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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소리 May 12. 2023

제주에서 펜션 청소 알바 해보셨나요?_[2]

펜션 사장님을 만나보지도 않고 펜션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게 됐다.


제주에 올 때도 그랬다. 생각을 덥석 실행에 옮기고는 "엄마야 진짜 이사 날짜 다 됐다. 이제 어짜노." 하면서 주섬주섬 짐을 정리했다. 펜션 청소도 마찬가지다. 생각과 동시에 검색, 검색과 동시에 덥석 문자를 보내고는 "엄마야 뭐가 이래 쉽노. 진짜 바로 돼삤네. 이제 어짜노" 하면서 펜션 청소하는 법을 검색했다.


아르바이트를 하시던 분들이 청소를 할 때 시간에 맞춰 펜션에 방문해 보기로 약속을 잡았다.








2022년 10월 10일. 약속한 날이 되었다. 펜션으로 갔다. 어떤 분들이 청소를 하고 계실까. 설레는 맘으로 남편과 함께 펜션으로 들어갔다. 50대로 보이는 남, 녀 두 분이 청소를 하고 계셨다. 우리처럼 부부인 건가. 남편에게만 날리곤 하는 썩소가 행여나 나오지 않도록 얼굴 근육들을 잘 단속하며, 자본주의 미소를 장착하고 밝게 인사를 드렸다. 두 분은 매우 밝지도, 그렇다고 퉁명스럽지도 않게 적당히 편하게 우리를 맞아 주셨다.


룸은 총 세 개. 베드 다섯 개. 화장실은 세 개. 뷰가 어마어마하게 좋은 광활한 마당을 품은 이층 독채 펜션이었다. 펜션 내부가 많이 오래되어 보였다. 남자분이 침대 다섯 개의 이불과 시트 교체를 담당하시고, 여자분이 다른 청소를 하다가 함께 마무리를 하신다고 했다. 침대 시트 교체하는 법을 배웠다. 음. 할 수 있겠네. 화장실 청소에 대해 배웠다. 수건 놓는 법, 그 외 챙길 것들을 알려 주셨다. 음. 화장실 청소도 별 거 없네. 한 번 보고 안 볼 사이인 우리들에게 청소할 때 챙길 것들을 세세하고 편하게 알려주시는 두 분께 고마웠다.


청소 도중 여자분께서 믹스커피를 타신다. 한 잔 하겠느냐고 권하신다. (역시 힘들 땐 믹스커피지. 아이들 방학이 되면 끊었던 믹스커피를 늘 다시 찾게 되곤 하는데, 믹스커피는 나에게 노동주와도 같은 매우 소중한 존재이다. 나는 끊었던 노동주를 펜션 청소를 하며 다시 마시게 되었을까. ) 웃으며 괜찮다고 얘기한다.


청소하는 법을 배우며, 중요한 내용은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어두고는 두 분께 인사를 하고 펜션을 나섰다. 사장님께 전화를 드렸다. 잘 배우고 나서는 길이라고.


"청소하시는 거 보니까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

"네, 우리 집 청소할 할 때보다 세심하게 살펴야 하긴 하겠지만, 못 할 이유 없을 것 같아요. 한 번 해보겠습니다."


청소를 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며칠 후 사장님이 제주에 내려올 테니 한번 만나자고 하셨다.







일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내 머릿속에는 늘 멀끔히 차려입고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며 걷는 내 모습이 그려졌다. 파티션이 쳐진 나만의 자리에 앉아서 마우스를 요리조리 움직이며, 타닥타닥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는 모습도 생생하게 그려졌다.


드디어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 멀끔한 옷을 입고 또각또각 구두소리를 내는 대신 제일 편한 츄리닝과 티셔츠를 입고 맨발로 청소를 하며, 손에는 마우스 대신 걸레를 들게 되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설레었다. 제주에 오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는데.





제주에서 많은 것을 얻고 있는 중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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