래에 심오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사실이라고 무작정 믿는 많은 것들의 패턴이 이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사실, 현실, 실재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들도 까놓고 보면 이런 과정입니다. 오감으로 포착한 것들을 추론해서 사실이라고 부릅니다. 원숭이 엉덩이가 일련의 추론을 통해 백두산에 이른 것처럼요. 원숭이 엉덩이가 백두산이 되는 과정이 뭐 대단할 것도 없고 원숭이 엉덩이와 사과도 상관이 없고 사과와 바나나도 상관이 없습니다. 또 원숭이 엉덩이 전에는 무엇이었는지 고민하는 것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여기까지는 고개를 끄덕끄덕 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가 사실이라고 부르는 것들 역시 이러한 몇 단계의 과정을 (아주 빠르게) 거쳤을 뿐입니다. 사실이라는 것이 사실, 절대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이름으로 부를 뿐입니다. 백두산이 무슨 결론이 아니듯이 사실이라는 것도 더 이상 의심 불가능한 끝이 아닙니다. 그저 하나의 생각입니다. 사실이라고 부르는 생각, 현실이라고 부르는 생각, 실재라고 부르는 생각, 있음이라고 부르는 생각일 뿐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대부분 납득이 안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바로 앞에 있는 물건을 두드리며 반문합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컵도 들고 책상도 두드리고 벽도 쳤습니다. 컵을 들어 "이렇게 만져지잖아요?", 책상을 탁탁 두드리며 "이렇게 딱딱한데요, 이건 느껴지는데 생각은 아니잖아요?" "이건 객관적으로 사실 아닌가요?" 혹은 "그러니까 이게 없다고요?" 


있음, 사실, 실재라는 개념을 흔들고 이것이 생각일 뿐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자연스레 잡는 개념은 바로 '없음'입니다. 없음이 이해가 안 가서 너무너무 답답합니다. 그런데 있음을 버리고 없음을 잡으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있음을 깨라는 건 있음이라는 단일상, 절대상을 깨면 그뿐, 없음이라는 상을 다시 잡아서 납득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등에 진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쉬라는 것인데... 그 짐만 내려놓으면 될 뿐인데 다른 짐을 다시 지려고 합니다. 


만져지면 있어/ 있으면 보여

보이면 진짜/ 진짜이면 사실

사실은 실재 / 실재는 현실

현.실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라는 노래처럼 '만져지면 있어'로 시작해서 '현실'로 귀결되는 노래가 인간의 머릿속에, 수능 금지곡처럼 무한반복 재생되고 있습니다. 그 노래를 한 번만 꺼보세요. 그리고 현실이라는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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