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겨움 Dec 29. 2019

저희 부모님 (두 번) 이혼하셨어요!

동성애만큼 어려운 이혼 커밍아웃.

10년 전만 해도 이혼을 했다고 하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시대였다. 이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시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요새는 이혼한 게 큰 흠이 되지 않는다. 이혼 수기에 대해서 담담히 글을 적은 책들도 시중에 이미 많고, 이혼 팁(?)을 발랄하게 이야기하는 영상들도 유튜브에 흔하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낸 ‘이혼 일기’라는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다. 이혼을 했다는 것에 대해 숨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유연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는 어떨까?  


여전히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부모님이 이혼하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미세하기에 자식은 철저히 피해자가 된다. 그래서 부모의 이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이혼했다는 걸 말하는 게 쪽팔린다는 생각도 했었고,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싫어서 부모님이 행복하게 사시는 척 거짓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했으니… 아빠의 뇌경색 발병이었다.


2010년 12월 겨울, 아빠가 쓰러졌다. 두 번이나 이혼을 한 아빠의 곁을 지켜 줄 아내는 없었다. 당연히 아빠의 간병은 나의 몫이 되었고, 회사의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아빠의 병간호를 위해서 연차를 다 쓰고, 갑자기 간병인이 전화하면 출근하다가도 뛰어가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아빠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커밍아웃을 하는 동성애자의 마음처럼 ‘이혼한 가정의 딸임’을 스스럼없이 밝히기 시작한 것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기를 원했다. 건강한 멘탈로 자란 내 삶에 대한 자신감도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번이나 이혼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에이~ 그건 너무 세잖아! 상대의 정신을 번쩍 들 만한 가족사를 밝히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뭔가 상대도 그에 상응할 만한 상처나 비밀을 털어놔야 할 것 같은 압박을 주기 때문에? 두 번이나 이혼했다는 말은.. 아빠가 둘인 건지.. 엄마가 둘인 건지.. 어떻게 그런 상황이 가능한 지 계산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구태여 ‘두 번’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던 적은 없다.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긴 글들을 써서 주변의 가까운 사람 몇몇에게 보여 준 적이 있다. 회사 동료이자 친한 동생으로 지내는 L양은 사실상 내 가족사에 대해 모르는 친구였다.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빠가 아프시다는 것 외에는? 구구절절히 쓴 글에는 엄마가 둘이었던 내 어린시절과, 오빠에게 맞고 컸던 10대, 아픈 아빠를 두고 키워주신 엄마와 진행했던 혼인무효소송 등... 타인에게 펼쳐 보이긴 힘들었던 삶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녀가 나를 곡해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볼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원고를 보내줬고, 흔쾌히 그녀도 (어떤 내용이 담긴지도 모른 채) 글을 읽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오늘 저 몇 번을 울었는지 몰라요."

"왜? 회사에서 누가 뭐라고 했어?"

"아뇨.. 과장님이 준 글 읽고선요."

"아…. 글은 잘 읽혔어?"


그녀가 갑자기 나를 와락 껴안는다.

키도 나보다 조그만 녀석이 까치발을 하고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예쁘게 커줘서 감사해요~ 과장님."


나를 울리는 말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제대로 커밍아웃하겠습니다.


“저는 두 번~ 이혼한 집의 딸이에요.”


삶의 지독한 상처가 담긴 글을 읽고도 

나를 따스히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반쪽 부모, 반쪽 결혼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