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바비>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브런치에 <남편과 같이 보고 싶은 영화>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 둔 지 6개월이 지나도록 한 편의 글도 쓰지 못했다. 미국에 온 지 1년이 다 되었는데 그동안 남편과 함께는커녕, 혼자서도 영화를 한두 편 밖에 보지 못했다. 정신없이 미국에 적응하고, 둘째를 출산하고 두 아이를 키우느라 남편과 같이 소파에 나란히 앉아본 지도 오래된 듯하다.
결혼 전, 남편과 첫 데이트 장소는 극장이었고 우리는 결혼 후에도 종종 영화를 같이 봤다. 첫째 아들을 출산하고 키울 때는 아이를 재우고 밤에 같이 드라마를 봤다. 둘이 안방에서 빔스크린을 켜고 소리를 줄여 몰래 보는 드라마들이 그렇게 재밌었다. 그런데 둘째를 출산하고는 전혀 그런 시간을 즐기지 못했다.
두 아이가 평소보다 일찍 잠든 날이나, 첫째 아들이 한글학교에 갔을 때, 시부모님이 미국에 오셨을 때 등. 우리가 함께 영화를 볼 짬은 분명히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는 것은 핑계다. 거실에 앉아 둘이 같은 화면을 여유 있게 보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쩌다 시간이 생기면, 우리는 필요한 정보를 찾아보거나, 해야 할 나머지 일을 하거나, 각자 자기 계발을 했다. 그러기에도 하루하루가 쫓기듯 바쁘고 벅찼다. 나는 보고 싶었던 영상이나 드라마가 있으면 둘째 딸이 잠들었을 때 20분, 30분씩 나눠서 보곤 했다. 사실 그때마다 남편 생각이 났다. 평소에 남편에게 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던 말들을 영화를 빌어 전하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쓰고자 하는 이야기들의 제목은 남편과 같이 본 영화가 아니라, 같이 보고 싶은 영화이다. 우리가 동시에 여유가 생겨서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은 앞으로도 아마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주말 부부를 하게 될 것이니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그럼에도 남편이 이 글을 읽으면서 영화가 보고 싶어 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누군가도 인생의 동반자와 함께 나눌 이야기가 떠올랐으면 좋겠다.
남편과 보고 싶은 영화의 첫 번째로 쓰는 글이 핑크색으로 가득한 <바비>라니, 아이러니하다. 나는 영화관에 들어가기까지 <바비>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었다. 그저 유명인이나 지인들의 SNS에서 올리는, 핑크색 옷을 입고 영화관에서 찍은 인증숏들만 보고 이 영화를 판단했다. 나는 <바비>가 전형적인 여자아이를 위한 영화 혹은 추억의 인형놀이를 떠올리게 하는 추억팔이 영화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바비>는 단순히 소녀들을 위한 판타지 영화나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가 아니었다.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이 많아졌다. 영화가 끝나고 올라오는 크레디트를 보니 <바비>의 각본과 감독이 <작은아씨들>, <레이디 버드>를 연출하고 <매기스플랜>에서 매기 역을 연기했던 그레타 거윅이었다. 내가 요즘 이렇게 정신없이 살았구나! 최신의 페미니즘 담론을 꾸준하게 영상에 담아 온 그레타 거윅의 <바비>이니, 내가 이 영화를 보고 남편에게 할 말이 많아진 게 당연했다.
바비 인형들과 바비의 남자친구 켄 인형들이 모여 사는 바비랜드는 완벽한 가모장 사회이다. 바비들이 중심이 되어 권력을 잡고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바비들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서로에 대해 막연한 긍정과 천진난만한 응원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바비의 안온한 세상에 균열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바비가 '죽음'이라는 허튼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서부터이다. 바비는 바비랜드를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반강제적으로 인간세계를 찾아 떠난다.
인간세계에 떨어진 바비는 가부장제 세계의 쓴 맛을 본다. 남자들은 "웃어봐 금발!"라는 모욕적인 말과 기분 나쁜 웃음소리, 휘파람 소리를 바비에게 보낸다. 여자들은 바비 면전에 대고 "난 바비 싫어해"라며 바비를 상업화된 여성상의 아이콘이라며 혐오한다.
