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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Feb 15. 2023

자궁내막이 두꺼운데요?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기까지의 과정_1

평소보다 생리가 조금 늦어졌다. 며칠 뒤 추석연휴를 맞아 남자친구이자 예비신랑인 J와 군산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늦어진 생리 때문에 마음이 조금 불편했다. 그러나 딱 그 정도의 걱정과 고민이었다. 잘하면 여행지에 가서도 불편하게 생리대를 해야겠네,라는 생각을 했을 뿐,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생리가 며칠 늦는 일이야 흔했다.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가 많은 때였다. 몇달 사이 생리 양상이 조금 달라졌단 느낌을 받기도 했는데 마침 코로나에 걸린 뒤라, 코로나 후유증 정도로 여겼다. 곧 괜찮아질거야, 다시 내 리듬으로 돌아올거야,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며칠 뒤 생각이 달라졌다.

며칠 늦게 시작한 생리의 양이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었다. 오버나이트가 10분 만에 넘쳐흐를 정도로 피가 쏟아졌다. 아, 이렇게 피를 쏟다간 사람이 죽을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행히도 그런 증상은 곧 멈췄다. 그래서, 무식하게도. 산부인과를 가야 하나? 하던 고민은 잠시 뒤로 미루고, 나는 여행을 떠났다. 무시무시한 양의 피를 쏟지는 않았지만 아주 작은 양의 출혈이 이어졌다. 며칠 전처럼 또 그렇게 피를 쏟으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에, 여행 내내 피로감이 상당했다. 컨디션도 좋지 못했다. 꼭 몸살을 앓는 사람 같았다. 타지에서 아프니 괜히 서러웠다. 엄마도 보고 싶었다. 

그래도 여행은 즐거웠다. 

그리고 여행을 다녀와 나는 결국, 회사 근처의 한 산부인과에 다녀왔다. 또다시 많은 피가 쏟아졌기 때문이었다. 갑자기, 무언가 쏟아지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또 시작 됐구나,라는 직감이 왔다.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갔고, 거기서 시뻘건 피를 쏟아냈다. 다시 반복이었다. 엄청난 양의 하혈. 생리가 아닌 걸까...? 그제야 어떠한 감정이 엄습했다.



두려움이었다.

몸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깨달았다. 그럼에도 나는 병원에 가는 것을 망설였다. 성인 여성이라면 별 문제가 없어도 정기적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산부인과는 여전히 꺼려지는 곳이었다. 하지만 가야 했다. 


여행 전 검색했던 회사 근처, 여의사가 하는 산부인과에 전화를 해 당일 예약을 했다. 퇴근 후 방문이었는데, 그러는 사이 미친듯이 하혈하던 피도 멈추어 있었다. 그래서 또 바보같이, 산부인과 문앞에서 조금 망설였다. 들어가지 말까...? 무서웠다. 진료 보는 것도 싫지만, 그보다 무슨 큰 병이면 어쩌나, 그걸 확인하는 순간이 미련스럽게도 무서웠던 것이다. 그러나 나는 들어가야만 했다.


산부인과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은, J 때문이었다. J와 나는 다음 해 결혼을 앞두고 있었다. 혹여라도 어딘가 아픈 거라면... 그런 몸으로 결혼할 수는 없었다. 그것도 부인과 쪽 질환이라면 더더욱... J를 떠올리며, 굳은 마음으로 산부인과의 문턱을 넘었다. 예약자 이름을 말하고 문진표를 작성했다. 성경험 유무와 최근 자궁경부암 검사 시기, 검진 시기 등을 묻는 질문들에 체크를 해나가며 내가 얼마나 나의 몸에 대해 무지했는가를 깨달았다. 뒤늦은 부끄러움과 후회에 나는 더욱 위축되었다. 대체 내 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심장이 꽉 조여왔다.


아이고, 왜 이제 왔어요?

나보다 열 살 정도 많아 보이는 여의사가 초음파를 보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 내 나이대에 생리양이 많아진 것은 확실히 이상한 일이며 경계할 일이라고 했다. 피를 많이 쏟았다 하니 내 눈을 들여다 보았는데 다행히 빈혈이나 그런 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일단은 초음파부터 보자고 하며, 진료실 옆 초음파실로 안내 되었다. 초음파실은 어두웠으며 생각보다 편안한 분위기였다. 전에 다녀왔던 곳보다좀 더 세심한 느낌이 들었다. 다행히 피도 나지 않았기에 별 어려움 없이 초음파를 진행할 수 있었다. 의사는 말 없이, 이곳저곳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베드에 누워 멀거니 초음파 화면만 바라보았다. 화면에서 희끄무레한 무언가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한참 내 자궁을 들여다보던 의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내막의 두께가 남들보다 두꺼워요. 조직검사가 필요할 것 같아요."


이어, 따끔할 겁니다,라는 말과 함께 그 자리에서 의사가 자궁내막의 조직들을 몇 개 떼어냈다. 아팠지만 참을만했다. 경부에 있는 용종들도 몇 개 떼어내고 경부 검사도 시행했다. 생각보다 모든 검사와 과정들이 아프지도, 무섭지도 않아 허탈했다.


자궁경부 검사 결과와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후에 나올 거라고 했다. 내막의 두께가 두꺼운 이유를 물으니 자궁내막증식증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아주 적은 확률로 자궁내막암일 수도 있지만, 그건 희박한 확률이라고 말했다. 자궁에 내막이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고, 자궁내막이 증식할 수 있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그리고 그 자궁내막에 암이 생길 수도 있다는 것도... 자궁경부암이야 많이 들어봤지만, 자궁내막암은 너무나도 생소했다. 그리고 내가 그 희박한 확률로 자궁내막암 환자가 되리라고는,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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