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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의기억 Jun 16. 2023

선택장애와 확률에 대하여

결국은 내 선택이다

나는 심한 선택장애를 갖고 있었다. 

살아오면서 내 감정의 중심은 대부분 내가 아닌 타인이었고, 나의 선택이 누군가에게 불편을 줄까 봐, 또는 잘못되어 누군가의 불평을 살까 봐, 항상 고민하고 고민했다. 내 몸에 대한 결정권이 나에게로 왔을 때도, 그래서 나는 선택을 하지 못하고 오랜 시간 갈팡질팡거렸다.

암 진단 후 수술을 받기까지, 매일 엄마와 만보씩 걸었다


내막암 1기로 추정된다는 진단을 받았다.

의사 선생님은 호르몬 치료와 수술적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쉽게 선택을 내리기가 어려웠고, 조직슬라이드와 MRI, CT 영상기록 등을 챙겨 3차 병원을 2군데 더 돌았다. 두 군데 모두 2차병원에서와 동일한 결과와 선택지를 제시하였다. 결국 선택은 내 몫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싶어 블로그와 카페 등등을 열심히 검색했다.


가임기 여성, 아직 미혼이거나 아기 계획이 있는 신혼부부의 경우 가능하다면 호르몬 치료를 선택하는 경우가 더 많긴 했다. 내막암 1기, 거기에 분화도도 좋은 경우 대부분 호르몬 치료였다. 그러나 아주 간혹, 1기에서 호르몬 치료를 하는 도중 암이 진행되어 2기, 또는 3기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 1기인 줄 알았으나 막상 수술을 해보니 전이가 되어 3기였다, 라는 경우도 있었다(모든 암종이 그런 듯 하지만, 자궁내막암의 경우 수술을 통한 조직검사 시 정확한 기수 확인이 가능하다).


확률의 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그 확률을 믿을 수가 없었다. 치병을 하며 알게 된 것이 있다면 확률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이었다. 처음 암 진단을 받기 전, 의사들은 내게 30대에 내막암에 걸릴 확률은 매우 낮다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내막암 환자가 되었다. 확률은 소용이 없었다. 내가 걸리면 낮은 확률이든 높은 확률이든, 그건 100%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담 어떻게 해야 할까? 그 선택은 오롯이 내가 할 수 있는 것이었고 해야만 했다. 그러나 나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이를 낳고 싶단 의지가 강하진 않았지만 예랑이와 그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부모님을 떠올렸을 때, 호르몬 치료를 하는 것이 맞다, 싶다가도, 혹시라도 1기가 아니라면? 치료 중 전이가 된다면? 하는 식의 부정적인 생각이 계속해서 꼬리를 물었다.


선생님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시겠어요?

라고 물었을 때 속시원히 대답해 주는 의사는 한 명도 없었다. 그 말에는 큰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었다(남의 인생에 이러한 책임을 지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지).


엄마의 경우는 나처럼 하루에도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생각이 왔다 갔다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아기는 낳아봐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다가도, 금방, 네가 안 아픈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라고 말하였다.


확고하게, 나에게 자신의 의견을 말해 준 사람은 지금의 남편뿐이었다. 그는 '네가 가장 빠르게, 확실하게 완치할 수 있는 방법'을 선택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주었다. 이 상황에서 단호하게 결정을 내릴 사람은 다름 아닌 나라는 것을 받아들이기까지 꽤 힘든 시간을 보냈다.


선택을 내리려면,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야 했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는 경향이 컸다. 그리고 겁이 많았다. 쓸데없는 상상을 많이 하는 편이고 항상 최악을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호르몬 치료를 한 뒤 임신을 시도하고, 어렵사리 임신에 성공하여 출산을 하기까지. 아마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주변의 지인들만 보더라도 건강한 몸을 갖고 있음에도 임신이 어려워 난임 병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았다).


그 과정을 내가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생각했을 때, 답은 아니었다. 나는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무너져 내릴 것이 뻔했다. 그 힘든 과정을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두려움에 떨며 보낼 시간들을 생각하자 답이 조금은 명확해졌다. '지금'을 살자.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수술적 방법을 택하였고, 수술을 하기 위해 입원하던 날에도, 나는 내 선택을 망설였다. 지금이라도 다시 호르몬 치료를 한다고 말할까? 하는 생각을 수술을 기다리는 베드 위에서도 했던 것 같다. 지금도 가끔, 그래도 시도라도 해볼걸, 과 같은 후회가 슬몃 고개를 내밀기도 한다. 하지만 이도 내가 지금 수술을 잘 마쳤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생각이라고, 나를 다독인다.




사실 그간 3편의 브런치글을 발행한 뒤 새 글을 쓰는 것이 어려웠다. 나는 불행 중 다행으로 암의 기수가 낮은 편이라 따로 방사선이나 항암치료를 하지 않았다. 그런 내가 과연 글을 쓰는 것이 맞는 것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 기수가 높은 분들, 항암을 하는 분들께 뭔가 죄송스러운 마음과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금 글을 쓰게 된 것은, 내막암 진료를 받고 무척이나 불안에 떨고 있는 한 분의 글 때문이었다. 마치 그때의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 선택에 어려움을 느끼고 계시는 분에게 나의 이야기가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서...


어디에도 답은 없다. 그저. 지금 내가 내린 선택이 또는 내렸던 선택이 나를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는 믿음, 그것만 갖고 가려한다. 어떤 선택을 내리든 그것이 자신을 위한 가장 좋은 선택이었다고, 우리는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그분께 말씀드리고 싶다.


소중한 아기를 위해 호르몬 치료를 하고 있는 분들, 그리고 항암 치료를 하고 있는 분들, 모두 힘내시라는 응원을 보내며, 글을 마쳐야겠다. 나도 아직 열심히 힘을 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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