나는 바비가 바비랜드와 인간세계를 넘나들며 그 두 세계의 괴리에 번민하는 것을 보고 깊이 공감했다. 나는 어린 시절, 나도 남자와 다르지 않다고 교육받고 자랐고, 남자와 똑같이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을 갔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할 때까지만 해도 여자도 얼마든지 남자와 똑같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혼을 앞두고 엄마가 내게 당부한 것은 '인내'였다. 엄마로서, 아내로서 앞으로 인내할 일이 많을 텐데 그것을 감내해야 가정이 평안하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웨딩드레스는 적당한 노출이 있어 매력적으로 보이게, 메이크업은 아주 공들여 청순해 보이도록 세팅한 채, 나는 내면화된 가부장제를 몸에 장착하고 결혼이라는 배에 올라탔다.
결혼 후 자녀를 출산하고 보니 여성으로서, 엄마로서 감수해야 하는 제약들이 너무 많았다. 내가 임신하고 처음 읽은 태교책이 법륜스님의 <엄마수업>이었다. 법륜스님은 엄마가 아이를 업고 일하더라도 3년은 엄마가 아이를 끼고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당시 엄마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기꺼이 그 노력을 다했었다. 그러다 보니 남편과 나는 사회초년생 때 같은 지점에서 출발했지만, 나는 아이 둘을 출산하고 휴직과 복직, 부서이동을 반복해 오면서 커리어적으로 남편보다 훨씬 뒤처져 있다. 남편 못지않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말이다.
영화에서는 켄이 가부장제라는 신문물을 바비랜드에 전파하여, 바비들이 자기 주도성을 완전히 잃는다. 이때 바비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인간세계에서 온 글로리아가 명 스피치를 한다. 그녀는 보통의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힘든 일일지 토해내듯 고백한다. 말라야 하지만, 너무 마르면 안 되고, 절대 마르고 싶다고 말하면 안 되고 건강하고 싶다 말해야 하지만, 결국엔 말라야 한다. 엄마가 되는 것을 사랑해야 하지만, 일할 때는 절대 아이에 대해 말하면 안 된다 등등. 사회에서 요구하는 여성으로서의 규범이 얼마나 말도 되지 않는지 말하는 내용에 구구절절 공감했다.
바비들도 글로리아의 스피치를 듣고 다시금 눈을 뜬다. 인간과 인형을 넘어서서 '여성'이라는 공통분모가 바비들을 일깨웠듯이, 나 역시 나와 비슷한 처지의 여성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상호연대를 꾸려왔다. 남편에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같은 상황을 공유하는 여성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점점 더 재밌어졌다. 남편에게 정작 가장 하고 싶었던 말, "여보 나 힘들어."라는 말을 하지 못한 채 말이다.
남자인형 켄은 바비랜드에서 존재감이 없다. 켄은 바비가 바라봐 줄 때에만 멋진 날을 맞이한다. 켄이 딱딱한 플라스틱 파도 위에서 몸을 던지는 것도 바비의 시선을 받기 위해서 이다. 그는 파도에 부딪쳐 바닥에 넘어지고, 바비의 손길을 받고 일어서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자기를 도와줘야 할 바비는 밤마다 이어지는 여자들의 파티에만 온통 관심이 쏠려 있기 때문이다.
나는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켄을 보며 남편을 떠올렸다. 남편은 딱히 취미도 없고, 선호도 분명하게 있지 않은 평범한 40대 가장이다. 무엇을 먼저 하고 싶다는 말을 도통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남편이 나에게 심리적으로 힘들다, 좋아하는 것을 찾고 싶다는 말을 했었던 때를 생각해 보면, 내가 첫째 아들을 낳고 육아휴직 했을 때와 둘째 딸을 낳고 휴직해 있는 최근이다.
