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는 귤, 3월 학꽁치, 3~4월 고사리, 5월 산딸기. 우리 삼식씨는 요즘 일 년 중 가장 바쁜 한때를 보내고 있다. 학꽁치를 낚으러 갈 건인가, 고사리를 캐러 갈 것인가를 매일 심각하게 고민하는 중이다. 삼식씨는 학꽁치를 포기하고 이틀 연이어 나와 함께 고사리 수확에 나섰다.
여태껏 한 번도 고사리를 수확해 본 경험이 없는 우리였지만, 뭐 특별한 것 있겠느냐며 목장갑과 비닐을 들고서 호기롭게 머체왓숲길로 갔다. 주로 제사 때만 먹어 보았던 갈색 고사리 나물이 원래는 어떤 모습인지 잘 몰랐던 우리는, 인터넷으로 대충 고사리 사진을 보고서 산책로에서 두리번두리번 고사리를 찾았다.
고사리는 원래 축축한 음지에서 나는 것 아닌가? 우리는 계속 축축한 곳을 찾아다녔다. 없었다. 텅 빈 봉다리를 들고 목장갑을 낀 초보 고사리꾼 두 명은 산길을 터덜터덜 걸었다. 아무리 걸어도 고사리는 보이지 않았다. 몇 시간째 고사리를 하나도 수확하지 못한 채 걷기만 했다. 그냥 운동한 셈 치자며 집으로 갈지 말지를 고민하던 차였다. 남편이 축축한 곳이 아니라, 해가 잘 드는 넓고 풀이 듬성듬성 나 있는 곳에서 또 바닥을 두리번거리고 있다. "자기 이제 그만 가자. 그리고 그런데는 고사리 없을 것 같은데." 큰아들 반에 새로 이사 온 친구네에 저녁 초대를 받은 나는, 집에 가서 씻을 시간이 없어서 처음 초대받은 집에 땀내 나는 채로 가게 될까 봐 마음이 급했다. 그럼 또 어때서. 나란 사람 참. 원래 그리 깔끔한 편도 아니면서.
그러면서도 혹시나 고사리가 있을까 싶어 나도 남편처럼 고개를 떨구고 땅을 보며 산길을 걸었다. "어, 자기 여기 고사리 많다." 드디어 고사리가 눈에 들어왔다. 축축한 곳이 아닌, 볕이 잘 드는 곳에 꼿꼿하게 서 있는 고사리가. 얼른 쪼그리고 앉았다. 쪼그리고 앉으니 더 많은 고사리가 눈에 들어온다. 아, 고사리야 너도 쪼그리고 앉아서 자세히 들여다봐야 눈에 띄는 스타일이로구나. 고사리를 신나게 수확했다. 고사리를 수확하는데만 정신이 팔려 한참을 땅만 보며 걸었다. 텅 비었던 비닐 봉다리가 묵직해졌다. 우리 둘은 마주 보며 웃었다.
초보 고사리꾼 두 명은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한참을 그렇게 걸었다.
"어. 길 잘못 들었다." 남편이 말한다. 나는 길치이므로 길 찾기는 주로 남편 담당인데. 어쩌지. 네이버지도를 켠다. 길도 없는 숲 한가운데에 덩그러니 점이 찍혀있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을까. 발밑의 고사리를 보며 고사리만 바라보고 걸었을 뿐인데. 우리는 덩그러니 낯선 길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 당황했다.
음. 정신 차리자. 일단 아직 날은 밝고, 인터넷도 되니까 산책로 쪽으로 찾아갈 수 있겠네. 괜찮겠네. 우리는 길을 잃었지만 당황하지 않기로 했다. 다행히 얼마 전보다 해도 길어진 데다 인터넷이 안 되는 깊은 산속은 아니니까.
우리 둘은 정신을 가다듬었다. 길을 가다가우연히 바닥을 본다. 고사리가 보인다. "자기 여기 노다지다 고사리 진짜 많아!" 길을 잃고 헤매던 중이었는데, 당황하지 않으니 고사리가 눈에 들어온다. 그곳은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고사리 천국이었다. 남편과 나는 마주 보며 웃는다.
"여기서 30분만 따고 가자. 자기 길 찾을 수 있지?"
긍정일 때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마음속으로 계획 세우는 게 특기인 우리 남편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사리를 수확한다. '아닐 때만 아니라고 대답하니까 말 안 하는 거면 길 찾을 방법 있는 거겠지 뭐.' 나도 편한 마음으로 고사리를 수확해 본다. 우리는 봉다리 가득 고사리를 수확했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으려면 이제 여기를 떠나야 한다. 아직 많이 남아있는 고사리들이 눈에 밟혔지만, 다음에 또 오면 되지 뭐. 집으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은 우리는 앞만 보며 걷는다. 고사리를 찾으려 땅을 보지 않기로 한다. 드디어 사람이 다니는 길, 산책로를 만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걷는다.
나는 다행히 집에서 샤워를 하고도 약속시간에 늦지 않게 아들 친구네 집에 잘 도착했다. 아들 친구 엄마 두 명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알고 보니 모두 고사리 캐기에 푹 빠져 있었다. 고사리만 보고 걷다가 길을 잃었다고 이야기했다. 나보다 나이가 두어 살 많은 고사리 수확 선배가 웃으면서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