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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소리 Jan 20. 2023

불안한 엄마, 의젓한 아이


나 : 요즘 과자도 많이 먹는데 오늘 라면을 먹어서 되려나 모르겠네..


11세 : (매우 담담하게) 엄마가 그렇게 얘기하면 입맛도 떨어지고 기분 안 좋아져.


나 : 헉. 엄마가 또 그랬네. 맛있게 먹어야 되는데 기분 안 좋게 해서 미안해. 짜증 날 때 그렇게 화 안 내고 얘기하는 거 어른도 힘든데 고마워. 엄마 안 그러도록 노력할게.






둘째를 임신하고 입덧이 너무나 심했다. 그때부터 그 건강하던 첫째가 아프기 시작했다. 장장 4년 이상을.


아이를 낫게 하겠다는 일념 하에 주 2~3회 열심히 병원 투어를 다녔다. 아이의 몸과 마음을 돌보았어야 했는데, 어쩌면 나는  죄책감을 없애는 것에 몰두하며 불안한 나날을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독한 입덧을 핑계로 아이를 방치했기 때문에, 그러니까 나 때문에 아이가 아프기 시작했다는 죄책감을 말이다. 나의 불안은 26개월 작고 어린아이에게 모두 옮겨갔겠지.


천식, 알레르기, 중이염, 아토피, 폐렴, 독감, 기관지염 등 온갖 무서운 병명이 주는 두려움에 끌려다녔다. 의사 선생님만 바라보며, 선생님의 말 한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고 있었다. 아이 마음을 들여다보는 대신 볼 줄도 모르는 아이의 폐 사진만 뚫어져라 쳐다봤다. 아이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대신 의사 선생님의 말씀을 법처럼 따랐다.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대신 맘카페에서 아이 잘 보는 소아과 선생님을 검색했다.  


2시간가량을 기다려 5분도 채 만나지 못한 의사 선생님이 로봇처럼 읊어주신 나의 임무는 늘 같았다. 시간 맞춰 약먹이기, 기관지 확장 패치 붙이기, 호흡기 치료해 주기, 찬바람 쐬지 않기, 감기기운 있을 때 목욕은 되도록 시키지 않기. 나는, 깜빡하기가 특기인 나는 선생님의 숙제는 무슨 일이 있어도 거르지 않고 로봇처럼 꼭 지켜냈다.


밖에서 뛰어놀고 싶어 하는 아이를 다독여 되도록 집에 있게 했고, 한번 나가기라도 할라치면 조금의 찬바람도 들어올 틈 없이 중무장을 하고 나갔다. 뛰어놀기에 너무나 갑갑한 옷차림, 등줄기와 이마에 흐르는 땀은 아이가 감당해 내어야 했다. "엄마 옷 불편해, 엄마 너무 더워."라고 해봤자 잔뜩 불안한 엄마는 단호했을 테니 말이다. 원래 섬세하게 태어난 건지, 엄마로 인해 섬세해져 버린 건지 모를 내 아이는 그렇게 내 눈치를 살펴야 했다. 땀이 줄줄 흐르지만 엄마말대로 옷을 껴 입고 있어야 엄마가 편안해 보였고, 그래야 밖에서 조금이라도 놀 수 있었을 테니 말이다. 둘째를 임신했지만 여전히 어리고 불안했던 초보 엄마는 그렇게 해서라도 내 죄책감을 떨쳐내고 싶었나보다.


아이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끝을 알 수 없는 병원투어에 나는 점점 지쳐갔다. 코가 답답해 숨쉬기가 힘들어 하루도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하는 작고 약한 아이를 안고, 모두 잠든 깜깜한 새벽에 나는 그냥 울어버렸다. 아이도 견디고 있는데, 나는 울었다. 내가 우니 아이도 따라 울었다. 뱃속의 아이도 함께 울었을 테다. 남편은 안 울었다. 쿨쿨 잤다.


