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숲에서 나눈 심리적인 밥 한 끼

by hagowords



도시 한복판, 조용한 나무 그늘 아래서 김밥을 나누며 깨달았다. 마음도 한 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을.



학교 안, 사람들이 거의 오지 않는 조용한 숲길을 따라가면 그늘이 깊게 드리운 자리에 마른 흙이 넓게 펼쳐진 공간이 하나 있다. 사람들이 지나는 길에서 비껴 있어 아무도 찾지 않는 곳.



숲속공터.jpeg
숲속하늘.jpeg


그곳에 돗자리를 깔고, 사 온 김밥과 삶은 달걀, 깨끗이 씻은 포도 덩이, 종이컵에 따른 음료를 나눠 먹었다.


대단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나무 사이로 부드럽게 내려앉는 햇살을 바라보고, 우리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마음이 편해졌다.


그 순간, 내가 느꼈던 감정이 정확히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어떤 가벼움, 안정감, 그리고 어딘가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이었으리라.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마음 어딘가가 환기되는 기분.


그러니까,

정서적으로 한 끼를 잘 먹은 느낌



이 자리는, 사실 내가 먼저 “이런 데서 점심 한 번 먹어볼래요?” 하고 제안했던 자리였다.


그런데 돌아보니, 내가 그런 제안을 할 수 있었던 건 예전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경험을 받았기 때문이라는 걸 알게 됐다. 누군가가 나에게 먼저 보여준 조용하고 따뜻한 점심의 기억이 내 안 어딘가에 남아 있다가, 이렇게 다시 흘러나온 것이다. 그 경험이 나를 움직였고, 지금은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그 경험을 다시 건네고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걸 ‘자기대상 기능의 내면화’라고 말하지만, 굳이 그런 이름을 붙이지 않아도 우리는 어렴풋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군가 나에게 해줬던 것을

이제 내가 다른 누군가에게 자연스럽게 해주는 일


받았던 것을 다시 전할 수 있게 되는 순간

그런 순간이 마음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고 삶을 덜 외롭게 해주는 것 같다는— 그 느낌을 말이다.

이전 09화엄마가 아닌,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