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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에이 Jan 15. 2022

연함이 충분히 진함을 덮더라

우울할 땐 유화를 그려 보는게

 내 마음이 내 마음같지 않아 곤란한 와중이다.

끝내 우울해지고야마는 나의 시간에 어쩔도리 없이

새로운 취미를 가져보았다.

아무 생각없이 집중하기에 그렇게 그만이라는

<유화 그리기>

사실,그리지는 않으니 색칠하기가 더 맞겠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다양한 도안의

D.I.Y 유화 그리기 세트가 판매 중이다.

난이도는 괘념치 않은 채

마음이 가는 그림 몇개를 골랐다.


친절하기도 하지.

세세하게  번호가 붙은 밑그림을  따라

필요한만큼 준비된 물감을 이용해 채워나가기만 하면 된다.


 미술학원에서의 유쾌했던

어린시절 기억들도 머리를 스치고,

자그마한 통을 열면 드러나는 물감들의 선명한 색감에

마음이 조금 즐겁다.


설명서에서 본대로, 연한 색부터 칠해 나가기 시작한다.

시간이 갈수록 붓에 감기는 색이 진해진다.

그러다가 거의 검은색에 가까운 색에 이르면

손끝도 호흡도 신중해진다.

자칫 흐트러지면 경계에 보기 싫은

거스러미가 생겨버린다.


이렇게 저렇게 붓의 눕기를 달리 하고

그림의 위치를 돌려가며 색을 칠해도

깔끔하지 못한 부분이 생긴다.


캔버스는 빈틈없이 채워졌지만

완성이라 하고 싶지 않은 상태다.

'되려나...', 하면서

제일 먼저 칠했던,

배경에 가까운 연한 색을 다시 열고

파랗고, 까만 색들이 잘못 자리잡은 곳에 대어 봤다.

 

유화가 원래 이런건가


연함이 충분히 진함을 덮는다.

진한 색위에

그보다 더 한 색으로 덧칠하지 않아도

한없이 연해 보이는 색이

그만의 단단한 밀도로 진한 색을 정리해주었다.


굳건하고 쨍한 청록색 위로

연약한 베이지색이 덧발라지는 모습을 보며

 어딘가 안심이 되었다.


마음에 깃든 어둠에도

꼭 더 독한 자극이나

이렇다할 보상을 얹어줘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그냥 그런 소소하고

하늘하늘한 나의 일상으로도 충분하리라.

연해도 옅지 않다.


붓의 흔적을 솔직하게 남기는

 투명한 수채화가 취향이라고 생각했는데

유화도 참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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