배는 조금씩 불러오고 이마엔 땀이 송골송골 맺히던 2015년 , 의사 선생님은 로봇처럼  입원을 지시했다. 열 없는 폐렴이라나 뭐라나. 숨소리가 안 좋다나 뭐라나. 아이는 열도 없고 기침도 거의 없었다. 이제 항생제 좀 끊을 수 있겠지 기대하며 찾아간 병원에서, 늘 그렇듯 내 눈 대신 폐 사진만 보시던 의사 선생님은 무덤덤하게 입원을 통보했다. 나는 한없이 다시 땅으로 꺼지며 속상해했을 뿐 의문을 가지지 않았다. 입원여부는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일인실로 갈 것인가, 다인실로 갈 것인가 이외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의사 선생님이 작고 약한 아이에게 이유 없이 입원 통보를 했다고 생각지는 않는다. 분명 전문가의 시선에서 입원해야 할 이유가 조금이라도 있었을 테다. 작은 종합병원 소아과에서 매출 1위를 달성하고 싶었던 간판의사의 열정이 만들어낸 과잉 진단이었다 해도 의사를 탓하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그것이 자신의 위치에서 그 사람이 살아가는 방식일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맞다 틀렸다 할 것 없이, 엄마인 내가 상황을 잘 살피며 판단하고 다른 방법을 생각할 줄 알았어야 했다. 어린이 환자들을 처내기 바쁜 의사 선생님은, 질문 없고 말 잘 듣는 쉬운 부모에게까지 먼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는 않았을 테니 말이다. 출근하면서부터 로비를 꽉 채운 시끄러운 어린이 고객들을 보며 매일 벅차오르게 소명의식을 가지고 환자 한 명 한 명의 히스토리를 살펴 부모의 정신줄까지 붙들어 줄 의사를 기대하는 것이 과한 욕심이라는 것을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의사 선생님에게  아이는 하루라도 항생제를 덜 먹게 해주고 싶고, 폐사진 대신 놀이터에서 신나게 노는 사진을 찍게 해 주고 싶고, 빨리 병이 나아서 병원을 그만 다니게 해 주고 싶을 만큼 깊게 정이든 꼬마 환자가 아니라, 그저 병원 문턱이 닳도록 부지런히 출근 도장을 찍는 수많은 단골 꼬마 고객 중 한 명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큰아이는 병원놀이를 할 때 팔이나 엉덩이 대신 멍든 손등에 주사를 놓으며 놀았다. 그만큼 수도 없이 입원을 했다. 둘째가 태어나면서 온 가족이 입원을 하기도 했다. 아무리 엄마가 처음이었다 해도 아, 나는 그냥 겁에 잔뜩 질린 똥 멍청이 바보였다. 아이의 면역력을 믿지 않았던 똥 멍청이 바보.



사진 출처 : Pixabay



간절한 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던 의사 선생님께만 의지하는 일에 의문을 가지던 즈음, 병원에 근무하는 친한 친구가 한의원을 추천해 주었다. 환자가 많아 예약도 힘들던 곳. 하지만 상태가 많이 안 좋은 환자는 먼저 봐주시던 곳이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 아이는 예약도 없이 방문한 그날 바로 진료를 보게 됐다. 아이의 간수치가 많이 안 좋아서 말이다. 한의사 선생님은 어린아이가 왜 이렇게 간수치가 안 좋으냐며 깜짝 놀랐다. 독한 약을 시간에 맞춰 몇 년 동안 먹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테다. 항생제를 먹고 설사를 한다고 말하면 자판을 탁탁 두드려 추가로 처방해 주시던 약까지 꼬박꼬박 챙겨 먹였으니 말이다.


한의원에서는 아이가 첨가물에 매우 예민한 체질이니 간식을 고를 때 신중하라고 했다. 한 달에 5만 원 하는 다행히 저렴한 한약을 먹으며 병원과 한의원을 병행했다. 아이는 조금씩 천천히 건강해져 갔다.







