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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Nov 05. 2023

미국에 산 지 1년, 가장 좋은 점은?

 어느 날씨 좋은 가을날이었다.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캘리포니아의 환상적인 날씨가 연일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현관문을 걸어 잠근 채, 6살 아들과 책상에 앉아 씨름 중이었다. 아들과 대치하고 앉은 책상 가운데에는 영어 파닉스 교재가 놓여 있었다.


 당시에 나는 둘째 아이를 임신한 만삭의 상태였다. 내 몸 하나 제대로 건사하기도 힘들었지만 나는 아들의 공부를 그냥 놓아둘 수가 없었다. 나는 둘째를 출산하기 전에 첫째 아들에게 스스로 공부하는 습관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학교 마치고 돌아온 아들을 매일 책상에 앉히고 영어, 수학 공부를 시켰다.  



 "뭐야?! 이걸 왜 몰라?"


 어제도 연습한 건데 방금 또 알려준 건데... 그걸 또 까먹고 아들이 모른다고 하면 나는 불같이 화가 일었다. 또래보다 말을 빨리 하고, 책도 좋아해서 양가 부모님들의 기대를 모으던 아들인데. 아들이 똑똑하다는 건 다 나의 착각이었나? 나는 한숨이 길어지고, 결국 폭발하고, 아이는 더 공부와 멀어지고.... 악순환이 계속됐다.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아들과 책상에 앉아있었다. 나는 5개 정도의 단어를 노트에 써놓고 소리 내어 읽어보라고 호통을 치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 '똑똑'하는 소리가 났다. 한국에서는 경비실이 있고, 고층 아파트에 살았기 때문에 안전에 대한 걱정은 없었는데, 미국은 주택에 살다 보니 작은 문소리에도 예민해진다. 그런데 이번 문 두드리는 소리는 아주 크고 거칠었다. 대체 누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거지?



"Hello, Ok, Thank you."


 나는 아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한 뒤, 그 소리가 잠잠해 지기를 가만히 숨죽여 기다렸다. 마치 여기에는 아무도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 소리가 잦아드는가 싶었는데 다시 또 '똑똑 똑똑!' 큰 소리가 났다. 나는 현관문에 달린 창으로 살짝 누군지 보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들이 달려와서 큰 소리로 '누구야?' 하고 문을 열어버렸다.


 상대는 통신사 팸플릿을 들고 서 있는 외판원이었다. 그는 정중하지만 빠른 속도의 영어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당시에 나는 영어를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런 외판원에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한국이었다면 그냥 문을 쾅 닫고 말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는 모든 행동이 조심스럽게 느껴졌던지라, 나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그 외판원의 말을 다 들어주고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당시에 내가 가장 많이 하던 말은 'Hello, Ok, Thank you'였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그냥 대충 웃고 넘기고, 문제없이 넘어가면 다행이라고 생각했던 그때, 나는 거절의 말을 영어로 어떻게 잘할 수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 외판원도 내가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으니, 뭔가 이 상품에 관심이 있는가 싶어서 계속 나에게 이야기를 했을 것이다.


 내가 당황스러워하면서 계속 문 앞에 서 있자, 아들은 주변을 알짱대며 돌아다니다가 나 대신 그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미국 학교에 들어간 지 2-3달 밖에 되지 않았지만 아들은 영어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었다. 아들은 간단한 단어들로 이야기를 이어나가다니, 결국 내 말을 전달해서 그 외판원을 돌려보내기까지 했다.



"나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방금 전까지 'come, play, these' 이런 기본 단어를 더듬더듬 읽던 내 아들 맞는 건가? 조금 전까지 그걸 못 읽는다고 큰 소리로 호통치던 엄마는 어디로 갔나? 그 글자 몇 개 아는 게 얼마나 대단한 거라고 나는 아들에게 화를 내고 있었을까.


 집 밖으로 나가는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는 마치 내가 이 집안의 대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굴고 있었지만 이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나는 외판원 한 명 돌려보내지도 못하는 바보구나 하는 자각이 들었다. 글자를 조금 더 빨리 읽고 쓰는 것보다, 말로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진짜 영어공부였다. 내가 아들에게 죽은 영어를 아들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있었구나... 나야말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구나 하는 슬프면서도 굉장히 뾰족한 깨달음이 내 머리를 내려쳤다.


 내가 그날 외판원을 만난 것은 정말 행운이다. 그때의 짧지만 강렬했던 사건 이후, 나는 더 이상 아들에게 고압적인 태도를 부리며 공부를 시킬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아들인 네가 나보다 훨씬 대단한 존재이고, 엄마는 네가 잘 모르는 부분을 조금 도와주는 사람일 뿐이다라는 태도로 아들과의 공부시간을 보냈다. 아들은 영어 못하는 엄마를 오히려 편안해했다. 엄마가 고압적인 자세로 영어를 가르칠 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영어를 배웠다.  그렇게 1년이 지난 지금, 아들은 걸어 다니면서도 책을 읽을 만큼 영어를 즐기고 있다.   



"미국에 온 지 1년, 가장 좋은 점은?"


 누군가 내게 미국에 와서 좋은 점이 뭐냐고 묻는다면, 내가 얼마나 '못난 사람'인지 깨닫게 된 것이라고 할 것이다. 그것이 꼭 나쁜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나를 보호하고 있던 모국어의 꺼풀을 벗고 못난 내 모습을 마주해 보고 나니, '못난 사람'은 보살펴주고 도와줘야 하는 불쌍한 존재만은 아니었다. 보잘것없는 존재이기에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내가 조금 더 아는 부분이 있다면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완벽한 모습으로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미국에서 대단한 가치를 배우고 돌아간 것일 테다.


 물론 미국 캘리포니아의 신선한 공기와 매일 화창한 날씨, 인근의 멋진 공원과 도서관 등 인프라를 누릴 수 있다는 것도 대단한 행운이다. :)


매일 오후에 맞이하는 아름다운 하늘


미국 대자연의 아름다움


영어 원서를 실컷 읽을 수 있고, 알찬 프로그램들이 많은 도서관


아이들이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넓은 공원들


한국에서 즐길 수 없었던 뒷마당 라이프


그럼에도 가장 좋은 건, 나야 말로 너무나 공부가 필요한 부족한 사람이라는 자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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