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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Nov 16. 2019

엄마와의 두 번째 배낭여행

[주절주절] 엄마와의 여행은 늘 옳다.


1. 나의 가장 친한 친구, 엄마


"도둑질 빼고 해 보고 싶은 것은 다 해봐. 다 추억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야." 고등학교 때 엄마가 내게 해 줬던 말이다. 저 말을 거름삼아 해 보고 싶었던 것들을 하며 살아왔다. 엄마의 지지와 믿음이 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었다. 


연애, 진로, 삶, 친구 등. 우리는 주제를 넘나들며 대화한다. 박근혜 정부 때 이후로 갑자기 보수가 되신 엄마와 정치이야기도 얼마나 많이 했던지, 썰전만큼이나 진보와 보수가 서로 앉아 얼굴 붉히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 사이니까 뭐....얼마나 잘 통하는지 설명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2. 12년 전, 이십대와 사십대의 배낭여행


12년 전에, 엄마와 1개월 동안 유럽 배낭여행을 같이 했었다. 그 때 나는 20대 초반이었고, 엄마가 40대 후반이셨다. 아버지 해외출장을 따라서 쫄랑쫄랑 다니셨던 엄마는 '배낭여행'에 대한 로망이 있었고, 딸의 제안에 단박에 유럽까지 날라오셨다. 


모녀가 배낭여행을 하면 종종 싸우기도 한다던데 우리는 전~혀~! 
유쾌함 자체로 여행을 즐겼다. 우리의 여행 컨셉은 바로,


물주와 시다바리



한 달 동안의 여행 경비를 엄마가 부담해 주셨기 때문에 '물주(님)'이셨고, 당시 어학연수를 마쳐서 영어가 인생 최고점이었던 나는 바삐 몸을 움직였다. 엄마의 '시다바리'로 말이다.  예를 들면, 박물관에 갔는데 입장 줄이 길면 엄마를 저 멀리 벤치에 앉혀놓고 혼자 줄을 선 후, 들어가기 직전에 같이 들어가는 포지션이었다.

케냐에서 사파리투어, 요르단에서 페트라 구경 등 온갖 진귀한 구경은 다 해봤지만 캐리어를 끌고 야간기차를 타고 다닌 빡신 여행이 제일 좋았다며 엄마는 두고두고 말씀하셨다. 나 역시 엄마와 함께 한 순간들이 마냥 좋았다.




3. 2017년, 삼십대와 오십대의 배낭여행


그래서였을까, 엄마는 이번 3주의 배낭여행도 '흔쾌히' 좋다고 하셨다. 일정은 모두 나에게 맡기셨다. 예전처럼 마냥 좋을 배낭여행을 기대했다. 


엄마와의 여행이 하루 남은 이 시점에서 고백하건데, 엄마나 나나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여행이었다. 그 증거가 바로 아래, 엄마의 눈물이 담긴 휴지 사진이다. 대화의 내용은 유쾌하게 마무리 되었지만 그래도 눈물을 보이셔서 마음이 많이 무거웠다.


엄마의 눈물을 닦은 휴지 ㅠ.ㅠ

모로코 페즈에서 카페에서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자 엄마, 그럼 본격적으로 중요한 이야기를 해볼까? 이번 여행에서 뭐가 제일 나한테 섭섭했어?"

"특별히 그런 건 없는데?"

"그래도 내가 엄마 앞에서 정색 몇 번 했었잖아. 우리 리스본에서 마지막으로 갔던 레스토랑에서 엄마가 짜고 맛없다고 하니까 한국 음식이랑 비교하지 말라고, 여긴 해외라고 내가 잔소리하면서 표정 굳어서 엄마 솔직히 민망했잖아. 그날 우리 둘 다 짜증 최고점이었던 거 같어.

