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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엠마 Sep 28. 2023

내 발음이 어때서

망치여사에게 배우는 진짜 영어


스무 살의 나와 마흔의 나


 미국에서의 생활은 대학교 1학년 때의 내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스무 살의 나는 부산에 있는 집에서 멀리 떨어져 자유를 찾았다는 해방감 때문에 항상 조금 흥분해 있었다. 높은 구두를 또각거리며 대학가를 하루종일 걸어 다니고 온 날 저녁엔 그날의 흥분치 만큼 발 뒤꿈치가 까져 빨개져 있었다. 상처 난 발에 반창고를 붙이고, 다음 날 어김없이 또 구두를 신고 나가던 그때, 나는 하이힐 높이만큼 공중에 붕붕 떠나니고 있었던 것 같다.


 마흔의 나는 구두 보다 크록스가 편한 아이 둘 엄마가

되었다. 하지만 매일 밤 빨개진 뒤꿈치를 뒤늦게 발견하고 아파했던 것처럼, 자기 전 이불 속에 들어가 상처 난 자존감과 못다 표현한 말로 괴로워하는 건 20년 전과 비슷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스무 살의 나는 다음날 거짓말처럼 발이 더 나아있었다는 것이고, 지금은 상처들이 쌓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말과 영어

 

 스무 살의 나는 평생 살아온 부산을 떠나 서울로 대학을 갔다. 대학 합격 소식을 듣고 서울로 올라가기 몇 달 전, 나는 뉴스를 보며 표준어를 연습했다. 동생이 아직도 그때의 내 모습을 기억하고 놀린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진지했다. 터져 나오는 부산 사투리를 숨기고, 서울 사람처럼 세련되게 표준어를 구사하고 싶었다.


 그 노력 덕분일까, 서울에 온 지 한 달 정도 지나자 서울 억양이 입에 붙었다. 처음 만나는 사람이 내 고향을 묻기 전까지는 내가 부산에서 온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도록, 그리고 사회에 나가서도 부산 사투리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나는 그 사람들을 보며 왜 저렇게 사투리를 못 고칠까 의아하게 생각했다.


 마흔의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한국식 억양이 없어지질 않는다. 처음에는 의식적으로 미국발음을 흉내 내더라도, 정확하고 크게 말하려고 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한국식 발음이 나오는 식이다. 원어민이 하는 말의 내용도 알고 보면 어려운 단어가 하나도 없는데, 미국식 발음 때문에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자주 입을 닫았다. 상대가 하는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지 못할까 봐 차라리 입을 닫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입을 여는 것보다는 그렇지 않은 편이 오히려 내 자존심 스크레치를 덜 나게 하는 게 하는 것이겠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유창하고 완벽하게 영어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길수록 더 말은 나오질 않았다.  



망치여사님께 배우는 진짜 영어 


 그러던 어느 날 유튜버 ‘망치’ 여사님을 알게 됐다. 나의 엄마 나이 정도 되는 푸근한 한국 아줌마 모습인데, 구독자 630만 명을 거느리는 미국에서 아주 유명한 유튜버이다. 외국인 기준으로 생소할 수 있는 한국 음식 재료, 조리도구 설명부터 한국 특유의 애매한 계량방식까지 자세히 설명해 줘서 미국인들이 아주 좋아한다.

 망치여사는 한국 여수에서 태어나 90년대에 미국으로 이민 왔다. 그녀의 영어 발음은 완전 한국식이다. 누가 봐도 외국인이 하는 영어발음인데 많은 미국인들이 영상을 구독하고 있다니, 나에게는 충격이었다. 그녀의 영어를 들어보면 발음은 너무 한국식이지만, 명확하게 문법에 맞는 문장을 구사하고, 단어에

악센트를 지킨다. 나는 망치여사처럼만 말해도 미국인들이 영어를 이해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영어는 화려하게 원어민처럼 발음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의사소통이 되도록 말을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이었다.


 나는 어린아이를 키우다 보니 유튜브 영상을 여유 있게 보고 있을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하지만 간간히 요리 레시피를 찾아볼 일이 생기거나, 아주 드물게 혼자 밥 먹을 수 있는 시간이 생기면 망치 여사님 유튜브를 보기 시작했다. 발음이 익숙하니 알아듣기도 쉽고, 요리 용어를 영어로 배울 수 있어서 좋았다. 망치여사님처럼만 말하면 진짜 영어를 내뱉을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기는 것 같았다.


아마존 발췌, 망치여사님의 베스트셀러 책 표지



내 발음이 어때서 


 스무 살의 나, 그리고 마흔 살의 나는 낯선 환경에 새롭게 적응해야 하는 비슷한 상황에 있지만, 적응하는 방식에 차이가 생기고 있다.


 스무 살의 나는 서울에 완전히 나 자신을 맞췄다. 부산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정말 버리고 마치 내가 서울에서 태어난 사람인 것처럼 보이고 싶어 했다. 사투리를 고쳐야 하는 잘못된 것이 아니라 나의 ‘특징’이었는데, 나는 스스로 그것을 창피해하고 주류로 빨리 편입하고 싶어 했던 게 아닐까.


 하지만 나는 지금 미국 문화 속에서, 미국인들 속에서 나만의 독특한 개성을 찾고 싶다. 사투리로 재미난 이야기를 많이 하던, 그래서 모두가 좋아하던 대학 선배처럼 말이다.


‘내 발음이 어때서!‘라는 마음 가짐으로, 입을 닫기보다는 발음이 안 좋더라도 소통하려고 노력하기를, 오늘 또 용기를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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