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궁금했다. 엄마가 정말로 동생과 나를 똑같이 사랑하는지.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린 내가 물어볼 때마다 엄마는 손가락 열 개를 펴 보이고선 "손가락 열 개를 깨물어봐. 다 아프지? 그거처럼 엄마는 너희 둘 다 사랑해."라고 대답해 주었다. 그때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엄마 말에 수긍하는 척했지만 엄지 손가락이 제일 크니까 덜 아프지 않나라는 생각을 했었다. 마치 내가 남동생 보다 크니까 덜 사랑한다고 느끼는 것처럼.
나는 4살 어린 남동생이 있다. 부모님 말씀에 토 달지 못하고 그저 네네 했던 나와 달리, 남동생은 싫은 게 있으면 싫다고 적극적으로 말하는 성격이었다. 엄마가 무서워서 싫다고 말도 못 했던 나는 엄마한테 대들 수 있는 동생이 신기하면서도 부러웠던 것 같다. 둘이 싸워 같이 혼날 때에도 동생은 오히려 엄마에게 버럭 화를 냈다. 그러면 엄마는 오히려 동생한테는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려고 했다. 대놓고 차별하지는 않지만 나와 동생을 대하는 온도의 차이가 분명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첫째를 키우는 동안 둘째는 낳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나의 경험을 내 아이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아서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첫째가 6살 되던 때, 계획하지 않았던 둘째가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다. 둘째 임신 했을 때는 첫째보다 유독 힘들었다. 남편과 주말 부부로 떨어져 있어 혼자 산부인과를 다니고 회사도 다니고, 임신한 상태로 미국으로 이사도 왔다. 그러다 보니 첫째 아들에게 '엄마 지금 뱃속에 동생이 있어서 힘드니까 조금만 기다려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온 게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혹여 첫째 아들이 자신을 덜 사랑한다는 생각을 할까 봐 그러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임신한 내 몸 보다 아들을 우선시하고 아들이 혹여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을까 마음을 살폈다. 그렇게 나는 나의 과거를 위로했다.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나는 첫째 아들에게 중요한 비밀이 있다고 말했다. 엄마 꿈속에 아기 동생이 나와서 오빠에게 말을 전해주고 갔다고 이야기를 꾸며 말해줬다. 지금 뱃속에 있는 동생이 사실은 천사인데 하늘에서 보니 오빠가 너무 멋지고 좋아서 지금 우리 집에 찾아온 거라고. 그런데 자기가 몸도 못 움직이는 아기라서 막상 태어나면 시끄럽게 울기만 할 텐데 조금만 참아달라고 한다고. 그러면서 자기가 태어나면 오빠에게 멋진 선물을 하나 주겠다 했다고 말했다. 사실은 출산일에 맞춰서 아마존으로 첫째 아들에게 줄 장난감을 주문해놓은 것이었지만 말이다. 아들은 그 이야기를 찰떡같이 믿고는 동생이 태어날 날만 기다렸다.
드디어 둘째가 세상 밖으로 나왔다. 첫째 아들은 동생을 보자마자 정말 예뻐했다. 자기한테 선물도 준 귀여운 동생이라고 좋아했다. 나 역시 임신했을 때만 해도 첫째만큼 사랑할 존재가 또 있을 수 있을까 내심 걱정했었다. 그런데 둘째 사랑은 첫째와는 또 다른 색깔로 내 심장을 바로 물들여 버렸다. 사랑이란 참 이상하지, 나누면 나눌수록 커진다. 첫째와 둘째가 함께 있는 모습을 보면 더 사랑스럽고, 하루종일 아기 동생을 안고 있는 엄마를 배려해 주는 모습을 보고 첫째 아들에 대한 사랑이 더 자란다.