"엄마도 맛있게 먹고 싶은데, 진짜 음식이 너무 맛없었어. 그래서 초반에는 너희들 입맛에 맞춰서 따라다니려고 노력했는데 나도 한계치에 도달하더라고. 그래서 그냥 내 입맛에 맞는 거 먹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하고 모로코에서는 그러고 있잖아"

- 모로코에서 엄마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기 위해 샌드위치 가게에서 모든 소스를 다 빼고, 샌드위치에 들어가는 재료 중 엄마가 먹고 싶다는 채소만 따로 골라 담아달라고 주문하였으며, 오믈렛도 소스를 모두 빼고 아무것도 뿌리지 말고 달라고 했다. No souce~ Don't put anything은 나의 단골 멘트가 되었고 음식을 주문할 때마다 예민모드가 발동했다. 또 엄마가 못 드시는 음식이 나올까봐..

"근데, 예전 여행에서는 이렇게 너 졸졸 따라 다니는 게 재밌었거든? 이번에는 앞으로 혼자 다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을 것 같아."

"혼자 여행 다니는 거 해봐 엄마. 좋아~ 근데, 그렇게 내 눈치가 보였어? 불편해서 혼자 여행다녀야겠다고 생각한 만큼?"

" 깔깔깔~ 그런 것보다 이번 여행은 지난 번 여행이랑은 전혀 달랐어. 몸도 더 힘들고 음식도 너무 안맞아서 이렇게 고생할 줄 몰랐어. 그리고 우리 딸이 정말 많이 컸구나 하는 느낌을 많이 받았어. 예전에는 엄마의 손아귀에 들어오는 딸이었는데, 이제는 다 커서 엄마가 너한테 뭘 표현하는 데 어려움이 느껴지더라고."

" 아 진짜? 예전하고 내가 많이 달라?"

"그럼~ 완전 달라. 보고 있으면 든든하고 그냥 다 큰.. 뭐랄까... 엄마한테 완전하게 독립한..완전한 인격체구나.. 하는 게 느껴졌어. 나중에 늙어서 너희들이랑 같이 살면 재밌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너희들의 삶에 엄마가 중심이 아니라 이방인처럼, 삶의 언저리에 있을 것 같다는 느낌도 받았어. 그래서 같이 살아도 엄마가 외롭고 쓸쓸할 것 같아.. 아.. 왜 눈물이 자꾸 나지.."

"아 뭐야, 왜 울어~ 여기서 엄마 혼자 울면 모로코 아저씨들이 나 욕해. 나도 같이 우는 척 해야겠다. (나도 휴지로 눈을 훔치면서 대화 계속) 근데 엄마, 그건 엄마가 나를 잘 키웠다는 거 아냐? 30대 중반이나 되었는데 완전한 성인이 아니면 어떻해, 엄마가 잘 키워서 나이에 맞게 성숙해진거잖아"

"그것도 그렇네? 엄마가 잘 키운 거네?"

"그럼 그럼. 명작이지. 깔깔깔 ~~ 근데, 그럼 엄마가 섭섭했던 건 결국.. 엄마의 손아귀에 내가 100% 안 들어가서 그랬던 건가?"

"말이 또 그렇게 되나? 깔깔깔~ 너 웃기지 말어~"





이번 여행에서도 엄마와 나는 다투지 않았다. 그러나 달랐던 것은 서로에게 불편한 지점을 느꼈고, 그것에 대해 대화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분명 이전과는 다른 여행의 결이었다. 

삼십대 딸은 이십대 때보다 여유가 생겼다. 여행 중에 사람을 대할 때도 긴장감 없이 인사를 건넸고, 어떻게든 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위안근육도 단련되었다. 그러나, '엄마에 대한 이해'가 '엄마의 입장에서의 여행'의 준비가 부족했음을 깨닫는다. 생각보다 더 여유롭게 일정을 잡아야 했고, 음식도 엄마가 맛없다고 하셨을 때 현지 음식을 사먹는 걸 바로 그만했어야 했다는 후회도 든다.

그리고 결심했다. 40대가 되었을 때, 60대의 엄마랑 또 다시 여행을 떠나야겠다고! 그때는 이번 여행보다는 덜 고생하는 컨셉으로, 그리고 내 돈으로 가야지! 헤헷.


엄마, 60대에 캐리어 끌고 또 한 번 갑시다!!!
더 완벽한 '시다바리 딸'이 되겠습니다.                              


야간버스타고 호스텔 새벽에 도착해서 기절한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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