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겨움 Jan 27. 2020

우리 집의 ‘조금 다른 명절’

명절엔 항상 여행을 갑니다.

일 년에 두 번은 무조건 여행을 간다.

설날과 추석.

내게는 명절이 ‘여행을 가는 시기’로 정해져 있다.


요새야 명절에 맘 맞는 가족들끼리 여행을 가곤 하지만, 5~6년 전만 해도 명절에 여행을 가는 건 그리 흔한 모습이 아니었다.


“집에서 뭐라고 안 해?”


명절마다 혼자서, 친구랑 여행을 가는 나를 주변에서는 신기 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아무도 뭐라고 할 수 없지! 명절을 명절답게 보내지 못하는 가족은 ‘명절에는 꼭 큰 댁에 간다’ 거나 ‘성묘를 하러 가야 한다’는 규칙이 없다.


엄마는 명절마다 어두워졌다. 좋은 곳을 보며 여행을 가서도 마찬가지였다.


“명절이 되면 엄마가 잘못산 게 고스란히 드러나는 것 같아 우울해.”

“그렇지 않아. 우리는 우리만의 명절을 보내면 돼.” 내 말에 엄마는 크게 위로받지 못하는 듯했다.


명절엔 친척들이 모여 음식을 하고 서로의 안부를 묻고 돌아가신 조상님을 기린다. 나 역시 어릴 때엔 그런 (평범한) 명절을 보내곤 했다.

앉은 채로 이거 갖고 와라, 저거 갖고 와라 지시하는 남자들이 꼴배기 싫어서 입이 대빨 나온 채로 쿵쾅거리고 다니기도 했고, 음식을 준비하면서 전을 부치다가 손목이 떨어질 것 같은 고통도 느꼈다.


이혼 후에도 아빠를 따라서 할머니 성묘를 가곤 했는데, 아빠가 뇌경색으로 쓰러지신 후엔 딱 한 번 갔다.


할머니 성묘를 마지막으로 갔던 그 날!

굳이 그 날의 사건에 이름을 붙이자면 ‘치욕의 성묘(?)’ .. ‘배신한 그 남자(?)’ 라고 할 수 있겠다.

키워주신 어머니께서 아빠가 쓰러지신 후 몰래한 혼인신고로 인해 집 안이 두 쪽으로 갈리고 혼인무효소송이 한참인 시기였다.

서로에 대한 적대감이 극에 달했고, 누가 아빠를 차지하는가가 초유의 관심사였다. 아빠가 할머니 성묘를 가야 한다고 하도 보채서... 친엄마에게 운전을 부탁해 함께 갔다.


근데 그곳에 뙇! 하니 오빠들과 작은아버지가 있는 것이다. 가슴이 쿵쾅거리며 떨렸지만 애써 무시했다.오빠들과 작은아버지가 아빠에게 인사를 하러 오길래 자리를 피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게 불편해서 엄마 차에 타고 아빠를 지켜보고 있는데 대화의 끝에..


아빠가 오빠 차에 타는 게 아닌가!


당황한 나는 후다닥 내려서 아빠를 붙잡았다.

 “아빠, 오빠 차 타고 돌아갈 거야?”

“왜? 내 차에 타면 안되니?” 날 선 목소리로 오빠가 답했지만 무시하고 아빠만 간절히 쳐다봤다.


‘제발.. 아니라고 해줘. 아빠가 내 편임을 보여줘!!!!’


“응.” 무심한 아빠 답에 다리 힘이 풀렸다.


그 날, 엄마와 나는 둘이서 비참함을 안고.. 돌아왔다. 아빠가 가고 싶다고 해서 엄마한테 부탁하고 간 성묘였고, 아빠가 제발 도와달라고 해서 시작한 소송이었는데

같이 온 나를 버리고 오빠들의 차를 타고 집에 가겠다고 한 그 행동이 도무지 용납되지 않았다.

큰 오빠가 자기 집에서 형제들과 같이 점심을 먹자고 하니 그 차를 타고 돌아간 것이라고 나중에 아빠는 해명했다.


아니.. 의리가 있지. 사람이....


“니 아빠는 진짜 치졸해. 근데 옛날부터 그랬어.”

“생각해보면 아빠는 건강할 때부터 아플 때까지.. 원하는 대로 거의 다 하고 사는 것 같아. 지금도 이렇게 아픈 데 온 가족의 관심이 아빠잖아? 묘하게 아빠한테 늘 휘둘리며 사는 것 같아. 아빠가 원하는 대로.”


엄마와 나는 돌아오는 내내 아빠가 10년은 더 장수할 만큼, 아빠를 욕했다.



치욕의 성묘 사건(?) 이후로 난 아빠와 성묘를 가지 않는다. 그곳에서 가족들을 마주치는 것 자체가 내겐 고역이고 그런 고역을 감수하면서까지 성묘를 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아빠는 저쪽 식구들과 매년 성묘를 가고, 난 엄마와 동생과 여행을 간다.


“아빠. 낼 할머니 뵈면 내 안부 꼭 전해줘. 내가 보고 싶다고 해줘. 알겠지?”

“응~”

대답은 참 잘한다. 울 아빠.



이번 설에는 비행기를 미리 알아보지 못한 탓에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엄마의 캠핑카로 배를 타고 들어가서 정말 고즈넉하게 곳곳을 누비며 왔다.


설날 아침에는 캠핑카 안에서 떡국을 끓여먹었다.

“두 딸과 함께 이렇게 여행하니까 정말 행복해”  


엄마는 더 이상 명절에 우울해하지 않는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과거를 더 이상 묻지 않고 현재에 몰입하는 엄마의 건강함이 난 좋다. 우린 더 이상 아빠의 이야기로 반나절 동안 떠들지 않는다. 아빠의 존재가 엄마와 나 사이에 더 이상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대신 서로의 삶, 고민 등으로 조잘댄다. 아빠로 인해서 엄마와 내 삶이 휘청거리지 않는 지금이 감사하다.


우리 가족은 명절 때 항상 여행을 간다. 그 여행지에서 서로에 대한 추억을 쌓고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눈다.

2020년 나의 설날도 그러했다. 제주도 앞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서로의 손을 잡고 걷고, 지금의 우리를 사진에 담았다.


드라마 속 명절은 여전히 가족들이 모여 송편을 빚고 덕담을 나누는데...

우리 집은 21세기 미래형 명절을 보내고 있는 것인가?


뭐 좀 다르면 어때,

우리가 행복하면 됐지.


(속사정 모르는) 남들은 마냥 부러워하는 우리 집의 조금 다른 명절.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이 풍경이 참으로 좋다.


2020년 새해 떡국은 캠핑카에서 제주바다를 보며 꿀꺽







매거진의 이전글 관계의 끝에서 중요한 건 '어떻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