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에게 큰 상처를 주는 것보다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냈다.
어린 시절, 복수하고 싶었다.
상처가 감당 되지 않으니 어떻게든 분노를 표출하고 싶었다. 가출하거나 날라리처럼 살아볼까? 결과적으로는 나만 혼나고 끝날 일이었다. 그보다 더 효과적으로 아빠가 평생 잊지 못할 만큼의 고통을 주는 한 방이 필요했다.
‘그래, 엄마 아빠가 싸울 때 갑자기 뚜벅뚜벅 걸어가서 베란다에서 뛰어내리는 거야! 그럼 아빠도 이 모든 걸 그만하겠지.’ 아무 힘이 없는 10대라 나를 자해하는 방법 위주로 복수 리스트가 작성되었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억울했다. 목숨까지 버려야 한다고? 이 높은 베란다에서 뛰어서?
행복해지고 싶었다. 아빠를 아프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사실이었다. 그래서 ‘아빠로부터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겠다’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엄마를 내 힘으로 지킬 수 있도록, 원할 때 아빠를 끊어낼 수 있도록 경제적으로, 정신적으로 독립하고 싶었다. ‘절대 결혼하지 않을거야’는 생각이 ‘화목한 가정을 꾸려서 존경받는 아내로 살고 싶다’고 바뀐 것도 그 무렵이었다. 어린 시절의 상처가 내 삶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고 싶었다. “아빠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된 거야”라는 말을 읊조리며 사는 삶은 끔찍했다.
지금 생각해도 이 기특한 복수 방식은 이외의 결과를 낳았다. 아빠에게 한없이 자랑스럽고 대견한 딸이 되면서, 부녀 관계가 날로 좋아졌다. 두 발로 선 내 삶이 주체적이고 독립적일 수 있게 되니 부모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게 되었다. 지금에 만족했기 때문에 과거를 탓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내 것을 잃는 게 싫어서, 겁이 많아서 우회적으로 행한 복수는 결론적으로 성공이었다.
내가 행복해졌으니까.
부모님의 이혼은 선택할 수 없었지만 그로 인해 내가 불행해질 것인가는 선택할 수 있다.
복수심에 휩싸여 눈돌아가던 시절을 지나고 보니, 부모님이 이혼한다는 것보다 그게 가장 중요했다.
그 이후의 선택, 내 결정, 그런 것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