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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Jun 24. 2022

안분지족

만약에 IQ처럼 욕망을 측정하는 검사가 있어서 개개인의 욕망의 정도, 즉 '욕망 지수'를 알 수 있다면, 어릴 적 내 욕망은 정규분포 곡선의 오른쪽 끄트머리 어디쯤에 가 있었을 것이다. 하고 싶은 것도 많았고 뭐든 잘하려 애썼고, 또 그래야만 직성이 풀렸다. 돌이켜보면 이런 욕망을 이용하여 내가 속한 집단에서 일정 수준의 성취나 만족감을 얻을 수 있었는데, 그게 즐거웠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엔 기특하게도 혼자 알아서 공부하는 아이였다. 그 동력은 인정받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었을 테다.


하지만 몸이 자라면서 알게 된 건 욕망도 자라고 커진다는 것, 가짓수도 많아진다는 것, 그리고 커질수록 충족이 쉽지 않다는 것, 노력한다고 다 되는 건 아니라는 것, 세상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천지라는 것, 목적지인 줄 알고 힘들게 도달한 곳이 끝이 아니었다는 것, 그곳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는 것, 쉽게 오는 사람도 있다는 것. 이 점을 직시할 때마다 욕망은 변검술처럼 순식간에 열등감으로 바뀌었다. 때론 자신이 경험한 감정의 크기와 깊이만큼이 곧 세상을 보는 어떤 프레임이 되기도 하는데 그때의 기억 때문인지 난 여전히 사람이 느끼는 감정 중에 열등감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고 생각한다.

열등감을 다루는 방법엔 두 갈래 길이 있었다. 더 큰 욕망을 불러내어 열등감을 불사지르던가 아니면 가지고 있던 욕망을 확 도려내 불씨를 꺼버리던가. 그 두 갈래 길에서 좌충우돌을 반복했다. 입에서 불을 뿜어내는 용처럼 뭐든 다 태워버릴 것처럼 달려들기고, 뒤도 안 돌아보고 불씨를 잘라냈던 적도 있다. 잘라낸 줄 알았던 욕망이 도마뱀의 꼬리처럼 다시 자라기도 했고 전혀 다른 상황에서 이름을 바꿔 다른 욕망으로 위장해 나타나기도 했다. 결혼하고 남편의 일을 따라 서울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출산과 육아를 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다시금 불쑥불쑥 드러내는 욕망들을 마주해야 했다.


그렇게 방화와 소화를 반복하며 터득하게 것은 혼자 불을 가지고 노는 법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책방은 크고 작은 불장난의 타협점인지도  모른다. 여전히 '꺼진 불도 다시 보자'는 표어를 되새기며 불을 다스리는 법을 공부(功夫)한다. 작은 불을 잘 가지고 놀면서 불로 만들지 않는 법, 큰 불이 나도 침착하게 감당하고 다스리는 법을. 소확행이란 말처럼 소소하게 충족할 수 있는 작은 욕망 주머니들을 찾아내고 이들을 필요할 때 하나하나 꺼내 삶을 소중하고 풍성하게 만드는 기술을 연마하는 중이다.


퇴근할 책방 옆 시장에서 장보기

대형마트에 가지 않아도 동네 어귀마다 있는 다정한 할머니들에게 2-3일 먹을 채소를 살 수 있다. 애호박 1개, 버섯 1 봉지, 오이 2개, 당근 2개. 5천원으로 충분한 날도 있고 어떤 날은 1만원으로 과일까지 사면 장바구니 가득 채워 가족이 있는 집으로돌아올 때의 만족감은 대형 마트에서 카트를 끌 때는 느낄 수 없는 무엇이다. 게다가 채소 요리로 차리는 밥상이 요즘 유행인 비건식단 아니던가. 백만장자의 식탁이 우리집보다 맛도 좋고 풍성할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삼시세끼 캐비어를 먹지도 않을 테고 내게 부족할 게 없잖아? 근사한 코스요리가 아니더라도 주기도문에서 늘 기도했던 것처럼 '일용할 양식'기뻐하는 법을 알았다.


나를 위한 선물사기

늘 책방에만 있으니 근사한 옷을 차려입을 일도 없고, 늘 입던 옷을 입거나, 지인들이 주는 옷을 받아 입는 편이다. 그러다 일 년에 한 정도는  기준에서 약간 비싼 옷을 사기도 하는데 그때 기분이 정말 좋다. 나한테 상을 주는 기분. 또 가끔 울적한 날은 문구점에서 필기감이 좋은 펜 하나를 사서 노트에 끄적거려본다. 펜이라고 해봐야 1~2천 원짜리인데도 마치 이 펜으로 엄청난 글을 쓸 수 있을 것만 같은 설렘과 흥분을 즐긴다.


가진 것에 감사하기

그리고 내 귀에 잘 맞는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어디든지 음악 감상실이 되고 영화관이 되는 것에 무한한 감동을 느끼기도 한다. 나에게 이런 요물이 있다니!! 안써도 그냥 가지고 다니면 기분이 좋다. 여기저기 전봇대에 박은 흔적이 많은 오래된 자동차지만 짐을 싣고 여기저기 다닐 수 있음이 좋아서 감탄하고, 십 년이 넘어 쓰다가 자꾸 꺼지는 노트북이지만 다시 켜서 글을 쓸 수 있다며 뿌듯해하고, 동네 할머니들이 가꾼 텃밭을 보며 비행기를 타지 않아도 프로방스를 느낄 수 있다며 행복해할 수 있게 되었다. 넓은 집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욕망은 잘 때 비바람 막아주는 지붕이 있고 내 몸뚱이 누일 바닥이 있는 집만족함으로 변했다.


안분지족. 편안한 마음으로 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앎. 어릴 적 교과서에서 안분지족이라는 사자성어를 배울 때는 목표의식 없는, 꿈 없는, 게으른 사람들이 하는 말이라고 느꼈는데 안분지족이야 말로 삶을 풍성하게 만드는 고도의 목표의식적 삶이 아니던가. 만족할 줄 아는 것이 지금 처한 상황으로의 체념이나 합리화가 아니라 그때그때 충만함을 누리는 지금 여기에 깨어있는 부지런한 삶이 아니던가.


 그런데 내가 숱한 불장난을 반복하며 힘들게 터득한 것을 이미 알고 있는 존재가 있었으니 그는 변태같이 바지도 안 입고서는 한 문장으로 이렇게 말했다.


"매일 행복하진 않지만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__곰돌이 푸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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