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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Aug 22. 2023

Thank you뒤에 하지 못한 말

"뭐야?! 왜 이렇게 쉽게 하는 거야?"

방바닥에 누워있던 남편이 내가 몇 달을 연습해도 안 되는 요가 동작을 단번에 성공했다.


"와!! 아빠 힘세다!"

옆에서 보고 있던 아들이 아빠 팔을 만져보며 감탄했다.


어린 아들은 타고난 남녀 신체 차이를 스펀지처럼 생활 곳곳에서 받아들였다. 엄마와 아빠의 모습에서, 학교 친구들 놀이에서도 아이는 남녀가 다르다는 것을 강조했다. 그래서 언제인가부터 남자는 힘이 세고 여자는 약하고, 남자는 블루이고 여자는 핑크이고, 남자는 칼싸움이고 여자는 카페놀이를 한다는 식으로 남녀를 구분했다.  


그런데 미국에 와보니, 내가 그동안 남녀의 전형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른 '생소한 몸'을 많이 보게 됐다. 마트를 다니다가도 아니 저런 체형이 가능한가? 싶을 정도로 동양인의 몸에서는 절대 나올 수 없는 몸의 굴곡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 번은 여자 아마존 택배 기사님을 만났는데, 그녀는 남자들도 들기 어려운 커다란 박스를 번쩍번쩍 들어 옮겼다. 그녀의 허벅지는 정말 내 허리만큼 두껍고 단단해 보였다.


한국에서는 '다양성'이라는 가치를 당연히 지향해야 하는 옳은 일이라고 관념적으로 생각했지만, 미국에서는 '다양성'을 피부로 체감하며 느낀다. 미국은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질서를 유지하며, 점점 더 강대국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다양성'은 옳기 때문에 지향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하는 것이 효율적이고 강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여름, 우리 아들도 농구 캠프에서 만난 코치 선생님 덕분에 남녀 차이의 편견을 벗어날 기회가 생겼다. 농구캠프는 여러 소그룹이 나뉘어서 여러 명의 담당 코치 선생님이 있었다. 아들의 코치 선생님은 젊은 흑인 여자분이었다. 아들은 캠프 첫날부터 선생님이 정말 재밌고 좋다며 잘 따르는 눈치였다.


캠프 일정의 막마지에 왔을 때, 이벤트로 코치들끼리 농구 대결이 있었다. 각 소그룹의 아이들이 또 다른 게임을 해서 이기면, 코치를 도와줄 수도 있는 룰이 있었다. 아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담당 코치 선생님을 정말 열렬히 응원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서 내가 오늘 어땠어? 하고 물으니 아들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 코치 선생님 진짜 근육이 엄청 많아!! 머슬맨이야!"


내가 이때다 싶어서 말했다.

"맞아!! 여자라고 다 약한 게 아니야. 코치 선생님 여자인데도 정말 힘세고 강하잖아."


내가 백날 이야기 해도 시큰둥하던 아들이, 실제로 그 선생님을 보고 느낀 게 있는지 바로 수긍했다.

"어 맞아. 그렇긴 하네. 근데 우리 선생님 정말 재밌고 웃겨."


아들의 장난도 잘 받아주고, 농구도 잘 가르쳐 주시던 우리 코치 선생님. 캠프 마지막 날 그 감사한 마음을 다 표현하고 싶었지만, 내가 했던 말은 그저 "Thank you. My son really loves you." 사실 내가 정말로 표현하고 싶었던 말은 이렇게 구구절절했다.


당신 덕분에 우리 아들이 여성에 대한 편견이 없어졌다. 아들이 엄마는 힘이 약하고, 아빠는 강하다고 생각하면서 모든 여자들이 힘이 약하다고 말해서 나는 걱정했다. 그런데 당신을 보고 아들이 머슬맨이라고 하고, 여자도 힘이 강할 수 있다고 하더라. 고마워.
Thanks to you, my son is no longer prejudiced against women. I was worried because he said that all women are weak, thinking that moms are weak and dads are strong. But when he saw you he said "she is a muscleman" and that women can be strong too. Thank you.


 루트잉글리시 혜란 선생님께서 이때 Muscle man은 콩글리시가 아니라 실제 미국에서도 쓰는 말이라고 알려주셨다. 힘이 센 사람을 표현하는 말은 iron man, strong, brawny, beefy, built, stacked, burly, hulking, robust, powerful 등이 있지만 부정적인 뉘앙스가 있을 수도 있다 한다. 그래서 가장 무난하게 쓸 수 있는 말은 'strong'이다.


 그리고 내가 혜란 선생님께 'muscleman'이라고 칭하면 그분이 기분 나쁘게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하고 물어보자 "그럼 그 선생님께 직접 한번 물어보시면 돼요."라고 답변해 주셨다. 맞아, 정말 그걸 직접 물어보면 알 수 있는 건데, 나는 또 지레짐작만 하고 혼자 속에서 걱정만 키웠다. 완전한 문장이 아니라도, 고마움은 어떻게든 표현하고, 물어볼 건 꼭 직접 물어보자. 이렇게 미국에서 나도, 하율이도 함께 한 발자국씩 나아가고 있다.



농구캠프 중 아들들의 뒷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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