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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Jan 09. 2022

책방을 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

어느 책에서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속담을 본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그래, 정말 그렇지’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친정, 시댁에서 멀리 떨어져 살았기에 독박 육아를 하며 일 하느라 발을 동동 굴렀던 날들이 있었다. 그 때를 돌이켜 보면 어린이집과 유치원같은 보육시설이 없었다면 아예 일을 할 수 없었을테고 퇴근이 늦은 날에는 아는 동네 엄마들에게 도움을 받기도 했다. 아이들이 조금 더 커서 초등학생이 되어서도 마찬가지이다. 급하게 아이들을 아는 친구네 집에 몇 시간을 부탁하기도 했고, 아이가 놓고 간 준비물을 학교 앞 문방구 아줌마에게 맡겨놓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사회에서 사교육 시장은 워킹맘들의 보육을 메꾸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하는데 특히 태권도 학원은 아이들의 하교 픽업을 맡아주는 가장 든든한 곳이었다(물론 태권도도 배우지만^^). 워킹맘이 아니라더라도 한 아이를 건강하게 키운다는 것은 한 개인의 몫으로만 돌리기엔 참 버거운 일이고 모두가 함께 도와 움직여야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위 속담은 육아 뿐만이 아니라 내 삶의 모든 것에 적용되었다는 걸 나이가 들면서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나 혼자 단독으로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라도 있긴 할까 싶을 정도로. 책방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몰랐다. 혼자 잘 하면 되는 줄 알았던 많은 일들이 실상 그렇지 않다는 걸, 나와 접점에 있는 사람들의 도움없이는 내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는 걸 점점 알게 되었다.


일단 책방이라는 공간에서 하루동안 벌어지는 일들만 보아도 그렇다.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책방으로 출근을 한다. 책방 주변의 식당, 철물점, 시장 점포들은 이미 다 문이 열려있고 내가 도착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눠주신다. 책방 문을 열면 안에는 우유가 도착해있다. 우유 배달아저씨는 이른 아침 오시기에 책방 출입문 비밀번호를 공유하고 나보다 먼저 책방에 왔다 가신다. 그 다음으로 책방에 오는 우편물이나 수입서적들을 싣고 우체부 아저씨가 오신다. 그리고 점심이 지나면 여러 출판사와 총판에 주문한 책들이 택배 기사님들을 통해 속속들이 책방으로 도착한다. 오후 2-3시쯤 배가 출출해지면 바로 옆 시장으로 달려가 김밥집 사장님이 새벽부터 준비해놓은 재료로 만든 김밥을 사먹는다. 김밥을 직접 싸보면 알겠지만 이 번거로운 음식을 단돈 2500원에 사먹을 수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이렇게 끼니 해결까지 도움을 받고 인터넷에 접속해 메일함을 열면 출판사에서 온 각종 소식들이 도착해 있는데 새로나온 책에 대한 보도자료와 주문하는 방법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놓은 안내 메일도 있고, 구매한 책들의 계산서도 모두 발행되어 있다. 신간이 나오면 직접 보내주는 출판사들도 있어 책방이 좋은 책을 선택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방은 책이 없다면 존재의 이유가 없기에 좋은 책을 만드는 출판사는 책방의 가장 큰 지원군이기도 하다.

 그리고 책방에 오시는 손님들. 인터넷에서 책을 주문하면 할인에 적립금에 선물까지 받으며 너무도 편리하게 책을 구매할 수 있는데 후미진 작은 책방까지 찾아와 책을 구매하는 손님들이 없었다면 이 모든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오고 가는 다양한 손님들과 책으로 소통하는 하루를 보내고 퇴근길에 원두 로스팅하는 곳에 들리면 며칠 동안 책방에서 쓸 원두가 깔끔하게 포장되어 있다. 집에 오면 학교와 학원, 친구들...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하루를 무탈하게 보낸 아이들이 있다.


어디 이뿐일까. 책방 앞에 전날 내어놓은 쓰레기는 새벽, 내가 편히 잠든 사이에 누군가 치웠을테고, 내가 어디에 있건 무탈하기를 바라는 부모님과 가족들도 있다. 이렇게 내 하루의 시작과 끝은 셀 수 없이 많은 도움으로 촘촘히 채워져있다는 걸 알아가는 나이가 되었다. 불교에 '연기(緣起)'라는 개념이 있다. "모든 존재는 이것이 생(生)하면 저것이 생(生)하고, 이것이 멸(滅)하면 저것이 멸(滅)한다." 는 것. 모든 현상은 독립적으로 일어나는 것은 없고 만물이 상호의존하고 있다는 것인데 새삼 그 의미를 체감하는 날들이다.


어릴 적에는 내가 주인공인 줄 알았다가(주인공이어야만 했다가) 나이가 들면서 내가 조연일 수도 있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한 편의 영화는 주연, 조연, 엑스트라들 뿐만 아니라 영화에 출연하지 않는 제작진들이 모두 있어야 완성된다는 것, 어떤 역할이든 감사히 받아들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작은 책방 하나가 기능하기 위해서 내가 도움을 받아야하는 것들이 너무도 많고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역할을 해주기에 나도 제 역할을 할 수 있다. 책방은 혼자 하지만 혼자가 아니고 책방을 하려면 온 마을이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도움을 받듯이 이 책방 역시 누군가에게 든든한 명품 조연이 되면 좋겠다. 아니면 엑스트라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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