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듯이 살아왔다.
쏟아붓는 폭우를 맨몸으로 맞으며
매일을 버티는 삶이었다.
그렇게 오래 견디고 난 뒤에야 고개를 들어보면,
나는 아직도 제자리였고,
비는 여전히 내리고 있었다.
꿈을 꾸었다.
사람을 죽였다.
누군지도 모르는 그 시체를, 어딘지도 모르는 누군가의 집에
시멘트를 발라 깊숙이 숨겨 놓고는
그 사실을 들킬까 전전긍긍하는 꿈이었다.
새벽 4시, 꿈에서 깨고 난 뒤의
그 초조함과 막막함이란....
나는 꿈속에서 어떤 이를 죽이고 싶었던 걸까.
그건 아마도 매 순간 치열하게 살았지만,
결국 손에 쥔 것은 남들보다 지연된 삶의 시간과 초라한 현실이라는 사실, 그리고 그 서글픔을 만들어 낸 나 자신이 아닐까?
상담 대학원에 진학한 것도, 직장을 병행하며 공부한 것도,
누구보다 성실하고 진지하게 감당해 온 시간이었다.
그러나 치열하게 애써온 그 시간은
내 삶을 단단하게 만들기보다
어느새 무겁게 내려앉은 거대한 빚이 되어 나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처음엔 이 무게가 잠깐일 거라 여겼다.
언젠가 감당하고 나면 숨이 트일 날이 오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것은 점점 내 삶의 구조가 되었고,
나는 그 무게를 안고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현실에 갇혀 버렸다.
가끔 상상해 본다.
이 모든 무게가 사라진다면,
나는 정말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그러나 곧 알게 된다.
그 무게가 사라진 자리에 또 다른 무게가 얹어질 것임을.
방이 두 개 있는 집에서 살아보고, 처음으로 차를 가져보고,
남들보다 늦게 쥐어본 안정이 세상 소중한 보물이 되어
또다시 나를 짓누르게 될 것임을 직관적으로 안다.
숨 쉬어지지 않는 삶에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버티는 삶이 아닌
살아내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완벽하지 않은 선택들,
계획보다 오래 걸린 시간,
계산이 맞지 않았던 감정과 지출들,
그리고 그 무게를 감당해 온 나 자신까지,
나는 내가 나를 키우기 위해 감당했던 모든 시간과 무게를,
나의 일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 모든 것이 내가 살아온 증거였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나는 다시 살아내는 삶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기로 한 것이다.
버티는 삶은,
매 순간 생존을 위해 에너지를 쏟아붓는 삶이다.
아파도, 무너져도, 감당하지 못해도,
일단은 버텨야 했으니까.
하지만 살아내는 삶은 다르다.
나를 살리는 조건을 하나씩 늘려가는 삶이다.
조금 더 오래 자고,
하고 싶은 말을 글로 남기고,
고양이에게 밥을 줄 때 내 마음도 같이 따뜻해지는 순간들.
버티는 삶은 나를 소진시켰지만,
살아내는 삶은 나를 회복시킨다.
나는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더 살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다.
삶의 중심에 더 이상 ‘무게’와 ‘의무’가 아니라,
‘숨’과 ‘여백’이 놓이기를 바란다.
조금씩 그렇게 살아내다 보면,
‘그만 살아도 되겠다’가 아니라,
‘이대로 살아도 괜찮구나’ 싶은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순간이 내게도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