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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구네 Jan 19. 2022

영상 PD 긴 한데요, 그냥 짜치는 거 만들어요 - 1

나는 어떻게 디지털 영상 PD가 되었나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소개해야 할 때, 나는 영상을 만든다고 말하며 꼭 덧붙이는 문장이 있다.

"영상 PD 긴 한데요, 대단한 건 아니에요. 그냥 SNS에 올라오는 짜치는 광고 영상 만들고 있어요."

상대방은 PD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으레 눈을 반짝이면서 "방송 쪽에 계시는 거예요? 드라마? 예능?" 라고 물어보는데, 서로 민망해지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이다.

왜 내 직업을 소개하면서 나도 모르게 자기 비하를 하게 되는 걸까? 사실 나도 처음부터 이런 PD가 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사실 저 2명이라면 뭘 하든 안 멋있겠냐만.. 출처: KBS

1. 어린 시절 <그들이 사는 세상>이라는 드라마를 감명 깊게 봤다. 오래전이라 내용은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극 속에서 현빈과 송혜교가 보여준 방송국 PD의 삶은 화려하면서도 현실적이고, 시니컬하면서도 낭만적이었다. 한 마디로 정말 멋있었다. 문득 나도 저런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2. 싸이월드 시절부터 친구들 사진을 편집해서 GIF나 짤로 만드는 걸 좋아했다. 내가 만든 콘텐츠에 친구들이 반응해주고 재밌다는 댓글을 달아주면 그것보다 뿌듯하고 보람찬 일은 없었다.


이 두 가지가 합쳐져 막연하게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내가 직접 드라마나 영화를 만들고, 사람들이 재밌게 봐준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았다. 지망했던 언론정보학과에 입학한 뒤 나는 당연하게 영상 동아리에 들어갔다. 본격적으로 영상과 내 인생이 지독하게 얽히게 된 시점이었다.




지금이야 초등학생들도 자기만의 유튜브 채널을 하나씩 운영하는 시대지만, 당시만 해도 영상을 만들 줄 안다는 건 독특하면서도 어딘가 멋있는 능력이었다. 실제로 퀄리티야 둘째 치고, 대학생으로서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영상 전공자들 외에는 흔히 하는 경험이 아니었다.


1년 동안 짧고 굵었던 동아리 생활은 나에게 감독, PD와 같은 직업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었다. 전역 후 나는 동아리 선배들의 프로덕션에서 연출부 아르바이트를 하며 본격적으로 영상 업계에 발을 디뎠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재밌었다. 물론 이쪽 일을 한 발치 멀리서 봤을 때는 미처 몰랐던 어려움들도 많았다. 몇 가지만 꼽아보자면


1) 원하는 영상미에 부합하는 촬영 장소를 찾아서 무작정 차를 몰고 로케이션 헌팅을 다녔다. (가평에는 안 가본 모텔이 없었다.)

2) 제작비를 아끼려고 구매한 의상을 촬영 후에 환불하기도 했다. (죄송했다...)

3) 처음 보는 운전자들에게 간곡히 우회를 부탁하면서 허가받지 않은 도로를 잠시나마 통제하기도 했다.(이것도 죄송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학생으로서 만들었던 영상과는 비교할 수 없는 퀄리티의 결과물을 보면서 뿌듯함을 느꼈고, 친한 선배들과 형 동생 하며 일하는 것도 좋았다. 첫 조연출로 참여한 단편영화가 무려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되는 영광도 누렸다. 나름 인정받으며 열심히 일했고 앞으로 내 진로도 명확해지는 듯했지만... 영상을 업으로 삼으려는 나의 발목을 붙잡는 걱정거리들이 있었다.


첫 번째는 '안정성'이었다. 경제력이 없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던 나는 불안정한 삶을 살기 싫었다. 늘 '본업으로 삼았는데 만약 외주 일이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앞섰다. 지금까지 결혼도 못하고 있는 걸 보면 괜한 걱정이었던 것 같긴 하다.

두 번째는 감독이 되기 전, 일종의 잡부라고 불리는 조감독일을 언제까지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조감독의 일은 사실 상 창작과는 거리가 멀다. 감독이 '창작'을 하면 조감독은 필요한 '업무'들을 수행하는 것이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사실상 머리를 쓰는 역할은 아니다. 처음엔 재밌었던 연출부 일도 반복이 되고 일이 되자 더 이상 즐겁지 않아지고 있었다.


나는 고민 끝에 광고회사에 들어가는 것으로 일종의 타협점을 잡았다. '꼭 영상을 직접 만들어야 된다는 법은 없잖아? 어쨌든 광고 회사도 광고 영상을 만드는 곳이니까, 기깔나는 기획력으로 영상을 만드는데 일조하겠어.'라는 생각이었다.




간과한 점이 있다면 내가 생각보다 영상에 진심이었던 것이다. 운 좋게 대형 광고대행사에서 인턴을 하게 됐지만 일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불안정했지만 버라이어티 했던 프로덕션 일과 달리 광고대행사의 일은 답답하고 우울했다.

어느 날 엘리베이터에 짧은 머리와 정장을 입은 나의 모습이 비쳤다. 내 옆에 나란히 서있던 배 나온 팀장님을 바라보면서 이렇게 늙을 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에 나는 더 특별한 사람이었다.


3개월 간의 근무를 마친 후 연장 제의를 거절하고 지인의 소개로 디지털 광고대행사에 취업하기로 결심했다. 규모는 작지만 직접 영상을 만들고 SNS를 통해 내 영상을 퍼뜨릴 수 있다는 제안 때문이었다.

직접 기획부터 제작까지 영상을 만들 수 있고, 월급도 안정적으로 준다고?.. 당시 나에게는 너무도 달콤한 유혹이었다.

퇴사하고 디지털 쪽으로 넘어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당시 내 사수는 걱정 어린 조언을 건넸다.

"너 지금 그쪽으로 가면 다신 이쪽으로 못 와. 잘 생각해봐."

당시에는 이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의 진심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다.

광고업계는 이직이 잦고 쉽다고 하지만, 절반은 맞고 절반은 틀린 이야기다. 당시 나는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스타트업, 디지털 광고계 영상 PD로서의 삶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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