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늦게 일어나 아무도 없는 거실에 적막을 채우기 위해 티비를 켰다. 티비에선 보험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가만히 듣고 있다가, 문득 어린 날의 상념이 떠올랐다.
어릴 때의 나는 보험광고를 그냥 조금 긴, 드라마와 홈쇼핑 그 중간 어디쯤에 있는 이상한 광고라고 생각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 사이에 맥을 끊는 너무 지루하고 긴 광고였다. 나는 그 맥락도 이해하지 못했었다. 내용을 찬찬히 뜯어보면 뭔가 사망을 계속 얘기하는데 광고 모델들이 웃으면서 좋은 것인 양 얘기하는 게 이질적이라고 느꼈던 거 같다. 그래서 난 보험이 좋은 건 줄 알았다. 그러니까 진짜 좋은 마음으로 구매하는 상품인 줄 알았다. 게다가 지금 결정하지 않아도 상담예약만 남기면 그 어떤 것도 자를 수 있는 강한 칼이나 고가의 가전제품 같은 것을 준다니 이건 고객입장에서 안 하면 손해인 거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어떤 날은 엄마한테 빨리 저기 상담 예약해서 저 사은품 받자고 조른 적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보험 사기’ 같은 것들이 뉴스에 자주 나오게 되고, 병원에서 엄마가 보험처리가 되냐고 물어보는 걸 들으며 그제야 보험이 어떤 건지 알게 되었다. 너무 충격이었다. 사람이 죽거나 병에 걸렸을 때 금전적인 지원을 주기 위해 만들어진 장치라니. 그런 일은 누구의 기쁨도 되지 않는데 그렇게 웃으면서 ‘사망 시 보장! 가입 당일부터 보장!’을 강조하는 화면들이 떠올랐다. 죽음 앞에 통장을 들여다보며 한숨을 쉬던 노년의 배우들, 진단명을 들어 심란한 중년의 옆에서 치료법이 아닌 보험을 추천하던 장면들.
게다가 사망보험금의 경우는 더했다.
죽은 사람은 제외하고, 남겨진 사람들에게 돈이 돌아가는 구조였다. 죽은 사람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금전적 지원이 나오는 건데, 돈으로 그 존재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는 건 절대 아닐 텐데. 그런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이라니.
이렇게나 무기력한 게 인간이고 그게 나였다. 우리 삶은 예측할 수 없고, 피해 갈 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
내가 살아오면서 든 보험들은 이제 사실상 만기가 돼 간다. 이제 어리지도 않고, 돌아갈 학교도, 학생 신분도 사라진다. 그래도 여전히 숨은 붙어있고, 살아보고 싶은 미래가 있다.
보험 없이 부딪힐 인생은 고위험군이겠지만 원래 인생이 무보험 아니었는가.
그래 이번엔 사은품 대신 경험이나 받아가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