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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소리 May 27. 2023

제주에서 펜션청소 알바 해 보셨나요?_[3]

드디어 펜션청소 실전에 투입되었다.  


두근거렸다. 투숙객과 얼굴 볼 일도 없는데, 우리끼리 그냥 청소하고 가면 되는 건데 왜 두근거리지. 퇴실시간은 11시. 10시 30분 정도에 펜션으로 가니 주차장에 차가 없었다. 안으로 들어갔다.


실전에 투입되기 전 업무분장을 했다. 펜션은 방이 세 개, 화장실이 세 개, 주방, 거실로 이루어져 있었다. 침대는 다섯 개였다.


화장실은 내가 하기 싫은데. 유일한 동료인 남편과 눈치싸움을 했다.  "우리 부인에게 더러운 건 맡길 수 없지 화장실은 내가 할게."라고 남편이 먼저 말해주길 바랐지만 우리 남편은 그렇게 말할 사람이 절대 아니었. 혼자 쓰는 안 방 화장실을 청소하라고 하면 본인은 비위가 약해서 도저히 할 수가 없다고 하는 사람이니 말이다. 어떤 때는 나는 뭐 비위 안 약하나( 하필 좀 안 약한 편이긴 하다. ) 하는 마음에 약이 올라서 청소하기가 싫어 한참을 내버려 두는데, 심각한 화장실 상태에도 아랑곳 않고 변기에 잘 앉는 걸 보면 그렇게 비위가 약한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내가 청소를 하고 만다.


화장실 청소와 주방은 내가 맡았다. 남편에게 서운한 얘기를 듣기 전에 내가 한다고 하는 편이 나으니 말이다. 남편은 청소기 돌리기와 바닥 닦기를 맡았다. 방도 크고 거실도 넓어서 남편도 꽤 힘들 것 같긴 했다. 침대 시트 교체와 이불 교체는 함께 하기로 했다.


남편과 나는 사이좋게 침대 커버를 함께 교체했다. 우리 전에 청소하시던 분은 남자분 혼자서 침대 시트와 이불 커버를 교체하시던데. 같이 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서 우리 둘은 함께 했다. 침대 다섯 개의 시트와 이불 커버를 교체하고 나니 힘이 들었다. 처음이라 시간도 오래 걸렸다. 슬슬 배가 고파왔다.


화장실 차례. 야무지게 고무장갑을 끼고 솔로 변기통을 닦았다. 비위가 약하지 않긴 하지만, 변기통의 누우런 흔적들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얼굴이 일그러졌다. 우리 집 화장실 청소할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박박 문질렀다.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문득 거울 속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질끈 묶은 머리가 다 헝클어진 채로 고무장갑을 끼고 있는 내 모습이 살짝 낯설어서 나를 보며 괜스레 한 번 방긋 웃어주었다.   


주방차례. 냉장고에 음식이 남아 있다. 계란이 있다. 무려 동물복지 자연방사 유정란이다. 맥주도 있다. 유통기한이 넉넉하다. 휴. 가져가야 하나 버려야 하나. 버리려니 아깝고 가져가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떡하지. 이런 고민을 하는 상황이 조금 싫었다.


창고가 많이 더러웠다. 선배님께서 창고를 치우라고는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우리 집에서는 잘 지나쳐지기만 했던 지저분함이 자꾸만 눈에 거슬려 이것저것 치우다 보니 갑자기 당이 훅 떨어졌다. 힘들었다.


청소하면서 커피 한잔씩 타 마시라고 말씀하시던 선배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선배님의 말씀은 무조건 귀담아 들어야 하는 게 맞다. 커피믹스를 찾아보았다. 있었다. 타 마셔도 된다고 하셨지만, 남의 것이라 괜스레 마음이 불편했다. 배고픔이 불편함을 이겼다. 나는 불편해하면서 커피포트에 물을 데우고 있었다. 노동주를 한잔 들이켜고 나니 힘이 솟았다. 커피믹스의 위력이란. 최고급 링거와 견줄만하다.


선배님은 분명 두세 시간이면 일이 끝날 거라고 하셨는데, 우리는 다섯 시간 정도를 청소에 몰두했다. 세시가 넘어서야 청소가 끝났다. 펜션을 나와 늦은 점심을 사 먹었다. 등산 후 보다 청소 후에 먹는 밥맛이 더 좋았다. 땀 흘려 일한 후에 먹는 밥이라서 그런 건가.






어느덧 두 번째 청소하는 날.


날이 제법 쌀쌀했지만 처음 청소하던 날을 떠올리며 처음보다 옷을 가볍게 입었다.


청소 전 노래를 켰다.


집에서 커피믹스를 가지고 왔다. 혹시나 청소가 늦게 끝날까 봐 슈퍼에서 커다란 꿀호떡도 사서 왔다. 역시나 허기가 지는 때가 왔다. 잠시 소파에 앉아 커피와 꿀호떡을 먹으며 광활한 마당 너머 펼쳐진 바다를 감상한다. 정말 끝내준다. "정작 펜션 주인은 이 경치를 감상하지도 못하는데, 우리는 청소하면서 이 좋은 경치를 감상하네." 하고 말하는 중에 갑자기 영화 기생충이 떠올랐다. 우리는 그 사람들이랑은 다르지 하며 웃는다.


이번에는 침대시트와 이불커버 교체를 남편과 따로 했다. 남편이 침대 세 개, 내가 침대 두 개를 교체했다. 남편과 상의를 한 것도 아닌데 약속한 것처럼 그렇게 다. 혼자서 침대시트를 교체하고 계시던 남자 선배님의 선택이 탁월했다는 걸 알았다. 신혼이었으면 실실 웃으면서 함께 하는 게 나았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역시 신혼이 아니었다.


이번에는 냉장고에 내가 좋아하는 과자 빈츠가 있다. 뭐야. 먹을 게 또 있네. 그냥 아무것도 없으면 좋겠는데. 그래도 불편함이 처음보다 덜하다. 반기고 싶지는 않은데. 반가워하는 내가 좀 별로다. 별로라고 생각하며 빈츠를 깐다. 빈츠는 맛있다.


처음보다 청소 시간이 단축되었다. 청소 끝나고 점심으로 무얼 사 먹을까 설렌다. 집에서 쉬다가 외식을 하러 나갈 때보다 마음이 훨씬 편하다.






펜션에 손님이 많은 편은 아니었다. 한 달에 한두 번쯤 청소를 하는 정도였다. 그렇게 드문드문 청소를 이어가던 중 설 연휴 바로 전날, 우리와 연락하던 펜션 사장님의 부모님을 만나 뵙게 되었다. 펜션의 실소유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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