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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집 Aug 07. 2024

나는 하루 종일 집에 있었다


시간이 지나도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내일도 마찬가지겠지. 어쩌면 내일도, 모레도... 도대체 언제까지?


80년 만에 기록적인 폭우가 왔다는 날. 나는 문이 굳게 닫힌 집에 하루 종일 있었다. 

귀찮게 밖에 나가지 않아도 돼서 다행이라 날 다독이면서, 사실 합리화였을 수도 있지만. 불도, 컴퓨터도, 휴대폰도, 모든 것이 꺼진 방 안 책상 앞에 앉아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때 창 건너 밖에선 비가 미친 듯이 쏟아진다. 묵직하게 내리는 비 사이사이 배치된 굉음은 앉아있는 내 마음을 찢고 그 틈을 아프게 파고든다. 벌어진 틈 사이 보이는 사람은 엉엉 소리 내어 운다.

아, 이런 게 속이 상한다는 거구나.




그날은 알람 소리를 다급하게 끄며 오전 8시에 일어났다. 잠이 많은 나는 웬만한 소리로는 깨지 않는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깨서, 알람을 끄고, 다시 잔다. 그리고 한참 뒤에 일어나 '알람이 왜 안 울렸지?'하며 비몽사몽 행동했던 나를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어도 일어나야 하는 날엔 화재경보기처럼 깜짝 놀랄 만한 소리로 맞춰 놓는다. 그러면 행여 고음으로 무식하게 반복되는 소리가 옆집까지 들릴까 후다닥 끄게 된다. 일어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완전히 초조한 상태가 되어 싸한 느낌이 온몸을 휘감았다. 배도 서서히 아파져 오고 있었다. 나는 배도 자주 아프다. 초등학생 때부터였다. 나는 딱딱한 공으로 하는 놀이 (축구, 농구, 야구, 발야구… 피구는 공이 무른 경우가 많지만 무섭긴 마찬가지였다)을 싫어했다. 어쩌다 공에 맞아 아플까 봐 두려웠다. 체육 시간에 옆 반과 피구대항전이 있다는 날이었다.


"옆 반에 걔 있잖아 걔."

"누구?"

"맨날 빨간 머리띠 하고 다니는 애. 욕하면서 공 던진다는."

"나 누군지 알 것 같아. 그럼 이따 체육 시간에 나 걔한테 공 맞겠다. 일부러 등 대줘야지."

"나도 그러려고. 걔 욕하면서 공 던지는 이유가 뭔지 알아?"

"뭔데? 세 보이고 싶어서?"

"아니, 욕하면서 공 던지면 더 세게 던질 수 있대. 저번에 걔한테 얼굴 맞은 안경 쓴 애 병원 갔잖아. 안경 코 받침에 얼굴 찢겨서."


쉬는 시간이 끝나고 수업이 시작되었을 때, 바로 그다음 시간이 체육임을 알았다. 그때부터 배가 꾸루룩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배가 너무 아파서 보건실에 누워있어도 될까요?"

너무 아파 식은땀까지 나고 가만히 누워있을 수도 없었지만, 무시무시한 체육 시간을 피할 수 있었던 건 아픈 배 때문이었다. 두려워서 아픈 배.




다시 현재로 돌아와서, 내가 아침에 배가 아팠던 이유 역시 초조함이나 긴장감보다는 두려움이었을 것이다. 나는 밤에 약속이 취소되는 꿈을 꾸었고, 혹시 꿈이 실현되는 건 아닐까 두려웠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공 중에서도 '아픈' 공놀이를 싫어했던 이유 역시 상처 입기 싫은 마음으로 해석해도 될까. 

그리고 오전 11시쯤, 나는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되었다. 

꿈은 이뤄진다더니, 그게 이런 뜻이었나. 모종의 이유로 불가피하게 약속을 취소하게 되어 죄송하다는 문자. 

그 시끄러운 알람에도 '나 아직 자나?' 싶었다.


나는 사랑할 기반을 다져두고 있었다. 3주간. 사실 말이 좋아 '사랑할 기반'이지 그냥 짝사랑이었다. 그래. 

나는 멍하니 있다가 이런 말들을 쏟아낸다. 


눈물이 나올 것 같다는 게 느껴져. 그리고 아무도 없는데도 괜히 감추고 싶어 눈물을 속으로 흘려보내는 거지. 그러면 안에서는 이미 눈물 댐이 무너져 마구 범람하기 시작해. 코끝은 빨개지고, 목은 잠겨가. 근데도 불 꺼진 방 안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해.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서 바깥도 깜깜해지기 시작하면 완전한 어둠이 돼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게 되더라. 여기까진 어떻게 버텼는데, 진짜 이제는 안되는 거야. 내 통제 밖이야. 나도 내가 이렇게 힘들어할지 몰랐어. 물론 상처를 받을 만한 일인 건 알아.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가슴앓이할 정도는 아니잖아. 그렇지 않아? 내가 좋아했나 봐. 그래서 이렇게 힘든가 봐. 근데 그게 가능해?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걸.. 아니면 그냥 인간으로서 상처받은 걸지도 모르겠다. 그냥 다 모르겠어. 내가 왜 이러는지도, 또 그 사람은 나한테 왜 그렇게 했는지도. 

사랑은 나한테만 어려운가 봐. 무얼까 사랑은. '이번엔 진짜야?' 들떠서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여기저기서 환성을 외치면 그때서야 또 아니래. 말없이 걷다가 또 생각나고, 다시 침울해져. 저번엔 이렇게 말없이 걷다가 헤어졌던가. 또 저번엔? 말없이 걷다가 뭘 했더라.

사랑을 말로 할 땐 참 쉬워, 그치. 친구들이랑 모이면 나오는 단골 주제 있잖아. "만약에 ~한 일이 일어나면 어떻게 할 거야?" 이런 가정적인 질문들. 뒤따르는 대답은 항상 뻔해. 별거에 다 싫증을 느끼고, 별거에 다 이별을 고해. 하지만 사랑에 직접 던져져서 닥쳐오는 급류에 이리저리 휩쓸리게 되면 온갖 구정물이 묻어 구질구질해져. 안에서 겪는 것과 밖에서 보는 것엔 차이가 있어서인가.




내일이 되어가는 12시, 친구에게 전화를 건다. 

내 이야기를 들어보라며 감정을 토해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휴대폰 스피커 너머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모를 친구는 오늘 비가 거의 쏟아붓듯 왔다며 혀를 내두른다. 그러면 나는 "그래? 그 정도로 많이 왔단 말이야? 집에 가느라 힘들었겠네." 모른 척한다.


그리고 며칠 뒤엔 또 다른 친구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눈다.

"넌 그 사람의 이미지를 사랑한 거지. 그 사람이 아니라." 알랭 드 보통의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서는 인간의 사랑을 완벽한 대상을 모색하며 비관주의에서 탈피하는 행위라 묘사한다. 어쩌면 나도 불완전한 자신을 배격하며 흠모할 완벽한 대상을 찾은 것일까. 멋대로 재단해 내가 흠모하기에 오점이 없는 이미지를 만든 건 아닐까. 나는 아직 성숙의 분수령을 넘지 못하여, 상대방에 대한 정보가 유인이 아닌 장애로 다가오는 것일까.



지금은 창밖의 비도 그친 또 다른 날의 새벽. <지금껏 그랬듯 앞으로도 계속>을 들으며 젖은 마음을 쥐어짠다. 

비가 그치겠지. 그땐 모든 게 마르겠지. 그리고 나는 문을 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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