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세우는 일에 대하여
한 번 비뚤게 난 것을 제자리로 돌리는 데 이렇게나 큰 고통과 노력이 필요한 줄은 몰랐다.
나는 외모에 크게 콤플렉스가 없는 사람이었다.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딱히 욕심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중학생 때 친구들끼리 노래방에 가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신나게 놀고 있는데 갑자기 노래방 스피커에서 무언가 턱 하는 소리가 났다. 친구들은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나는 바로 화장실로 뛰어가야만 했다. 소리의 근원지가 내 앞니였기 때문이었다. 화장실 거울 앞에 서자, 마이크의 격자무늬 홈에 맞추어 작게 깨진 내 앞니가 보였다. 그날부터였다.
고등학생이 되고 교실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 우리는 매 순간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사진 속 나를 보는데 뭔가가 자꾸 걸리기 시작했다. 웃을 때마다 튀어나와 있는 앞니 하나. 그리고 작게 파인 모양.
안 그래도 튀어나와 있으니 마이크가 부딪힌 것이고…
튀어나온 데에는 치아가 비뚤게 자란 게 원인이고…
턱이 작으니 입이 더 튀어나와 보이고…
끝이 없었다.
그것 하나가 눈에 띄기 시작하니까 모든 것이 어긋난 보였던 것이다. 치아에서 연쇄 충돌하듯 눈, 코, 입 어디 하나 괜찮아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 더 이상 참을 수 없겠다는 마음에 교정을 하게 되었다. 교정을 결심하고 주변 사람들의 경험담과 인터넷 후기들을 찾아보았는데, 부작용 후기부터 정말 큰 마음먹으라는 경고, 웬만하면 그냥 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었다. 겁이 조금 나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나에게 콤플렉스였던 부분을 고칠 수 있다면 견뎌내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교정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것은 어떻게 이가 안 뽑힐 수가 있냐는 것이다. 철사를 교체할 때마다 이가 뽑힐 것 같은 정도의 힘으로 철사를 당기고 조이신다. 물론 그것이 수없이 발전해 온 교정의학의 길이겠지만 나는 뽑히지 않는 내 이가 늘 신기하다.
병원에서 철사를 교체하고 오면, 한동안은 부드러운 빵이나 만두의 얇은 반죽도 씹을 수가 없다. 양치를 하는 일은 매일 스스로 고문하는 기분이다. 그럼에도 교정을 시작한 걸 후회한 적은 없다. 이렇게 해서 고쳐질 수 있다면, 나는 견딜 수 있다. 실제로 교정을 시작하고 얼굴이 달라졌다고 얘기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그럴 때면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데 필요한 것이 이 정도의 고통이라면 그 무엇이든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정해진 기간과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해서 바로 세워진다면, 나는 내 마음을 교정하고 싶다. 주치의를 한 명 두어 매일 들여다보며 관리해주고 싶은 기분이다.
그런데 비뚤어진 치아 하나 옮기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비뚤어진 마음은 어떻게 곧게 세울까. 올바로 세워놔도 조금만 한눈팔면 비뚤어지기 마련인 게 내 마음인 것 같다. 평생에 걸쳐 관리하고 스스로 양치하는 고통이 따르겠지.
이제 나의 튀어나온 앞니는, 언제 어떤 치아가 그랬는지도 모르게 가지런해졌다. 비뚤어진 마음에도 철사 하나 걸어 조금씩, 아주 조금씩 세워가면 언젠가는 원래부터 곧게 자란 듯, 아무렇지 않게 웃을 수 있을까. 언젠가 교정이 끝나면 또 기록을 남겨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