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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겨움 Jun 30. 2020

서른여섯의 이별

각자 견뎌야 한다.

- 그래서 난 그만하고 싶어. 이제.  


야무지게 말했다. 헤어짐을 고하고 있는데 반대편 내 시야에 정면으로 앉은 커플은 테이블 위에 손을 맞잡고 서로를 사랑스럽게 쳐다보며 속삭이고 있었다. 그 순간 그 커피숍 안에 있는 모든 남녀가 꼴 보기 싫었다. 나도 너희들처럼 그렇게 희망에 찼던 순간이 있어. 지금 이건 내가 원했던 모습이 아니야.  


어이없이 나만 울고 있었다. 누가 보면 채이는 여자처럼… 오빠는 이 당혹스럽고 황당하면서 기분 나쁠 상황을 견디고 있는데, 나는 결국 이런 상황이 왔다는 게 슬프고, 오빠에게 상처를 주는 내 모진 마음이 견디기 힘들어 눈물만 났다. 코를 킁킁~ 풀면서, 눈물을 계속 흘리면서도 할 말을 하는 사람. 그게 나였다.   


- 후회하지 않겠어?

오빠가 말했다. 헤어지자고 말한 후, 상대가 어떻게 나올지 수만 가지 걱정과 상상을 해왔는데 이렇게 차분하고 냉정한 모습은 예상 리스트에 없었다. 짐짓 당황했다. 후회하지 않겠냐라… 당연히 후회하겠지. 나는 미련이 넘치는 여자니까. 난 한 번 만나고 헤어진 적이 없는 여자라고, 늘 두 번 이상씩 만났지. 헤어지자고 해도 상대가 돌아오면 한 번은 더 만나는 게 나였어. 오빠도 그렇게 다시 시작한 거잖아. 근데 나보고 후회가 없겠냐고? 당연히 난 오늘부터 한동안 미친 듯이 후회만 할 거야. 그게 나니까.  


-응.

-그래. 그럼 이야기 끝났으니 일어나자.  


우린 늘 그래 왔듯 커피잔과 휴지를 쟁반에 담아서 테이블에 주고,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까지 하고 커피숍을 나왔다. 햇볕이 쨍~하게 세상을 감싸고 있는 훌륭한 날씨. ‘이별하기엔 너무 좋은 날씨야’라고 커피숍에 들어갈 때도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해보면 이별하기 적합한 날씨는 원래부터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어갈 땐 두 손을 맞잡고 들어갔지만, 커피숍에서 나오는 순간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간격을 두고 걸었다.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가 다 변해 버린 것이다. 2년 반의 긴 만남은 한 시간 안에 마침표를 찍었다. 연애의 잔인함은 그런 데에 있다.


댕강, 한 순간에 잘려 나갈 수 있는 사이.


오빠가 미팅 가기 전에 씻고 나가겠다고 해서 내 방에 함께 들어왔다. 집 안 곳곳엔 오빠의 물건이 가득했다. 정말 이별한 게 맞나? 실감이 나지 않았다. 오빠의 샤워 소리가 들리는 내내 가만히 소파에 무릎을 안고 쭈그려 앉아 있었다.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멍한 상태였다. 방 안의 적막함은 샤워기 소리 속에서 우는 한 남자의 흐느낌을 전하기 충분했다. 오빠가 울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던 나도 왈칵 울음이 터졌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지? 갑자기 머리가 너무 어지럽고 속이 메쓰꺼웠다. 사실은 아니라고, 그냥 장난친 거라고 말하고 싶어 졌다. 결국 이 관계를 난도질 한 나의 잔인함이 역했다. 토하고 싶었다.  


벌겋게 충혈된 눈으로 오빠는 나와서 아무렇지 않게 짐을 챙긴 후 나갔다. 평소처럼 난 배웅을 해줬다. “잘 다녀와.”  세상에, 잘 다녀오라니... 앞으론 오지 못하게 으름장을 놓고 그런 말을 뱉는 무심함이라니. 나의 무심함을 늘 힘들어했던 사람이었는데, 마지막까지 이토록 경솔하다니..  


내 방 곳곳엔 그림이 걸려 있다. 어느 순간 모으고 보니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뒤에서 안으면서 별을 보는 모습,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손을 잡고 숲을 거니는 모습과 같은 비슷한 느낌의 그림이었다. 인생의 짝꿍을 만나서 그 짝꿍과 함께 낄낄거리면서 사는 모습을 나는 항상 꿈꾸었다. 오빠는 샤워를 하다 욕실에 걸려 있는 그 그림을 보고 눈물이 터졌다고 말했다.  


- 나도 겨움이랑 그런 모습으로 늙고 싶었어. 그래서 정말 많이 노력했어.  


그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함께 오로라를 보던 날 그는 내게 청혼을 했다. 함께 하는 삶을 처음으로 꿈꾼다며 말했다. 내 요구에 맞춰 그가 얼마나 뼈를 깎는 노력을 했는지 누구보다 아는 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더 이상 그를 ‘모습 그대로’ 존중하면서 관계를 유지할 자신이 없었다.  


이별 후 오빠는 단 한 번도 내게 먼저 연락하지 않았다.

내가 이십 대였다면 야속했을 거다. 어쩜 그렇게 연락을 안 할 수 있지? 날 사랑하지 않았던 걸까? 하고, 헤어지자고 내가 말해도, 상대가 매달려줘야 날 정말 사랑했던 거라고 그때는 믿었다. 감정은 표현할수록 더 가벼울 수도 있음을, 표현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진심의 무게가 더 묵직함을 삼십 대가 돼서야 알게 되었다. 단 한 번도 연락을 안 해 준 오빠 덕(?)에 어느 날은 평온하게, 어느 날은 내가 차인 사람처럼 보일 정도로 어이없이 펑펑 울다가, 어느 날은 술로, 어느 날은 넷플릭스로 시간을 채울 수 있었다. 오롯이 내 감정에 집중할 수 있도록 그는 끝까지 배려해줬다. 마지막까지 좋은 사람이었고, 그런 사람을 사랑했던 2년 반의 시간이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게 해 줘서 고마웠다.  


이별은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아픈 것이었고,

사랑했던 사람의 모습이 사라지는 경험은

죽음과 맞먹는 상실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도 난 잘 견디고 있다.

건강하게 이겨내고 있는 듯하다.


그 사람도 그럴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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