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싫어한다는 변명

나는 왜 여행을 안 좋아할까?

by 엠마

나는 나 자신이 여행에 별 흥미가 없다고 생각해 왔다. 대학생 때 그 흔한 배낭여행 한번 가보지 않았고 해외여행도 결혼하고 남편과 간 신혼여행이 처음이었다. 내가 왜 여행을 좋아하지 않나, 정말 안 좋아하는 게 맞나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리고 가장 좋았다고 기억하는 여행을 떠올려 보았다.


내가 기억하는 제대로 된 여행은 2018년 통영으로 혼자 1박 2일 떠났던 것이다. 20대 때에는 연애사업에 학교생활에 바빠 혼자 있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고, 30대 결혼 후에는 혼자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첫째 아들을 출산하고 1년간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혼자만의 시간이 간절해졌다. 첫째 아들이 돌이 되었을 때 나는 나 자신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선물해 주고 싶었다.


떠나야겠다는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은 한겨울에도 따뜻한 바다, 통영이었다. 나는 부산에서 태어나 바다를 항상 곁에 두고 자랐지만 통영의 바다는 그 어떤 곳과도 달랐다. 신혼 때 남편과 종종 통영으로 드라이브를 갔었다. 거제도가 거친 남자의 바다라면, 통영은 소담한 반달눈썹의 미인을 연상시키는 바다였다. 통영은 나에게 따뜻한 햇살과 조용한 파도소리, 그리고 작은 어촌에서 일하는 어부들로 기억에 남아 있었다. 그 따뜻한 바다에 안겨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통영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제일 먼저 간 곳은 욕지도로 떠나는 선착장이었다. 평일 낮이라 욕지도로 가는 배 안에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파란 바다를 배경으로 오랜만에 내 사진을 찍었다. 아기 사진만 가득했던 내 사진첩이 순식간에 쨍한 파란 색깔로 물들었다. 햇살 조명 탓인지 내 얼굴도 아기 못지않게 사랑스러워 보였다. 그리고 배에서 내려 작은 어촌 마을을 거닐며 곧 그리워질 바다 사진을 마음껏 눈에 담았다. 나는 욕지도를 간 이후에도 미술관, 유적지, 박물관, 카페, 서점 등 많은 곳을 다녔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내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욕지도에서 본 그 바다이다. 차분하게 찰랑이던 바다와 부서지던 햇살로 통영은 그렇게 남아있다.


내가 얼마나 당시 비장했냐면 목도리도 일부러 바다색 닮은 것으로 하고 갔었다.


5년 만에 엑셀파일로 만들었던 통영 여행 일정표 파일을 열었다. 시간 대 별로 빽빽하게 미술관, 박물관, 서점 등... 가고 싶었던 곳들이 적혀있다. 그 정성스러운 리스트를 보고 있자니, 그 당시 나의 절박함이 보인다. 나는 내가 기계적으로 노동하는 육체가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임을 느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하루종일 돌봄 노동을 하다 보면 내 시간도 온전히 내 것이 되지 못한다. 아이 자는 시간, 먹는 시간에 맞춰야 하고 그것마저 규칙적이지 않다. 그래서 나는 나에게 주어진 약 48시간의 시간만큼은 내 마음대로 계획해보면서 내가 이렇게 시간을 계획하고 그대로 이행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다시 깨닫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엄마라는 대명사가 아니라 욕망의 주체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통영에서의 여행을 추억해 보며, 다시 한번 내가 정말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 게 맞나 생각해 본다. 내가 생각했던 여행은 혼자만의 시간과 그 시간을 나그네처럼 쓸 수 있는 자유이다. 나는 통영에서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가졌고, 엑셀표에 적은 곳을 다 가보는 목표를 이뤘다. 하지만 지금에서야 기억나는 건 통영의 파란 바다와 내가 이런 계획적인 시간을 원하고 있었다는 깨달음 정도이다. 어쩌면 여행은 계획한 것을 다 수행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를 얻어오는 데 있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설사 계획대로 다 하지 못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만족하며 그 안에서 얼마든지 기쁨을 찾아낼 수도 있는 것이 아닐까.


내가 그동안 여행이 싫다고 생각했던 건, 누군가와 함께 떠났을 때 내 마음대로 계획할 수 없음에 대한 불안함 때문이었다. 하지만 계획대로만 된다면 여행도 인생도 너무 재미가 없을 것이다. 또 언제 한번 계획대로 인생이 풀린 적이 있기나 했던가. 아이가 여행 중에 갑자기 화장실이 급해서 들린 호수공원이 너무 아름다웠던 것, 남편이 찾은 식당이 문을 닫아서 옆에 가게에 갔는데 오히려 맛있던 것처럼 계획하지 않은 것에 뜻밖의 재미가 있기도 하다. 나는 내 가족을 믿고, 그들과 함께한 여행은 반드시 즐거울 수밖에 없으리라는 성공 경험들을 계속 쌓아나가고 싶다.


여행이 곧 인생이고, 인생이 곧 여행이라면 나는 앞으로도 계속 혼자일리가 없다. 가족들과 함께할 것이고 누군가와 함께라면 계획대로 될 리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은 너무 슬프다. 마치 인생이 재미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계획대로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여행이라도 그 속에서 기꺼이 기쁨을 찾아내고 행복을 누리며 깊은 깨달음을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 일상은 얼마나 떠내려가기 쉬운가. 무난하고 평범한 하루를 보내기는 얼마나 힘든가. 마음이 세월에 휩쓸려버리지 않도록 나는 그렇게 여행을, 인생을 좋아해 보려고 오늘도 노력 중이다.


최근에 다녀온 LA 여행에서. 아이와 함께라 변수도 많았지만 함께라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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