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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Mar 16. 2023

기다림의 연속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_2

조직검사를 한 그 주 주말에, J와 나를 소개해 준 선배와의 만남이 있었다. 선배는 얼마 전 임신을 했고, 선배의 남편과 함께 이를 축하하기 위한 자리였다. 조직검사 이후에도 출혈은 계속 이어졌고 어쩐지 식은땀이 나는 등, 컨디션이 좋질 않았다. 약속을 취소할까도 싶었지만 어쩌면 오래 보지 못할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 좋지 않은 컨디션을 꾹 숨기고 약속을 강행하였다. J에게는 현 상황을 공유하지 않았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두려움에 떠는 것은 나 혼자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정확해지면. 명확해지면 이야기하자. 그렇게 생각했다. 


선배는 행복해 보였다. 계획한 임신이었고 거의 한 번에 성공을 하였다고 했다. 너도 어서 아이를 낳으라고, 같이 아이를 키우자고 말했다. 그럼 정말 재밌을 것 같아, 라는 말에 나는 그저 희미하게 웃었다. 그 날 나는 이상하리만치 땀을 많이 흘렸고, 그런 나를 J는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택시를 태워 집에 보내준다는 걸, 거절하고 집에 들어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적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지금의 연애가 처음이었다.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하는 첫 연애. 남들이 말하는 모쏠이었다. 그렇다보니 애초에 결혼 생각도 별로 없었다. 그러다 소개팅으로 J를 만나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결혼을 계획하게 되었다. J도 비슷했다. 결혼 생각을 크게 갖고 있지 않았다. 결혼에 대한 이야기가 오가면서 아이는 어떻게 할까? 라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는데, 우리는 '자연스럽게'로 합의를 보았다. 생기면 낳자. 하지만 아이를 낳기 위해 억지로 노력을 기울이지는 말자. 나이가 있는 상태이기도 했고, 아이에 대한 니즈가 크지 않았기 때문에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었다. 주변에 임신을 위해 무수한 시간과 노력과 돈을 들이는 커플들을 많이 봐왔고,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그러니까 크게 달라질 부분이 없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암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아이를 낳고 말고가 아니라 암은 생존에 대한 문제였기 때문이었다. 결혼을 앞두고 자궁암이라니?! 나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주변을 생각해야 했다. 나의 엄마와 아빠, 연인 J, 그리고 J의  가족들까지. 


나는 항상 최악을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래서 회사 근처 병원에서 시행한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그 7일이 지옥과도 같았다. 하루에도 기분이 수백번 널뛰기 했다. 괜찮을거야, 낮은 확률이랬잖아, 혹시 그 낮은 확률에 내가 걸리면 어떡하지? 와 같은 생각들이 오르락 내리락, 머릿속을 뛰어다녔다. 암일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하루 하루 살이 빠졌다. 


어느 날은 메뉴판을 보며 점심메뉴를 고르다 말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기도 했다. 자주 가던 중식당이었다. 순간 직장 동료들의 눈이 동그래졌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메뉴를 고르고 있는 사람들이, 식당에서 나는 음식 냄새가, 주변의 소란스러움이 너무나도 짜증이 나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조퇴 좀 할게요! 라고 말하고 식당을 박차고 나왔다. 나도 나를 제어할 수 없는 시기였다.


검사결과는 금요일에 나온다고 했다. J와는 일주일에 2번 데이트를 했는데 평일에 한 번(웬만하면 수요일이었던 것 같다), 주말에 한 번, 하는 식이었다. 검사결과가 나온 뒤 주말에 상황을 공유하자, 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날도 나는 나를 제어하지 못했다. 약속장소에서 J를 만나자 마자 눈물이 터졌다. 길거리에서, 갑자기 서럽게 우는 나를 보며, 환히 웃던 J의 얼굴에 당혹감이 내려앉았다. 이내 나를 꼭 안아주고, 아무 말 없이 등을 두드려 주었다. 


"나... 암일지도 모른대."


한참을 거리에서 그렇게 울다 내가 꺼낸 첫마디는 이것이었다. 그때 J의 표정이 어땠는지는 지금도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눈물 때문에 앞이 잘 보이질 않았다. 대신, 아닐거야, 별 일 아닐거야, 라고 말하던 J의 음성이 귓가에 또렷하다. 


일주일 후의 나는 J의 말대로 암이 아니란 판명을 받았다. 

의사가 환히 웃으며, 걱정 많이 하셨죠? 라고 나를 달래주었다. 나는 자궁내막증식증이라고 했다. 말 그대로 자궁의 내막이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질환인데 호르몬 불균형이 대표적인 원인이라고 한다. 의사는 친절하게 질환에 대한 설명도 해주었다(내가 본 의사 중 가장 친절하기는 했다). 자궁내막증식증은 단순형과 복합형, 비정형으로 나뉘는데 나의 경우 단순형에 해당한다고... 단순형은 암으로 갈 가능성의 거의 희박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약물치료를 통해 지속적으로 관리만 잘 하면 된다고, 제법 흔한 질환이란 이야기도 해주었는데, 긴장의 끈이 스르르 놓이는 순간이었다. 다만 나의 경우 자궁내막이 두껍고 지저분하기 때문에 소파술을 해야 한다고 했다. 수면마취 후 두꺼워진 자궁의 내막을 살살살 긁어내는 것으로 수술이라고 하기보단 시술에 가까운 것이라고 했다. 일단 다음주 월요일, 가장 빠른 시간으로 소파술 예약을 잡고 나왔는데, 문득, 간단한 시술이라 해도 개인병원에서 진행하는 게 맞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빠르게 알아본 후, 2차 병원에서 자궁경을 진행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는...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게 되었다. 

하늘은 참 맑았다


자궁내시경을 하기 위해 2차 병원을 예약하고, 시술 날짜를 다시 잡고,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고, 이후 전이 여부 등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가 진행되었다. 2차 병원에서 3차 병원으로 전원한 뒤에도 기다림과 기다림과 기다림이었다. 


9월경 증상 발현을 시작으로 10월 암진단, 12월 수술을 하기까지 매번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몰라, 매번 최악의 상황을 떠올리며 가슴을 졸이던 그 시간들. 돌이켜보면 진단을 받기까지의 그 과정들이 가장 두려웠다. 지금도 물론 그런 시간들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지속적으로 추적관찰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는 3개월 터울로 병원에 가 검사를 받고 있는데, 검사를 받기 전, 또 받고 나서 외래를 가기 전까지, 혹시 전이는 없는지, 다른 부분에서 문제가 생긴 건 아닌지... 이런 걱정을 평생 해야 한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기도 한다. 나는 앞으로 오롯이, 기다림의 시간들을 견뎌내야 한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때보다 지금이 낫다는 것이다. 다 지나간다. 다 지나갈 것이다. 그래왔듯이,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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