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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Jan 18. 2023

2022년 10월, 사라진 계절

암환자가 되었다

2022년 10월. 갑작스럽게 추워진 날씨에 지난주 겨울에 입으려고 샀던 니트를 일찍이 꺼내 입었다. 오후가 돼서는 너무 더워 후회를 하기도 했지만 차라리 잘 되었다 싶기도 했다. 카페에 앉아 훌쩍이며 우는 도중, 더위 때문에 조금은 딴생각을 할 수도 있었으니까...


오전에 병원에 가야 했다.


10월 11일. 조직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이었다. 내 자궁에서 자라나고 있는 것이 암인지 아닌지, 알 수 있는 날. 함께 간다는 엄마에게는 오후에 검사 결과가 나온다는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암이라는 최악의 경우를 생각했을 때, 그 결과를 엄마와 함께 들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엄마, 오전에 00이네 미용실에 가서 머리 좀 하고 와.

아침 일찍부터 따라오겠다는 엄마를 따돌리기 위해, 엄마의 오전 일정까지 세워주는 치밀함을 선보였다. 엄마의 지인(정확히는 지인의 아들)이 서울 어딘가에 미용실을 개업하였고, 거기에 한 번 가야 하는데, 하던 엄마의 말을 기억하고 세운, 순전히 이기적인 계획이었다. 내 감정을 추스리기도 버거운데, 차마 엄마의 감정을 돌봐 줄 여유가 없었다.


조직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내내 그랬다.


나의 마음을 살피기보다, 아픈 자식 때문에 아파하는 내 부모의 마음을 살펴야 했다. 밤마다 잠을 자지 못하고 뒤척이는 엄마,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새벽마다 한숨을 푹푹 내쉬며 거실을 서성이던 아빠의 발걸음. 나는 눈을 꾹 감은 채 그 소리들을 들어야만 했다.미안함과 불안감에 매일 밤 잠을 설쳤다. 일주일만에 살이 4kg가 넘게 빠졌다. 내 목숨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뒤늦게 알았고, 그로 인해 더욱 괴로운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잠시 상황을 설명해 보자면,

한 달여간 출혈이 있었다. 처음엔 생리인 줄 알았는데 생리가 도무지 끝나질 않았다. 이렇게 피를 쏟다간 죽겠다, 싶을 정도로 많은 양의 출혈이 있었던 날도 있었다. 것도 하필 회사에서. 차고 있던 오버나이트의 생리대가 넘쳐 바지를 적시고 의자를 적셨다.


급한 마음에 외출을 하고 회사 근처 산부인과에 갔다. 초음파를 보던 여의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조직검사를 해봐야겠다고 했다. 조직검사 결과는 일주일 후에 나왔다. 의사는 환하게 웃으며 암이 아니라고 말해 주었다. 처방해 주는 호르몬약만 먹으며 관리하면 되는 병이라고 했다. 이후 2차 병원에 가보겠다는 나를 의아하게 쳐다보기까지 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을 텐데,라는 말도 덧붙였다.


만약 암일 확률이 있단 얘기를 했었더라면, 나는 내 부모에게 나의 증상을 꼭꼭 숨겼을 것이다. 불확실함에 떠는 것은 나 혼자만으로 충분했다.


혹시나 하여 들른 2차 병원에서는 암일 확률이 있단 이야기를 하였고, 새로이 조직검사를 한 뒤, 또다시 일주일 후 그 결과를 들으러 가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우리 가족은 모두 지옥에 있었다. 나이 든 부모에게 아픔을 준 것에 대한 미안함, 딸의 아픔이 자신의 탓인 양 느끼는 부모. 그 생각과 감정들이 그대로 읽히고 느껴져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나는 아직도 그 의사가 밉다.



조직검사 결과는 우려했던 것과 같이 이었다.


늘 최악을 생각하는 버릇 덕분에, 암입니다,라는 말을 들을 때 생각만큼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생각만큼이었다. 쉽게 입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그런 나를 보며 의사선생님은 별 일 아니라는 듯, 98%는 초기에 발견이 되고, 그런 경우에는 호르몬 치료를 하면 되는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정확한 기수는 수술을 해봐야 알겠지만, 우선 CT와 MRI를 찍어 전이여부를 확인해 보자고 했다. 전이여부에 따라 치료와 수술 중 선택을 해야 한다고.


진료실을 나와 또다시 내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렸다.