나는 평소에도 청소와 정리를 잘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지만, 육아휴직을 하고 전업주부가 됐을 때 좀 더 정리정돈 강박이 심해졌다. 화장실 세면대, 책상, 아일랜드 식탁에는 아무 물건도 놓여있으면 안 되고, 수건을 개는 순서, 책을 놓는 위치, 서랍 속에 볼펜의 개수까지... 나만의 룰이 집에 가득했다. 언젠가 남편이 "이 가방은 어디에 둬야 해?"하고 나에게 물었다. 자기 가방임에도 나에게 놔둘 위치를 물은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우리가 같이 사는 집인데, 내가 너무 내 맘대로만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켄은 인간세계에서 배워온 가부장제라는 신문물을 바비랜드에 전파한다. 남자이기만 해도 우대를 받는 인간세계를 경험하고 와서는 자아에 대한 비대하고 비뚤어진 남성상을 심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곧 켄들 끼리의 전쟁으로 무너지고 만다. 그때 켄은 바비 없이도 스스로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켄덤(Ken+Kingdom) 대신 Kenough(Ken+enough)라고 적힌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다. 남성도, 여성도 아닌 나 자신, 그대로도 나는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주듯 말이다.
내가 남편에게 하고 싶었던 말도 그렇다.
"켄이 바비들만 중심이 된 바비랜드에서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하며 외로워했듯이, 당신도 또 하나의 바비랜드가 된 우리 집에서 많이 힘들었겠다. 나도 당신 힘든 거 알아. 내가 다 옳은 게 아니야. 내가 세운 규칙은 내가 좀 더 편안하게 집안일을 하려고 만든 것일 뿐이야. 그걸 같이 지켜주는 당신이 고마운 거야."
나는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말을 가득 품은 채 영화를 보고 있었기에, 영화의 결말이 너무 궁금해졌다. 그래서 바비랜드와 텐덤은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까? 바비와 켄은 어떻게 '나 자신'을 찾을 수 있을까?
바비는 변해버린 바비랜드에서 방황하다가 모든 의욕을 잃고 바닥에 쓰러져 죽은 듯이 엎드려 눕는다. 마텔 회사에서 그녀를 인형상자에 다시 넣으려고 할 때도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도망쳐 나오던 용감한 바비인데, 스스로 너무 절망한 나머지 모든 인간성을 버리고 버려진 인형이 되어버린다. 마치 한참 놀다가 실증 나서 집어던져버린 바비인형의 뒷모습을 보듯이, 처연한 그 모습에 나는 마침에 눈물이 났다.
그때 마텔 회사의 창시자이자, 바비를 태초에 만든 루스가 나타난다. 루스는 바비에게 이렇게 말한다. "Walk with me." 루스는 절망한 바비에게 어떤 위로나 충고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같이 걸으면서 스스로 삶의 의미를 깨닫고 용기를 낼 수 있도록 기다려준다. 내가 남편에게 하고 싶은 마지막 말도 이것이다. 우리 일단 함께 걸어가 보자는 것. 바비만 사는 바비랜드도, 켄만 사는 텐덤도 아닌 그 어딘가 사이에서 우리는 함께 걸으며 답을 찾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수고를 알아보는 알아보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살다보면, 우리 각자가 답을 찾을 수 있으리라.
결말이 너무 추상적이고 모호하기 때문에 실망했다는 관람평도 많았다. 나는 이 부분에서 그레타 거윅 감독의 고민이 있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레타 거윅의 남편은 현실적인 현대 결혼생활을 쿨하게 담은 영화 <결혼이야기>를 연출/각본/제작한 노아 바움백이다. 그레타 거윅과 노아 바움백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세 아이를 낳고 파트너십을 유지하고 있다. <바비>의 각본도 두 사람이 함께 고민한 결과이기에, 남녀의 시각에서 모두 동의할 수 있는 결말을 찾은 것일 테다. 둘 다 각자 커리어를 일궈 나가면서 가정도 함께하고 있는 두 사람이 맺은 결말이기에, 나는 어떤 명확한 답을 내린 것보다 함께 걷자는 메시지에 더 신뢰감이 간다.
