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만큼 어려운 이혼 커밍아웃.
10년 전만 해도 이혼을 했다고 하면 고개를 들고 다닐 수 없는 시대였다. 이혼이라는 단어 자체가 금기시되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요새는 이혼한 게 큰 흠이 되지 않는다. 이혼 수기에 대해서 담담히 글을 적은 책들도 시중에 이미 많고, 이혼 팁(?)을 발랄하게 이야기하는 영상들도 유튜브에 흔하다. 좋아하는 작가님이 낸 ‘이혼 일기’라는 책을 사서 읽은 적이 있다. 이혼을 했다는 것에 대해 숨지 않고 당당하게 밝히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그를 바라보는 시선도 유연해졌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는 어떨까?
여전히 어렵다는 게 내 생각이다.
부모님이 이혼하는 데 있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미세하기에 자식은 철저히 피해자가 된다. 그래서 부모의 이혼은 받아들이기 어렵다. 나 역시 그랬다. 이혼했다는 걸 말하는 게 쪽팔린다는 생각도 했었고, 괜히 색안경을 끼고 보는 게 싫어서 부모님이 행복하게 사시는 척 거짓말하곤 했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이 더 이상 통하기 어려운
사건이 발생했으니… 아빠의 뇌경색 발병이었다.
2010년 12월 겨울, 아빠가 쓰러졌다. 두 번이나 이혼을 한 아빠의 곁을 지켜 줄 아내는 없었다. 당연히 아빠의 간병은 나의 몫이 되었고, 회사의 배려가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아빠의 병간호를 위해서 연차를 다 쓰고, 갑자기 간병인이 전화하면 출근하다가도 뛰어가는 나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는 ‘우리 아빠가 이혼했다는 사실을 알릴 수밖에’ 없었다.
그때부터였다. 커밍아웃을 하는 동성애자의 마음처럼 ‘이혼한 가정의 딸임’을 스스럼없이 밝히기 시작한 것이.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의 나로 사랑받기를 원했다. 건강한 멘탈로 자란 내 삶에 대한 자신감도 일정 부분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두 번이나 이혼했다고 구체적으로 말하진 않는다. 에이~ 그건 너무 세잖아! 상대의 정신을 번쩍 들 만한 가족사를 밝히는 건 예의에 어긋난다. 뭔가 상대도 그에 상응할 만한 상처나 비밀을 털어놔야 할 것 같은 압박을 주기 때문에? 두 번이나 이혼했다는 말은.. 아빠가 둘인 건지.. 엄마가 둘인 건지.. 어떻게 그런 상황이 가능한 지 계산이 되지 않는 말이다. 그래서 구태여 ‘두 번’이라는 수식어를 붙였던 적은 없다.
가족사가 고스란히 담긴 글들을 써서 주변의 가까운 사람 몇몇에게 보여 준 적이 있다. 회사 동료이자 친한 동생으로 지내는 L양은 사실상 내 가족사에 대해 모르는 친구였다. 부모님이 이혼하셨고, 아빠가 아프시다는 것 외에는? 구구절절히 쓴 글에는 엄마가 둘이었던 내 어린시절과, 오빠에게 맞고 컸던 10대, 아픈 아빠를 두고 키워주신 엄마와 진행했던 혼인무효소송 등... 타인에게 펼쳐 보이긴 힘들었던 삶이 고스란히 적혀 있었다. 그녀가 나를 곡해하거나 색안경을 끼고 볼 사람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에 스스럼없이 원고를 보내줬고, 흔쾌히 그녀도 (어떤 내용이 담긴지도 모른 채) 글을 읽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그녀가 말했다,
"오늘 저 몇 번을 울었는지 몰라요."
"왜? 회사에서 누가 뭐라고 했어?"
"아뇨.. 과장님이 준 글 읽고선요."
"아…. 글은 잘 읽혔어?"
그녀가 갑자기 나를 와락 껴안는다.
키도 나보다 조그만 녀석이 까치발을 하고 두 손으로 내 목을 감싸 안았다.
"예쁘게 커줘서 감사해요~ 과장님."
나를 울리는 말이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제대로 커밍아웃하겠습니다.
“저는 두 번~ 이혼한 집의 딸이에요.”
삶의 지독한 상처가 담긴 글을 읽고도
나를 따스히 안아줄 수 있는 사람들.
그들이 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