얼마 후, 담당 간호사가 내 이름을 불렀고, 나는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하였다. 그리고 며칠 후에 있을 CT와 MRI 촬영 날짜를 잡았다. 도중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간호사 분이 휴지를 건네주며 다독여 주었다. 걱정하지 말라며, 다음에 검사 결과를 들으러 올 때는 꼭 가족과 함께 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엄마와의 약속 시간이 조금 남아, 병원 근처 카페에 들렀다. 즐겨 마시던 커피 대신 따뜻한 차를 주문했고 창가에 앉아 바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때마침 점심시간이었던지라, 거리에는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하더라도 나도 저기에 속해 있었는데, 지금은 거기에서부터 아주 멀리 떨어져 나온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앞으로의 일상이 지난날의 일상과는 사뭇 달라질 것이란 생각에 가슴이 턱, 막혀왔다.


약속시간이 점점 다가오면서. 엄마에게 어떻게 이 말을 전해야 할지, 감당이 되질 않았다. 결국 남자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엄마와 마찬가지로 나의 검사결과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던 J에게 최악의 상황을 전달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던 J는 급하게 조퇴를 신청하고, 내가 있는 곳으로 달려와 주었다. J를 보자마자 길거리에서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 우리는 몇 달 후 결혼을 하기로 되어 있었다. J에 대한 생각으로도 머리가 무척 복잡하였지만, 일단은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달해야 한다는 숙제가 가장 시급했다.



엄마와는 지하철 역사에서 만났다. 


병원으로 온다는 엄마에게, 실은 진료가 모두 끝났다고 말을 했다. 이때까지도 엄마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듯싶었다. 왜냐하면 엄마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주변 이모들이 모두 별 일 아니더라는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해 준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엄마는 강하게 믿고 있었다. 아니 믿어야만 했다.


멀리서 본 엄마가 너무 고와 더 슬펐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 엄마는 많이 늙어버렸다. 흰머리도 늘었고, 피부도 푸석해지고, 얼굴 살도 눈에 띄게 빠졌다. 화장도 잘하지 않았다. 새로 머리를 한 엄마는 오랜만에 예뻐 보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도 곧 흔들렸다. 멀리서, J와 함께 오는 나를 보며 엄마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J와 나를 불안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엄마를 나는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말했다.


엄마... 나 암이래.

나도 모르게 꾹 참았던 울음이 터졌다. 엄마도 울었다. J가 나와 엄마를 말없이 꼭 끌어안아주었다. 사람들이 쳐다보든 말든, 나랑 엄마는 그렇게 울었다.



30대암판정을 받았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잔병치레 없이 건강하기로 유명한 나였다. 같이 살던 룸메이트가 심한 독감으로 한 달을 고생해도 멀쩡한 나였다. 내가 감기에 걸렸다고 하면 너도 늙었구나, 네가 감기라니, 친구들이 한 마디씩 덧붙이곤 했다. 암판정을 받기 일주일 전 있었던 상견례 자리에서 엄마는 자신의 딸이 크게 아픈데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준 것을 자랑했다.


그런데 암이라니.


결혼을 5개월 앞두고 받은 암판정은 더더욱 나를 비참하게 만들었다. 어느 날 갑자기. 드라마 속 비운의 여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증상을 인지하기 시작한 9월부터 암 판정을 받은 후, 지금까지.


나의 계절은 사라졌고, 암환자라는 사실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지금은 이렇게 그날을 기록할 만큼 육체적, 심리적인 상태가 많이 안정되었다(물론 지금 글을 쓰면서도 울컥, 하기는 한다). 암 판정 후 입에도 대지 않던 빵을 아주 가끔 먹기 시작했고 이유없이 빠졌던 살도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쓰던 물건들도 미처 정리하지 못하고, 전화로 퇴사하겠습니다, 통보했던 회사에서 어제는 알바 제의도 받았다. 컨디션이 완전히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일을 하기로 하였고, 오늘은 그 일을 위해 잠깐 카페에 왔다.


커피를 마시며 일을 하다, 문득, 기록을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지난한 시간 동안 나를 버티게 해 준건, 내 가족들, 그리고 나와 비슷한 상황에 놓여있던 같은 병명의 암환자 분들의 '기록' 덕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보며 용기를 얻었다. 물론 때로는 절망과 불안을 얻기도 했지만, 그보단,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을 더 많이 얻었던 것 같다. 암 진단을 받고, 나처럼 불안에 떨고 있을 또 다른 나에게, 나도 용기, 위로를 주고 싶었다(물론 나도 아직까지 안심할 수 없다. 암은 평생 관리해야 할 대상이니까).


그저, 나도 잘 견뎌내고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힘내세요,


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또한 나에게도 힘내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암환자여도 행복하게 잘 살 수 있습니다, 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정확하게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어!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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