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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Nov 13. 2019

세계여행, 결국 퇴사가 아닌 휴직.

[마음준비] 전생에 덕을 쌓았나벼~~


1. 팀장님과의 대화


"꼭 그렇게 오랫동안 여행을 가야겠어요? 나눠서 가는 건 안 되나요?"
팀장님이 따로 이야기 좀 하자고 하셨을 때는 당연히 퇴사 수순에 대한 이야기, 이를테면 후임이나 내 기존 업무를 어떻게 배분할 지에 대해서 말씀하실 줄 알았는데... 뜻밖의 질문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직장인으로 살면서 어떻게 나눠서 가는 장기여행을 꿈꿀 수 있을까? 특히 아프리카나 남미와 같은 대륙 여행을 꿈꾸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는 여름휴가의 일주일은 너무 짧고 소모적이다. (비행기에서 모든 시간을 다 보낼 테니까)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퇴사를 하고 가는 것이다. 세계여행을 꿈꾸는 대가로!

여행을 준비하면서, 그리고 20대의 후반에 뮤지컬 배우를 꿈꾸면서 느꼈던 것은 '진짜 원하는가'는 '어디까지 포기할 수 있는가'와 직결된다는 것이다. 30대 중반을 앞둔 내게 세계여행을 죽기 전에는 꼭 이뤄야 하는 나만의 버킷이었기에 간절했지만,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 모두가 결혼하는 시점에 나 혼자 그 결혼자금이랍시고 모아둔 돈을 다 쓰겠다고 마음먹는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그 시점에 함께 했던 사람이 격렬하게 내 여행을 반대했던 것도 큰 어려움 중 하나였다.

결코 쉽게 여기까지 온 게 아니었다. 그런데 다시 새로운 카드가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팀장님은 내게 6개월 동안 휴직을 한 후 가는 여행을 제안하셨다. 나는 시간을 좀 달라고 말씀드렸고, 결국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퇴사가 아닌 휴직이라는 카드를 선택하게 된 것이다.



회사 마지막 날, 팀장님이 주셨던 손 편지!


2. 여행 루트와 기간


6개월 동안 휴직을 하고 여행을 간다. 4월 초에는 복귀를 하기로 회사와 이야기했다. 그래서 여행루트가 다시 달라졌다. 비행기를 다시 변경하고, 경유지에서 체류시간이 길어지면서 약 40만 원의 손해를 봤다.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기도 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거니까.

여행의 중심은 '중남미'로 잡았다. 포기할 수 없는 대륙이니까!

1. 런던 (약 7일) : 홈스테이 식구들 보기, 라이언킹 뮤지컬 / 15년 지기 친구 Mei와 함께 여행
2. 파리 (약 7일) : 맛있는 크로와상과 바게트 먹기 / 15년 지기 친구 Mei와 함께 여행
3. 포르투갈 (약 10일) : 리스보아와 포르투 제대로 보기 / 엄마랑 동생과 여행
4. 모로코 (약 10일) : 마라케시-메르주가-페즈-쉐프샤우엔 / 엄마랑 여행
5. 스페인 남부 (약 5일) : 세비야 -론다 / 엄마랑 여행
6. 미정 (약 10일) : 원래 산티아고 순례길 걸으려 했으나 일정 짧아져서 생략. 뭐할지 미정 / 홀로
7. 과테말라 안티구아 (약 2주) : 마드리드에서 바로 넘어가서 스페인어 공부하기
8. 멕시코부터 시작
지금 생각하는 루트는 '멕시코 - 쿠바 - 콜롬비아 - 에콰도르- 갈라파고스 - 페루 - 볼리비아 - 칠레 - 아르헨티나- 브라질'인데.. 제대로 5개월 안에 돌 수 있을지 모르겠다.



3. 그리고 아이슬란드



돌아오는 비행기 값이 검색을 해보니 생각보다 비쌌다. 남미 대륙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 예정이라 만만한 국가가 '브라질'이었다. 브라질 OUT으로 검색해서 한국 경유행 비행기를 보니 모두 약 130만원 정도로 생각보다 가격이 높았다. 젠쟝.

그래서 카약과 스카이스캐너를 돌려서 유럽 몇 개 국가들을 지정해서 가격을 비교하다 보니, 그래도 영국 런던이 제일 싸더라. 경유행으로 연결해서 끊지 않고 다구간처럼 '브라질-런던', '런던-이스탄불-한국'으로 나눠서 끊었다. 그렇게 비행기를 예약하다 보니 갑자기 예전에 처음 여행을 계획했을 때 욕심냈던 아이슬란드가 생각남.

'오로라 보고 싶은데...'


그래서 런던에서 아이슬란드 왕복 비행기를 추가로 끊었다. 아이슬란드에서는 약 7일 정도 머무르는 계획을 잡고, 뚜벅이에 장롱면허 소지자인 나는 오로라가 잘 보인다는 도시 한 군데에 가서 그냥 7일 동안 오로라 볼 생각만 하고 머무르다 올 계획이다. 꼭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비행기를 끊으니 모두 합해서 120만 원 정도. 구욷!!!



"그대, 안 돌아오면 나 죽어버릴 거야!!!"

떠나기 전날에도 팀장님은 농담 아닌 진담을 늘어놓으셨다. 의리가 있지, 회사의 기존 룰을 깨고 6개월 여행 간다는 직원 휴직시켜주는 팀장님을 배신할 리가 있나!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 회사로 복직할 것이고, 그동안 고생한 팀원들에게도 거하게~ 한 턱 쏠 예정이다. (돈 있겠지? ㅋㅋㅋ)

암튼,
이렇게 내 여행이 시작된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휴직인 상태로,
안전하게, 사람들의 응원을 받으며.

참 복도 많구나 나란 사람은. 감사함을 잊지 말아야지.

팀원들이 만들어 준 카드. 내 모토 '아모르파티'! 팀원분들의 이해 덕에 가능한 여행임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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