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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Jul 06. 2022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고장난 바이올린을 타면 깐따삐야에 간다_22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에 나오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을 처음 알게 된 건 공지영 작가의 베스트셀러 소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와 동명의 영화 때문이었습니다. 그 때는 이 구절의 의미가 주체적으로, 독립적으로, 꿋꿋하게 살아가라는 의미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의 맥락상 그렇기도 했거니와 그 의미 외의 것을 상상하지도 않았습니다. 작은 일에도 휘둘리고 전전긍긍하던 나약한 내가 어떤 일에도 휘둘리지 않는 강한 사람이 되어 혼자서도 보란듯이, 누구보다도 잘 사는, 그런 모습이 되고 싶었습니다. 놀라지 않고, 걸리지 않고, 오염되지 않고, 기대지 않기 위해서 더 나은 '나'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것도 많았고 노력해야 할 것도 많았습니다. 


어떤 책이든 자기 식대로 읽기 시작하면 그렇게 읽히는 법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고 말하는 성경도 개인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이웃을 미워하는 도구로 읽을 수 있는 것처럼 불교 경전의 내용도 방향이 약간만 틀어지면 훌륭한 자기계발서로 읽을 수 있습니다. 요즘 서양에서 인기를 끄는 책들이나 자기계발서에 불교적 맥락들이 자주 보입니다. 명상이 지식인이나 성공의 필수 아이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유발 하라리의 책들, 자기계발서 중에 재미있게 읽었던 <타이탄의 도구들>, 보도셰퍼의 <멘탈의 연금술> 을 봐도 불교의 맥락을 끌어온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그렇게 해석해서 개인의 일과 생활에 잘 적용하여 쓰면 매우 유용하고 좋습니다. 충분히 권장할 수 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시작점에서 각도가 5도가 틀어지면 처음에는 큰 차이가 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도착점은 전라도와 경상도, 아니 서울과 뉴욕 만큼 멀어집니다. 저도 숫타니파타의 구절을 그렇게 이해했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와서 느끼는 의미는 완전 다릅니다. 

 

'더 강하고 나은 나'가 되었기에 소리에 놀라지 않고, 그물에 걸리지 않고, 진흙에 더럽혀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소리라고 할 것이 없고, 그물이라고 할 것이 없으며, 더러운 진흙이랄 것이 없음을 보는 것입니다. 소리에 의미를 두는 것도 생각이요, 그물이라는 것도 생각이요, 더럽다는 것도 생각일 뿐임을 확연히 아는 것입니다. 이걸 깨치는데도 시간이 걸렸고 이게 끝이라고 생각했는데 끝이 아니었습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소리를 듣는, 그물에 걸리는, 더럽혀진다고 믿는 주체 자체가 환상임을 보는 것입니다.

주체인 나라고 주장할 무엇이 없음을 알게 될 때 이 구절은 온전히 시원하게 이해됩니다. 듣는 자 없이 듣고, 보는 자 없이 보게 되면 저절로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갑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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