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곳이 아름다운 이유

by Miel

작년엔 4월부터 날이 뜨거워 에어컨 리모컨을 만지작거렸는데 올핸 6월 말인데도 밤이 서늘하다. 새벽바람이 차가워 자다 깨 창문을 닫았다. 바다 근처라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작년과 비교해 보면 올해가 확실히 기온이 낮다. 하루 이틀 흩뿌리던 비가 그친 오늘은 따가운 햇볕이 내리 쬐 제법 여름 같은 일요일이었다. 잠깐만 서 있어도 뜨거웠지만, 계절에 맞게 따가운 여름 날씨가 한편으로는 반가웠다.


점심을 먹으러 아이들과 나왔다. 얼마 전 남편이 동료들과 와보곤 경관이 너무 좋아 아이들과 함께 오자고 했던 곳이다. 바다 앞 높은 건물이라 경치가 좋으리라 짐작은 했지만 직접 올라가 보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전면이 모두 유리로 된 레스토랑은 들어서자마자 발걸음과 숨을 동시에 멈추게 했다. 끝없이 펼쳐진 푸른 바다는 한눈에 다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장대했다. 날씨마저 청명해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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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 두 접시와 파스타 한 접시를 시켜 넷이 나누어 먹었다. 식전으로 나오는 따뜻한 빵과 스테이크만큼 두꺼운 돈가스, 후식으로 제공되는 커피까지 모든 게 만족스러웠지만, 창문 너머로 보이는 풍경엔 비길 바가 아니었다. 통창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해변은 마치 비밀 해변 같았다. 거대한 바위틈새 숨어있는 작은 해변엔 젊은 커플이 은빛 오리발을 신고 유유자적 둘만의 스노클링을 즐기고 있었다. 그림보다 더 그림 같았다. 식사를 마친 아이들은 얼른 내려가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반쯤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쭈욱 들이키고 같이 일어섰다.


시원한 에어컨 아래에서 바라보던 바다와, 여름 햇볕 아래서 마주한 바다는 확실히 달랐다. 살갗은 타들어 갈 것처럼 따가웠고 발은 불씨가 남아있는 숯을 밟는 것처럼 아팠다. 달구어진 모래밭을 빠르게 지나 바닷물에 발을 담갔다. 아직 데워지지 않은 초여름의 바다는 계곡 물만큼이나 차가웠다. 해수욕을 마치고 걸어 나오는 사람들이 아직은 너무 춥다며 숯불 같은 모래밭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해변에 인접한 도로 아래에 그늘이 살짝 드리워진 곳을 발견했다. 캠핑 의자 두 개를 펼쳐놓고는 아이들과 함께 바위가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맨발로 밟는 모래의 서걱거림과 얼음장 같은 바닷물 덕분에 금세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아이들은 바다에 간다고 분리수거 함에서 꺼내온 손바닥만 한 플라스틱 통에 소라와 삿갓조개, 홍합들을 따 담기 시작했다. 바위틈에 숨어있는 귀여운 게와 실랑이했고 어른 손가락만 한 물고기도 한 마리 잡았다. 먹이인 줄 알고 촉수를 오므리는 말미잘이 귀엽다며 연신 손가락과 발가락을 가져다 대며 깔깔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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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는데 플라스틱 생수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돌 틈에 단단히 끼어있는 것을 위아래로 움직여 어렵게 꺼냈다. 멀지 않은 곳에 또 다른 생수병이 보였다. 보이는 것만 몇 개 줍는다는 게 금세 여남은 개가 훌쩍 넘었다.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던 큰아이가 내 손에 쥔 페트병을 보고는 실망한 목소리로 말했다.


“에? 뭐야, 엄마 쓰레기 줍고 있었잖아?”


“응. 생각보다 많네”


“치! 사람들 나빠! 쓰레기 버리고!”


“다른 사람 나쁘다 할 필요는 없어. 엄마도 엄마 좋으라고 하는 거야. 우리 지안, 이안이 좀 더 깨끗한 곳에서 놀게 하려고.”


“엄만, 안 죽었지만 천사야!”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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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찰랑거리는 바위에 궁둥이 붙이고 앉아있자니 등은 따끈하고 발은 시렸다. 감사한 마음이 불쑥 밀려왔다. 바닷가에서의 삶이, 대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이, 순간 나를 숙연하고 고요하게 했다.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것은 늘 내게 거저 주어졌다. 내가 사는 곳이 산속이었다면 나는 울창한 숲의 시원함과 맑은 새소리를 찬양했을 것이다. 내가 사는 곳이 도심이었다면 나는 도심이 주는 편리함과 쾌적함을 찬양했을 것이다. 장소에 상관없이 나의 중심이 감사함을 향해 있다면, 어디서든 아름다운 것들과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시원한 레스토랑에서의 바다는 고요하고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해변에 내려와 마주한 바다는 그 열기에 얼굴이 일그러지기 충분했다. 얼른 시원한 바닷물에 발을 담그는 대신 그늘이 없음을 불평하는 선택을 했더라면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을까. 바위틈에 끼어있는 페트병들을 주워 모으는 대신 누군지도 모를 사람들을 탓하기 시작했다면 내 마음은 어땠을까. 찰나에 내리는 무수한 선택들이 내 삶의 방향을 시시각각으로 바꾼다.


돌아와 저녁 먹고 설거지를 하는데 주방 창밖 색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강릉에서 여름 저녁노을은 빼놓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들 중 하나다. 핑크색, 주황색, 보라색을 거쳐 진한 붉은색으로 오로라처럼 빠르게 변해갔다. 수세미와 접시를 든 채 고개만 반쯤 기울여 하늘을 내다보았다. 오늘도 빼곡히 숨어있는 아름다움 들을 놓치지 않고 즐겼다. 맨발로 바위 밭을 돌아다닌 탓에 발바닥이 아직도 얼얼하다. 기분 좋게 피곤한 오늘은 잠이 잘 올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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