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추락하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해방은 때때로 추락이라는 형태로 온다

by hagowords

연휴 마지막 날, 몸이 묘하게 느려졌다. 마지막 날이라 그런지, 그동안의 쉼을 정돈해야 할 것만 같다. 학교에 가서 블로그 글도 쓰고, 돌보던 고양이들 밥도 챙기고, 사무실 밖에 내놓은 식물들 분갈이를 한다.


죽은 식물을 뽑아내고 흙만 덩그러니 남아 있던 화분들을 비워 사무실 한편에 차곡차곡 쌓아두니, 뭔가 ‘마무리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뿌리를 다듬고 흙을 다시 채워 넣고, 텅 빈 화분을 조용히 비워내던 그 오후. 충실히 보낸 하루였지만 밤이 되자 문득 피곤하다는 감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정리된 만큼 지쳐버린 기분이랄까.


그날 밤, 나는 꿈을 꿨다.



20층짜리 건물. 나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4층, 7층, 9층…


천천히 바뀌던 숫자가 갑자기 급속도로 치솟더니 90이라는 숫자에서 멈춘다.


펑!


엘리베이터가 나를 품은 채 건물을 뚫고 하늘로 솟구쳤다.

어디인지 모를 하늘을 향해 치닫던 엘리베이터는 다음 순간, 무지막지한 속도로 땅으로 처박혔다.



번쩍


잠에서 깬다.


'아, 나는 죽었겠구나.'


귀신처럼 변하던 90이라는 숫자의 공포, 건물 옥상을 뚫고 솟구치던 당혹스러움, 그리고 땅으로 급격히 처박히던 절망.



생각해 보면, 나는 늘 올라가야 한다고 믿었다.


쉬지 않고, 멈추지 않고, 늘 뭔가를 책임지고, 감당하고, 붙잡으면서 말이다. 위로 올라가야만 내 인생에도 ‘비로소' 살아갈 의미가 생긴다고 믿었고, 멈추는 순간, 시궁창 같은 삶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여겼다.


가진 것 없는 비루한 삶으로의 낙하


그래서 타협하지 못했다.


위로 상승하는 엘리베이터. 오르다 오르다, 결국 건물 지붕까지 뚫고 하늘로 솟구치는 엘리베이터. 그러다 곤두박질치는 엘리베이터.


스스로 멈추지 못하고, 끝내 90층 상공에서 파훼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땅에 머무른다.



요즘 나는 자주 묻는다.


이 삶의 속도는 누구의 것이었을까.
이 책임은 누구를 위한 것이었을까.


힘들다면서 왜 손에 쥔 것을 놓지 못할까. 왜 그렇게까지 앞으로 나아가려고만 할까.


이 꿈은 어쩌면, 과도한 책임감과 높은 이상을 꿈꾸면서도 지상에 그물처럼 얽매여 옴짝달싹 못하던 나를 90층 높이까지 끌어올려, 그 그물을 강제로 끊고 땅으로 내던진 것은 아닐까. 죽임을 당하듯 멈추고 나서야, 비로소 제로 베이스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도록 말이다.


죽음으로써 다시 태어나게 된 나는,

이제는 ‘해방’이란 것을 할 수 있게 된 것일까.

이전 16화내가 끝내 보지 않는 이야기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