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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Jan 01. 2020

관계의 끝에서 중요한 건 '어떻게'

마침표를 어떻게 찍느냐, 우린 더 고민해야 한다. 

네이버 뉴스를 보다 '지켜야 할 것은 불행한 결혼이 아닌 사랑한 기억'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클릭했다. '결혼 이야기'라는 영화를 읽고 오마이뉴스 시민기자가 쓴 글이었는데 일목요연하고 명쾌했다.


자식에겐 부모의 이혼이 아닌 불행한 부모가 진짜 상처가 된다. 부모가 그렇듯 자식도 행복한 부모를 볼 때 가장 행복하고 그런 삶을 배운다. 그러니 최선을 다해 이른 결론이 이혼이라면 죄책감에 망설일 필요는 없다. 중요한 건 '어떻게'다.  -기사 중 발췌-


관계를 시작할 때 우리는 부단히 노력한다. 설렘은 그 모든 불편함과 인내를 견딜 힘을 준다. 그러나 관계의 끝에선 에라이 모르겠다 정신이 발동한다. 어차피 앞으로 볼 것도 아닌데 하는 마음과, 너도 이렇게 상처 받아라 하는 마음까지 합쳐져 지질하고 못난 마침표를 찍고야 만다. 


이혼은 부부간의 마침표가 아닌데, 대부분 그런 줄 착각한다. 부모와 자식 간의 마침표, 가족과 가족 간의 마침표, 형부와 처제 간의 마침표. 모든 관계의 끝을 동반하기 때문에 머리 아프고 어렵다. 가장 약자인 자녀는 도외시되기 쉽다. 그래서 상처 받는다. 누가 키울지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이 관계의 끝 후에 아이가 덜 상처 받기 위해 합심해서 노력할 것들에 대한 대화가 필요한데... 그런 대화를 이성적으로 하기엔 서로 생채기를 내느라 바쁜 게 이혼이다. 아이는 어떨까?  마침표를 찍을 생각도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는데 마구잡이식으로 '끝이 났으니 너도 인정하라는' 통보를 받는다. 그래서 이혼한 가정에서 큰 자식은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그들에게 자신은 아무런 존재도 아닌 듯한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키워주셨던 엄마는 아빠의 폭력과 폭언을 '자식들 때문에' 버텼다. 외도를 해서 나라는 존재를 데리고 왔을 때도 '자신의 가정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감내했다. 어머니의 뼈를 깎는 노력에도 아빠는 달라지지 않았다. 더 당당했고 더 거대 해져만 갔다. 결국 어머니는 20년의 결혼생활을 마침표 찍고, 이혼을 하셨다. 


난 아빠와 엄마의 사이에서 휘둘릴 것 하나도 없는 '다른 여자의 아이'였기 때문에 철저히 배제되었다. "넌 내 딸이 아니니까 함께 갈 수 없어."라고 엄마가 말해서 아빠 곁에 울며 겨자먹기로 남았다. 이혼이 진행되는 과정은 어른들의 푸념으로만 전해 들었다. 


20년의 결혼생활을 보답받기 위한 위자료 싸움이 3년 동안 진행되었고, 큰오빠까지 법정에 섰다. 아빠가 외도를 했고, 폭행했다는 것을 법정에서 증언했다. 엄마는 내 친엄마에게까지 연락을 했다고 한다. 아빠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지 증인을 서 달라고. 띠용! 그런 발상도 신기하지만 실행하고자 했던 시도에 박수를 보낸다. 그렇게까지 모든 걸 내던졌지만 최종 판결 때 원했던 만큼의 위자료를 받지 못했다고 전해 들었다. 법은 참 이상하다. 이혼을 하지 않겠다고 버텼던 아빠의 마음(?)을 높게 샀으니 말이다. 결혼을 아직도 신성한 언약으로 여기는 법정에서 이혼은 먼저 하겠다고 덤비는 쪽이 곱절로 힘든 싸움이다. 


친엄마는 '나를 곁에서 키우기 위해' 아빠와 재결합을 했지만, 아빠의 폭력이 시작되자 이혼하고 싶어 하셨다.


"겨움아. 엄마는 이렇게 못살겠어. 이혼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엄마, 난 이미 한 번 이혼을 겪었잖아. 나 대학교 졸업하고 나서 이혼하면 안 될까?"


엄마는 이혼하고 싶을 때마다 내 의사를 물었다. 200번은 넘게 이혼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뭐라고 엄마를 이혼하지 말라고 했나 싶기도 한데 어린 마음에 두 번 이혼한 역사를 지닌 가정에서 크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정말 내가 대학교를 졸업한 후 엄마는 이혼하셨다. 10년의 넘는 결혼생활이었다.   


엄마는 단 한 번도 '너 때문에 내가 산다'는 식의 발언은 하지 않았다. 이혼을 하면 죽을 때까지 엄마를 볼 수 없을 거라고 아빠가 으름장을 놓으면 콧웃음을 쳤다. "요새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엄마가 핸드폰으로 전화하면 연락되니까 걱정 마." 특유의 유쾌함으로 불안한 내 마음을 잠재워주었다. 


이혼이라는 선택 앞에서 늘 내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묻고 또 물어봐 주는 엄마가 있었기에 덜 상처 받았다. 엄마 아빠의 이혼을 내 탓이라고 받아들이거나, 과대 해석하지 않을 정신적인 성숙함을 갖출 수 있을 때 두 번째 이혼을 했다. 그 선택이 우리 모두가 행복해지기 위함이라는 걸 깨달은 후였기에 상처 받지 않았다. 



이혼 자체가 나쁘거나 틀린 선택은 절대 될 수 없다. 부부에게는 물론 특히 자녀에게 중요한 것은 어떤 모습으로 함께 살았는가이다.   - 기사 중 발췌-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최선을 다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했기에 현명하거나 옳지 못했던 순간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최선을 다했기에 '끝'이라는 결론에 도달했을 때 미련은 없었다. 





관계의 끝에서 누가 먼저 헤어짐을 고했는가, 무엇 때문에 헤어졌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누가 찼는가가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것도 아니고, 사소한 것으로 헤어졌다고 해서 그 관계가 사소했던 것도 아니다. 중요한 건 '어떻게'다. 끝이라는 지점에서 우린 서로에게 좀 더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맞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애썼던 시간들과 노력하던 나 자신, 상대를 토닥이며. 끝을 인정하는 자세. 그리고 진심으로 상대가 더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이 진짜 어른 아닐까?


"뭔가 짜증 나. 이렇게 헤어질 줄 정말 몰랐어. 근데 걔는 날 다 잊었나 봐. 엄청 행복해 보여."

"놓고 싶지 않은 것도 놓아줘야 어른이지. 그 사람이 네게 했던 진심 어린 순간들과 노력들만 기억하고 기분 좋게 보내줘."


친구의 말에 정신이 번쩍 든다. 그래. 어렵겠지만 난 관계의 끝에서 멋진 사람이고 싶다. 엄마와 아빠의 헤어짐을 보면서 아쉬웠던 것은 그런 부분이었다. 사랑했던 기억들까지 모두 잠식시킬 만큼의 치졸한 말들이 오가는 마침표의 순간들. 


"이래서 헤어지려고 했지"가 아니라 "생각해보니 이래서 내가 좋아했어. 10년이라는 시간을 노력한 보람이 있는 사람이야"라고 느껴질 수 있는 사람. 나는 관계의 끝에서 신중하게, 배려 깊은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함께 쌓아 온 시간에 대한 예의일테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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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글 쓰게 만든 '기사 원문 보기' : https://n.news.naver.com/entertain/article/047/000225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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