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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고집 Sep 21. 2024

캄캄한 방에서 나눈 대화

뉴욕 Stephen A. Schwarzman Building에서 쓰다.



그녀는 뭐든 반짝이는 것이 좋다며

집에 전등 하나 없었다.


가진 빛을 제 손으로 전부 버릴 때,

그제서야 무한한 반짝임을 가질 수 있다며

나지막이 말했다.


그러면 나는 칼질하는 그 뒤통수에 대고 말한다.



나는 빛도 싫고 어둠도 싫어.

빛은 작은 어둠조차 샅샅이 찾아내 조명하고

어둠은 작은 빛조차 우악하게 집어삼켜.

나는 양쪽 다 견딜 수가 없어.

막막한 그 두 얼굴과 눈이 마주칠 때면 한없이 가라앉아.

딱딱한 땅을 부수고 아래로, 

아래로,

아래로,

.

.

.

깊은 수렁에 빠져버려.

사다리도 없이 기어올라가려 해도

미끄러지지.


그렇게 모든 것이 높게만 보일 때

존재 자체에 무력감이 들어.

예고 없이 들이미는 모든 빛과 어둠이 싫어.





방을 울리던 칼질 소리가 멈추고

잠시 꿈같은 적요가 공기를 누르다가

침 늘어나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입이 열렸다.



아이야, 

내가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그러면서도 어둠 속에 사는 이유는,


태양 아래에서 작은 그림자는 가려지고

사방엔 온통 환한 것들 천지란다.

모든 것은 반사되어 버리고 누구도 깊게 파고들 수 없지.


대신 칠흑은 

어둡고 깊은 육체로 

작은 빛 하나를 가로채어

간데없는 눈부신 것으로 

가꾼단다.


그리고 아이야,

그 모든 막막함 앞에서

사실은 콩알만큼의 황홀한 상상도 있노라고 

고백할 때에

비틀거리면서도, 기면서도, 넘어져서도,

항행할 수 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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