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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우너 May 05. 2022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

고장 난 바이올린을 타면 깐따삐야에 간다_05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가? 

몸이 아플 때 무슨 병인지 알아야 치료를 하고, 공부를 할 때도 무엇을 모르는지 알아야 공부를 하듯이 내가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어떤 생각들을 가두어 형체를 부여했는지, 어떤 생각들이 날아가지 못하고 고체화되었는지, 어떤 생각들이 연합해서 덩치를 키웠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

凡所有相 皆是虛妄 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불교의 대승경전 중 하나인 금강경에 나오는 4구게입니다. 무릇 상이 있는 것은 모두 허망하니 만일 모든 상을 상이 아닌 것을 본다면 면 곧 여래를 본다는 뜻입니다. 형체 없는 것을 형체가 있다고 믿는 것을 불교에서는 상(相)을 짓는다고도 합니다. 금강경의 이 문장에 따르면 상이 상이 아님을 보면 바로 해탈이라고 합니다. 어때요, 해탈하기 참 쉽죠? 누워서 떡 먹기처럼, 누워서 해탈할 노릇입니다. 이 문장은 1등 당첨번호 다 가르쳐준 로또 같은, 참으로 강력한 말입니다. 선불교 6대 조사인 혜능은 이 문장을 듣고 바로 깨달았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는 혜능이 아닙니다.   


절에 오래 다니시는 보살님들이 금강경 필사, 독송, 암송하며 금강경을 술술 읊는다고 다 해탈하진 않지요. 한국에 기독교인들이 몇 백만 명이지만 모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배추가 있다고 김치가 되는 건 아니듯 '안다'고 되는 건 아닙니다. 상이 상이 아님을 본다는 것, 이게 말은 쉽지만 막상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상에 사로잡힌 상태에서는 그것이 상인 줄 알아보지 못합니다. 에펠탑 아래에서는 에펠탑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요.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뿌리들이 깊숙이 박혀있기도 하고 너무 오래 믿어와서 스스로 버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노력과 숙성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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