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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Nov 13. 2019

회사에 드디어 말하다. "저 세계여행 가고 싶어요."

[마음준비] 퇴사하겠다는 게 제일 힘들었다.


삼주 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심경의 변화가 많이 있던 시간이었다. 서점에 가면 여행을 가기 전의 글보다는 떠난 후의 이야기가 주로 펼쳐지던데 계속해서 준비 글만 한창이다.

2월 20일(월). 드디어 팀장님과 면담을 했다. 팀장님께 잠시 이야기가 가능할까요, 여쭸더니 흔쾌히 "아 당연하지~ 누가 이야기하자는 건데~"하면서 회의실로 가자고 하셨다. 해맑은 팀장님의 반응에 마음이 아팠다. 평소에 감정 기복이 있는 우리 팀장님은 어쩜, 그 날따라 기분이 너어무우 좋으셨다.

두근거리는 심장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하는 내 맘과 다르게 포켓몬 게임에 열중하면서
"말씀하세요!!!" 하는 모습이란...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완벽주의자에 PPT 자간 간격을 눈으로 구별하고, 폰트를 보면 무슨 폰트인지 입으로 줄줄 외며, 한 페이지에는 채도 기준으로 나눠서 3개 이하의 컬러 배치를 요구하는 깐깐 쟁이 우리 팀장님. 365일 중에 약 280일 정도는 우울한 모드인 우리 팀장님이 정색을 하고 몰아붙이면서 압박을 하는 날에는 집에 가는 내내 팀장님을 욕하고 다음에 또 그러면 진짜 가만있지 말아야지 생각했던 적도 있다.

6년 전, 아빠가 갑자기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 내 모든 생활이 엉망이었던 때가 있었다. 출근을 하다가 간병인이 호출하면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고 아빠의 오줌을 오줌통에 받고, 알몸을 목욕시키면서 아빠 앞에서는 단 한 번도 울 수 없었던 나날이었다. 회사에서 업무 집중도는 당연히 떨어졌지만 모두가 나를 배려해줬다. 점심시간이면 부족한 잠을 채우고 지친 마음을 달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엎드려 자곤 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자고 깨서 보니 책상 귀퉁이에 '마이쮸'가 있는 거였다. '뭐지?' 대수롭지 않게 팀원이 줬으려니 했는데 그다음 날에는 '츄파춥스'가 또 있었다. 누군지 찾아도 찾아지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 네이트온에 떴던 팀장님(그때 회사에서는 본부장님)의 말 "그대, 힘내!!"

그때부터 팀장님에 대한 나의 신뢰는 시작되었던 것 같다. 그 마음을 바탕으로 지금 회사도 팀장님의 권유에 따라 입사하게 되었는데... 내가..... 퇴사를 말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었다. 항상 우리 팀을 어떻게 발전시킬지, 팀장님이 무엇이 힘든지 같이 도란도란 이야기하곤 했는데 이제는 고백해야 할 때가 온 것이었다.

"팀장님. 저... 사실.. 제겐 꿈이 있어요....." 그렇게 말을 꺼냈는데 의외로 침착하게 들어주시는 팀장님과는 달리 나는 참을 수 없이 눈물이 났다. 팀장님은 내게 언제부터의 꿈이었는지, 꼭 이런 식으로 가야 하는 건지, 주변에서는 뭐라고 했는지 등등 궁금한 것을 물어보셨다. 너무 놀래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팀장님의 말에 와르르 마음이 무너졌다.

5월의 당초 여행은 어려웠던 것이었다. 새해가 바뀌면서 조직개편이 되고 팀 내에서 아이러니하게 나의 업무영역이 넓어지고 중요해졌다. 그래서 팀장님과 몇 번의 이야기 끝에 9월로 여행을 미루기로 했다. 암만 생각해봐도 우리 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고 가는 여행이라면 즐거울 수 없기 때문이었다.
9월이면 시간이 넉넉하니 차근히 팀장님과 함께 공백을 메꿀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내생각인가)

팀장님과 이야기한 날 집에 가는 내내 울었다.
다음 날 눈이 팅팅 부어서 출근을 할 지경이었으니 ^^
감정이 주체되지 않아 끄적인 글.




제가 꿈이 있는데요,라고 시작한 대화

오랫동안 준비한 말인데도
이 말이 혹여나 팀장님을 아프게 할까 봐
내가 뱉으면서도 너무 이기적으로 느껴져서
눈물이 자꾸 넘친다.

결국 집에 와서 엉엉 울어버렸다
왜 나는 이렇게 피곤하게 사는 걸까,
두 발을 현실에 붙이고는 살지 못하는 걸까,
속상했다.
너무너무 속상해서 감당되지 않을 만큼.

휴직은 있어도 퇴사는 절대 안 된다는,
너무 놀래서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팀장님의 말에 와르르.....

내가 뭐라고 이렇게 사랑을 받고
아낌을 받고 있었단 말인가.















나의 사랑 짝꿍 과장님이, 퉁퉁 부은 눈을 보고 내게 보내 준 메시지




상남자 무뚝뚝 차장님이 "미쳤다고" 내게 말한 후, 보내준 메시지.






사람이 귀하다. 꿈도 귀하지만, 사람이 그 무엇보다 귀하다.


여행은 9월로 티겟팅을 다시 했다. 나는 마음을 다시 다잡고 여전히 열일하면서 지내고 있다.

비행기 취소로 50만원 가까이 돈이 또 깨졌지만, 그게 대수랴,

내 마음이 편하고 내가 아끼는 사람들이 좀 더 편하다면 하나도 아깝지 않다.

힘들게 미룬 여행인 만큼 더 잘 준비하면 되고, 그 시간 동안 나의 터전인 일터에서 사랑하는 팀원들과 예쁜 추억도 많이 쌓고, 일 성과도 내야지!!

사랑합니다. 우리 미교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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