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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Jul 14. 2022

견월망지

고장 난 바이올린을 타면 깐따삐야에 간다_23

깨달음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들은 그 말을 '믿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음 공부에서 새롭게 믿어야 할 사실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티끌만큼도 없습니다.


이 공부에서 나누는 이야기들은 모두, 그리고 '오로지' 당신이 가지고 있은 믿음을 깨기 위한 도구일 뿐입니다. 그 도구를 다른 말로 하면 몽둥이, 방망이라고 하면 더 느낌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공부를 하는 분들이 빠지는 큰 오류 중에 하나가 방망이를 믿거나 방망이와 싸우는 것입니다.

방망이와 싸우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많이 잡아먹습니다.

방망이와 싸우다 그만 두거나 이상한 길로 갑니다.

그런데 아무리 얘기해줘도 방망이와 싸울 땐 들리지 않는가 봅니다.

당연히 저도 그랬고 대부분의 분들이 그런 시기를 지나는 걸 봅니다.  


불교에서 자주 언급되는 내가 없다는 '무아'는 강력한 방망이입니다.

'나'라는 벽돌과 '있다'라는 벽돌을 깨기 위한 방망이입니다.

내가 없다는 것을 믿으라는 게 아니라 사로잡혀 있는 '내가 있음'을 깨기 위한 용도의 말입니다.


나라는 것이, 있음이라는 것이 허공에 그린 개념일 뿐임을 일깨우기 위한 말인데 대부분 '없다'라는 개념과 싸우기 시작합니다. 물론 무아라는 말을 접하면 내가 이렇게 있는데 없다고 하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잘 들여다 보세요. '있다'라는 것은 '없다'와 쌍으로 나타나는 말, 같은 개념입니다. 동전의 앞뒷면, 즉 하나입니다. 없다는 걸 믿을 거 같으면 있다를 믿는 것과 같습니다.


금강경에 사벌등안(捨筏登岸)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언덕에 오르려면 강을 건널 때 썼던 뗏목을 버려라.


능가경에 견월망지(見月忘指)라는 말도 있습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고 손가락은 잊어라.


강을 건네는 뗏목의 재질과 부력을 이해하려고, 달을 가리킨 손가락이 어떻게 생겼나를 고민하느라 그것이 가리키는 곳을 보지 못합니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이 말의 뜻을 저도 방망이와 한참 싸우다 알게 되었습니다. 경전에서 왜들 그렇게 얘기했는지 이제 알겠습니다.


그대 먼 곳만 보네요. 내가 바로 여기 있는데.


갑자기 <인형의 꿈>이란 노래 가사가 떠오르네요..^^

들고 있던 방망이로 사로잡힘을 깨고 방망이도 던지고 나면 정말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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