아이는 건강해져 갔지만, 아이가 아픈 동안 나에게도 병이 생겨버렸다. 아이가 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을 때면 나는 많이 불안했다. 병적이었다. 첨가물이 들어간 음식을 먹으면 눈 주변에 붉게 알레르기가 올라오고 눈을 비비고 틱처럼 눈을 깜빡이는 아이를 보며, 나에게 병이 생겼나 보다. 이제 막 건강해지기 시작했는데, 또 예전처럼 아니 이제는 아이 둘을 데리고 병원투어를 다니게 될까 봐 불안했다.


밖에서 한창 뛰어노는 아이에게 첨가물이 들어간 간식을 제한하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힘든 일이었다. 매일같이 마이쭈와 초콜릿과 사탕을 먹는 친구들 사이에서 내 아이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도 힘든 것은 마찬가지였다.  힘들었던 지난 시간들을 알턱이 없는 엄마들에게 나는 그저 음식에 예민하고 까칠하게 구는 엄마였을 테다. "아니 그럼 그 집은 애들한테 라면도 안 먹여요?" "간식을 주면 얘는 왜 엄마한테 전화해서 허락을 받아요?" 비난이 하고 싶었을 뿐 궁금하지는 않았을, 질문을 가장한 비아냥을 쏟아내는 그녀들에게 나는 그냥 입을 닫아버렸다. 그리고는 밖에서 누가 간식을 주면 참기 힘들어서 어차피 먹게 될 테니까 밖에서 뭐 먹게 되면 엄마한테 전화하지 말고 그냥 먹어도 될 것 같다며 아이에게 설명하는 척 짜증을 냈다.


밖에서 간식 먹기 전에 전화하라는 말을 한적도 없는데, 우리 아들은 매번 나에게 전화해서 마이쭈 먹어도 되느냐고 물어보았다. 어렵게 획득한 마이쭈를 손에 쥐고 설레다가도 이내 불안해져버린 마음을,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진정시키고 싶었을 테다. 나는 그 마저도 받아주지 않은 채 아이를 불안하게 내버려 두었다. 그녀들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던 나를 먼저 돌보았다. 아이가 음식속의 첨가물 때문이 아니라, 몇 년 동안 병원을 다니며 나로 인해 불안해진 마음을 눈을 깜빡이는 것으로 표출하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났다. 겁이 나서, 그건 아닐거라며 모른체 하고 싶었다.



아이가 많이 건강해진 후에도 음식에 대한 내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고, 아이가 음식을 먹을 때마다 입 밖으로 새어 나왔다. 조금씩 줄어들고는 있었지만, 내가 말을 하지 않아도 아이는 혼자 불안해하며 음식을 먹었을테다. 그렇게 혼자서 감당해야 했던 아이가 너무 가엾어, 내 불안을 깨끗하게 잠재우고 싶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엄마가 뭐 먹을 때 혹시 기분 안 좋은 말을 하면 꼭 알려달라고 일러두었다. 네가 그동안 먹고 싶은 음식 참은 건 정말 대단한 일이라고 엄마였으면 못했을 거라고 수고했다고 진심으로 얘기해 주었다. 그리고 젤리 초콜릿 좀 먹는다고 큰 일이 나지는 않는다고, 적당히 먹으면 괜찮다고, 엄마가 너무 과했었다고 사과도 했다.


나의 진심이 잘 전달되었던 것일까. 아이가 작년 어느 무더운 여름날, 처음으로 나에게 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참 오래도 참았다. 흔들리는 엄마 때문에 얼마나 갑갑하고 힘들었니.


엄마답지 못하게 나의 불안을 아이에게 드러내서 미안했고, 아이가 나로 인해 불안해진 마음을 마침내 드러내 줘서 고마웠다.


엄마 계속 노력할게. 잘 자라줘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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