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엄마, 나 남자 친구 생겼어
(엄마) 그래? 그럼 얼굴 좀 보게 밥 한 번 먹자.
대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내 모든 남친들을 만났다. 얘는 못생겨서 마음에 안 들고, 쟤는 턱이 뾰족해서 마음에 안 들고, 다른 애는 그냥 매력이 없고...
엄마 마음에 드는 남자를 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다.
나도 엄마가 만났던 남자들 얘기를 듣다 보면 맘에 드는 사람이 하나도 없으니 쌤쌤인 걸까?
(엄마) 난 진짜 너 남자 만나는 거 마음에 안 들어.
(나) 뭐가 또~
(엄마) 그냥, 너무 주변에 있는 사람을 쉽게 만나. 다른 사람들 보면 학력도 따지고 집안도 따진다는데...
(나) 난 그냥 집처럼 편안한 남자가 좋아. 집 있는 남자보다.
(엄마) 아니 그렇게 경제적인 걸 무시하면 안 된다니까? 너 1억 갖고 시작하는 거랑, 1억 없이 시작하는 거랑 하늘과 땅이야.
(나) 엄마 마음에 안 든다고 내가 지금 헤어질 순 없는 거잖아.
(엄마) 엄마가 헤어지라고 헤어질 것도 아니면서!!
(나)....
(엄마) 에이~ 그래 뭐 다 니 팔자야. 네가 좋다면 엄마가 어쩌겠어? 니 인생인데.
(나) 응.. 그래도 엄마가 말하는 거 항상 새겨듣고 있어. 나도 잘 생각할게.
(엄마) 그래. 엄마가 이러는 것도 뭐 다 욕심이지.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해.
‘멋진 엄마’와 ‘일반적인 엄마’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는 우리 엄마.
그런 엄마를 보고 있노라면 귀엽다는 생각마저 든다
(엄마) 근데 또 그렇게 돈 있는 집은 우리 집 콩가루 집안인 거 알면 트집 잡고 힘들게 하겠지?
(나) ㅋㅋㅋㅋ 그럴 수도 있지.
(엄마) 에효.. 속상하네 이럴 땐 진짜... 겨움이는 어디 내놔도 흠잡을 게 없는데. 진짜 내 딸이어서가 아니라.
(나) 그런 거 흠잡지 않는 집안에 시집가면 되지. 걱정 말아요.
단 한 번도 엄마에게 대든 적 없는 딸,
단 한 번도 딸에게 욕한 적 없는 엄마.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이상적인 건
내가 중학생이 된 후에 엄마를 만났기 때문이고
어느 정도 큰 내가 엄마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동생이 앙알앙알 대들어 엄마가 대노하고...
대성통곡을 하면서 쌍방으로 내게 전화하는 날이면
‘둘 다 왜 이럴까’ 싶다가도 그렇게 선을 넘나들 수 있는 일반적인 딸과 엄마의 사이가 몹시도 부러운 것이었다.
난 죽을 때까지 엄마에게 대들 수 없다.
그래서 더 좋은 건지는 아직까지는 모르겠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사이가 나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엄마가 처음으로 포근히 안아주던 순간을 기억한다.
키워주셨던 어머니가 나를 안아주셨던 적이 한 번도 없었음을 그때서야 깨달았다. 어릴 때 받지 못했던 사랑이 아쉽지 않을 만큼 엄마는 사랑해 줬다.
그 사랑으로 지금의 내가 있다.
(엄마) 다시 만났을 때 네가 엄마를 닮아서 너무 다행이었어.
(나) 그렇지. 내가 아빠보단 엄마랑 성향이 비슷하잖아.
(엄마) 어. 아빠랑 비슷했으면 벌써 도망쳤을 거야. 다신 너 안 봤을 거 같아.
(나)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행이다.
우리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이어서,
엄마는 나를. 나는 엄마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세상 가장 친한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난,
엄마 딸 할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