나는 <바비>를 남편 대신 7살 아들과 함께 극장에서 보았다. 남편이 일주일 출장을 갔을 때, 나는 아들에게 일주일 동안 아들에게 화를 내지 않기로 아들과 약속했었다. 그 약속을 지키면 아들이 엄마 소원을 들어주기로 했다. 겨우 나는 그 약속을 지켜냈다. 그리고 평소의 아들이라면 절대 같이 볼 것 같지 않은 영화, <바비>를 영화관에 같이 가서 보자는 소원을 빌었다.
아들은 요즘 검은색 옷만 고집하고, 분홍색은 여자 색깔이라며 거부했다. 여자들은 무지개를 좋아하고, 카페를 좋아하고, 아기놀이를 좋아한다는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아들. 나는 아들에게 <바비>를 보러 가자며 가운데 핑크색 보석 패턴이 있는 검은색 티셔츠를 입혔다.
영화관에 들어서자 가운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부스가 있었다. 아들은 핑크색으로 가득한 그곳에서 절대 사진을 찍지 않을 것이라고 버텼다. 억지로 찍은 사진엔 아들의 찡끄린 표정이 담겼다.
하지만 영화가 시작되자 아들은 금방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바비가 쓰러져 있는 장면에서는 나랑 같이 눈물을 흘렸고, 켄이 'Kenough' 티셔츠를 입고 춤을 출 때는 같이 웃었다. 영화관에서 나와서도 <바비>가 너무 재밌었다며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계속 영화 이야기였다.
그리고 며칠 뒤, 학교 숙제로 나를 소개하는 'All about me bag'이라는 종이봉투를 꾸며가는 것이 있었는데 아들 마음대로 그리라고 했더니 봉투에 'black'과 'pink'를 같이 써놨다. 'black'은 자기가 좋아하는 색이라 쓴 거고, 'pink'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엄마가 좋아하는 색이라 써둔 거란다. <바비>를 같이 보고 온 효과가 이렇게 나타나는구나 했다.
나는 앞으로도 아들이 싫어하는 '여자 영화'를 종종 영화관에 가서 아들과 함께 보려고 한다. 그 소원을 이루기 위해 나는 아들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것이다. 아들의 바람과 나의 소원이 함께 이루어져, 앞으로 아들이 사는 세상은 'black and pink'이길.
+ 영화에서 글로리아가 스피치 하는 대사는 아래와 같다. 영화관에서는 다 못 알아 들었지만, 다시 집에 와서 전문을 찾아 읽었다. 그러고 보면 그레타 거윅의 영화에서는 꼭 이런 명 스피치가 등장한다!! 그녀의 다음 영화도 너무 기다려진다.
It is literally impossible to be a woman. You are so beautiful, and so smart, and it kills me that you don't think you're good enough. Like, we have to always be extraordinary, but somehow we're always doing it wrong.
You have to be thin, but not too thin. And you can never say you want to be thin. You have to say you want to be healthy, but also you have to be thin. You have to have money, but you can't ask for money because that's crass. You have to be a boss, but you can't be mean. You have to lead, but you can't squash other people's ideas.
You're supposed to love being a mother, but don't talk about your kids all the damn time. You have to be a career woman but also always be looking out for other people. You have to answer for men's bad behavior, which is insane, but if you point that out, you're accused of complaining. You're supposed to stay pretty for men, but not so pretty that you tempt them too much or that you threaten other women because you're supposed to be a part of the sisterhood.
But always stand out and always be grateful. But never forget that the system is rigged. So find a way to acknowledge that but also always be grateful. You have to never get old, never be rude, never show off, never be selfish, never fall down, never fail, never show fear, never get out of line.
It's too hard! It's too contradictory and nobody gives you a medal or says thank you! And it turns out in fact that not only are you doing everything wrong, but also everything is your fault.
I'm just so tired of watching myself and every single other woman tie herself into knots so that people will like us. And if all of that is also true for a doll just representing women, then I don't even know.
- <바비> 글로리아 대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