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30분 정도는 자식을 위해 같이 서 있을 수 있잖아?
"얼마 전에 아버지랑 술 마시면서 물어봤어요. 제 결혼식 때 이혼한 엄마랑 같이 서 주실 수 있냐고. 아버지가 싫다고 하시더라고요."
뭐 이런 개뼉다구같은 경우가 다 있나 싶어서 말을 꺼낸 동생의 아버지에게 실컷 욕을 하려다 참았다. 끝까지 자신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부모를 둔 자식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 지 나는 안다. 이혼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선 결혼식까지 반쪽으로 만드려고 하다니... 화딱지 난다!!!
기껏해야 30분 아니던가? 그 30분을 왜 함께 서 있어주지 못하는 것일까? 먹여 살리는 것만이 부모의 역할은 아닌 것을.. 세상 제일 행복해야 할 결혼식 날 주변의 시선이 신경 쓰이고, 비어있는 자리가 눈에 밟힐 자식의 마음을 정녕 부모는 모르는 걸까? 그냥 나이만 든.. 모자란 어른들이 생각보다 많다.
내 오빠들도 아기 같은 아버지를 둔 덕에 반쪽 결혼식을 했다. 그중 큰오빠의 결혼식은 정말 컬투쇼에 나오면 대상을 받을 정도로 블랙코미디였는데 이 모든 사단 역시 아빠에게 있었다.
20년 정도 전의 일이다.
아빠는 이혼을 한 후, 내 친엄마와 재혼을 해서 가정을 꾸려 살고 있었다.
"제 엄마와 함께 결혼식에 계셔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혼기가 다 찬 큰 오빠가 정중하게 말했다. 아빠는 단번에 거절했다. 자기와 이혼을 하고 싶다고 한 여자와 같은 공간에 있을 수 없다는 게 이유였다. 거기에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다. 내 친엄마와 함께 오빠의 결혼식에 가겠다는 것! 그 조건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모든 경제적 지원을 끊고 죽을 때까지 볼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것!
아빠의 곁에서 일을 배우고 있던 큰 오빠에게 아빠와의 절연은 수입의 상실을 뜻하는 것과 같았다. 큰 오빠는 결국 아빠를 택했다. 친엄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라고 거부했지만, 독불장군 아빠를 이기지 못하고 오빠의 어머니 자리에 앉게 되었다.
큰 오빠의 결혼은 야외에서 진행되었다. 날씨가 화창했고, 풍선 인형들이 여기저기서 화려한 춤을 추고 있었다. 모든 게 완벽하다고 느껴졌던 식이 끝나갈 무렵 갑자기 한쪽에서 웅성웅성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오빠의 친 어머니가 한복을 입고 나타나신 것이다. 한 결혼식에 엄마가 두 명이 나타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오빠의 어머니는 “제가 진짜 엄마예요”라고 말씀하시며 곱게 한복을 입은 채로 등장했다. 내 친엄마는 말도 안 되는 상황에 놀라 급히 몸을 숨겼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얼굴이 화끈거린다. 어른들의 이기심으로 얼룩진 슬픈 결혼식이었다.
시간이 흘러, 작은 오빠가 결혼을 하게 되었다.
이미 큰 오빠의 결혼식을 겪은 작은오빠는 단호하게 말했다.
"제 결혼식은 아버지랑 제 엄마만 서실 수 있어요."
그럼 결혼식에 가지 않겠다고 아빠가 선언하자 오빠는 자신의 엄마만 모시고 결혼식을 했다. 아빠는 분해서 몇 일밤을 자지 못했다. 결혼식에 나도 가지 말라고 했다. 오빠는 이제 후레자식이라는 게 이유였다. 후레자식의 어원을 정확히 모르지만, 그때 아빠의 행동이야말로 후레부모가 아니었을까...??
엄마가 아빠를 설득하며 도와준 덕에 겨우겨우 작은 오빠의 결혼식을 갈 수 있었다. 아빠가 앉아있어야 할 자리에는 작은 아버지가 앉아 계셨다. 결혼식 날 오빠는 웃고 있었지만 속은 그렇지 않았으리라. 자신의 감정밖에 모르는 아빠들은 둔 오빠 모두 반쪽짜리 결혼식을 했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자식을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는 부모들을 보면서 불편함을 느꼈던 적이 있다. 세상 모든 부모가 희생하며 사는 듯한 대중적인 메시지가 거슬렸다. 철없이 굴고,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인 줄 알고 휘두르며, 가족을 사랑하지만 정말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사랑인 지 모르는 엄빠도 많다.
우리 아빠는 아마도 내 결혼식에 친엄마와 함께 서는 것을 거부할 것이다. 그래서 나는 결혼식을 아예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은 내가 자유분방하고 깨는 성격을 갖고 있어서 '식을 치르지 않고 결혼하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줄 안다. 근데 사실은 엄마 없는 결혼식은 상상할 수도 없을뿐더러, 내 입장에서는 너무 당연한 것을 아빠에게 부탁해야 하는 것 자체가 싫기 때문이다.
부모가 주는 상처는 어디에 말하기도 쪽팔려서 자꾸 가슴에 묻게 된다. 감당하기 어려운, 여러모로 최고급의 난이도를 지닌 아빠를 30년 넘게 옆에 둔 덕에 난 표현하는 사람이 되었다.
"아빠 엄마한테 손대지 마요."
"아빠가 그렇게 욕하면 내가 상처 받아요."
"내가 자식이라고 이렇게 막하면 안 되는 거예요."
아빠는 달라지지 않는데 나는 계속 말했다. 효과가 있던 것일까? 아빠는 미안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물론 쉬 용서해주지 않았다. 원치 않을 때는 마음이 풀릴 때까지 아빠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렇게나마 복수를 해야 앙금이 풀리는 느낌이었다.
그 결과가 하나도 달라지지 않을지라도 '드러내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드러내지 않으면 절대로 상대는 내 아픔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얼마나 깊게 베였는지는 '표정'에서, 철철 흘러넘치는 '피의 양'에서 상대가 가늠할 수 있다. 상대가 알 수 있도록 우린 더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
다시는 그렇게 깊게 나를 벨 수 없도록.
무언가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악! 소리라도 지르자.
"아빠는 남편으로는 정말 아닌 거 같아. 그냥 결혼하지 말고 살았어야 해."
아빠가 건강하던 시절 직언한 적이 있다. 저 말을 하기까지 수십 번 곱씹고, 아빠가 역정을 낼까 봐 심장이 터질 것 같은 상태로 말했는데.. 아빠는 별 말 아니라는 듯 표정을 지었다.
부모에게도 자격이 필요하다고 믿는다. 섹스를 해서 낳는 게 아니라, 새로운 생명체를 성숙한 마음으로 돌보고 키울 수 있는 사람만이 '부모가 될 수 있다'라고 여전히 생각한다. 30대 중반이 되어 결혼을 할 수 있고,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시점에서 나 자신에게도 냉정하게 묻곤 한다.
나는 준비되어 있는가?
아직 모르겠다. 어렵다.
이러다 실버타운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