첫째와 둘째를 똑같이 사랑하냐고 다시 나 자신에게 묻는다면, 똑같다라고 잡아뗄 수 없는 미묘함이 있다. 나는 분명 첫째와 둘째 모두를 사랑하지만, 그 사랑의 모습이 다르다. 둘째 딸은 이제 막 5개월이 된 아기라 존재 자체로 사랑스럽다. 신생아의 부드러운 솜털과 폭신폭신한 볼살, 엉덩이... 둘째 딸은 손길을 절로 부른다. 잠재우는데 한 시간씩 걸리던 첫째 아들과 달리, 둘째는 눕히면 바로 잠에 들고, 또 잘 먹는다. 그래서 오히려 내 머릿속에 별로 존재감이 없다가도, 나와 눈만 마주쳐도 방실방실 좋아하며 웃는 모습을 보면 절로 달려가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요즘 내가 가장 많이 만진 것은 아마 둘째의 볼살이 아닐까 싶다.
첫째 아들에 대한 사랑에는 기대감이 더해져 있다. 내가 소파에서 동생을 안고 있으면 첫째 아들은 꼭 옆자리로 다가와 같이 만지고 싶어 한다. 어느 날, 내가 여느 때처럼 첫째 아들에게 숙제를 시켜 놓고 소파에 둘째를 안고 있었다. 아들은 숙제하다 말고 동생 머리 한 번만 만져 봐도 되냐고 물었다. 자리에 진득하게 좀 앉아서 문제를 풀었으면 좋겠지만 그래, 한 번만 만지고 가라고 해주니 냉큼 달려와 동생 머리를 쓰다듬고 있는 아들. 그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여서 나도 첫째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많이 자라서 조금은 굵어진 머리카락과 그 아래에 아직 남아있는 부드러운 솜털과 빨개진 볼. 문득, 내가 첫째 아들을 만진 게 너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첫째 아들이 혼자서 무언가를 해내기를 바라는 기대감에 먹어라, 씻어라, 숙제하자.. 일상적인 지시를 더 하게 된다. 그러느라 정작 사랑스러운 터치는 해주지 못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분명 나는 첫째 아들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막상 내 사랑을 아들이 제대로 느끼고 있는지 모르겠다. 오랜만에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는 사실이 내 가슴을 저릿하게 만들었다.
이제 내가 나이 마흔이 거의 다 되어 아들을 키우면서 다시 생각해 보면, 엄마가 남동생에게 더 친절하게 대한다고 느꼈던 건 아들과 딸의 타고난 특성 차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엄마도 말 안 듣는 아들을 키우며 고단함을 느끼지 않았을까. 하지만 항상 그랬듯이 엄마는 잘 해내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참고 인내하고 더 다독여서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주려고 하는 것들... 바로 내가 지금 내가 내 아들에게 하고 있는 것들 말이다. 어릴 때는 엄마의 그런 모습이 동생을 더 사랑한다고 느끼게 했지만, 지금 돌이켜 보니 그건 엄마의 부단한 노력이었다.
오랜만에 내가 결혼할 때 엄마가 줬던 내 어린 시절 모습이 담긴 앨범을 꺼냈다. 사진마다 엄마가 꾹꾹 눌러쓴 짧은 기록들이 있는데 그걸 보니 새삼 엄마의 나에 대한 사랑이 느껴지는 것 같다. 지금의 나보다 10년은 젊었던 당시의 엄마 삶을 상상해 보는 것. 그리고 내가 지금 남매를 키우면서, 엄마도 그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나와 남동생을 키웠을 것이라는 이해를 해보는 것이 지금 내 육아의 의미인 것 같다. 얼마나 세월을 빙빙 돌아 결국 나는 엄마를 엄마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이해해 보게 되는 걸까.
엄마의 사랑을 이제야 깨달아 가고 있는 것처럼 내 아이들도 훗날에서야 내 사랑을 느끼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모두 다른 모양이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제대로 표현해야 닿는 것이라는 걸 육아를 통해 다시 깨닫는다. 첫째 아들을 하루종일 쫓아다니며 하는 나의 잔소리에 사랑스러운 터치를 좀 더 넣어줘야겠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하라, 밥 먹어라는 말 보다 먼저 꼭 안아주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