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가장 아름다웠던 장미를 두고 왔다.
적막한 밤, 사하라 사막에 누워있다. 회사를 휴직하고 나선 배낭여행 길에 엄마가 잠시 동행하기로 했고 우리는 모로코에 왔다. 사막을 보기 위함이었다. 대학교 시절, 요르단의 페트라 사막을 본 이후로 사막을 보는 것은 두 번째였다. 아, 중국에서도 본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그건 별로 카운트하고 싶지 않다. 두 번째 사막이었다.
사막에서만 할 수 있는 허세 중 하나가 ‘밤에 모래 위에서 자는 것’이다. 한낮의 뜨거운 열기가 식은 밤의 모래는 쾌적하다. 바람에 한 올 한 올 날아갈 수 있는 가벼움을 지녔다. 손으로 툭툭~ 털면 미련 없이 떠나기에 몸을 뒹굴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엄마와 함께 허세를 부리기 위해 사막 위에 매트를 깔고 누웠다.
“엄마랑 이렇게 함께 있어서 행복해.”
“엄마도 너무 행복하다.”
수십, 아니 수백 개의 별들을 하나씩 살펴보았다. 저건 무슨 자리지? 오, 오리온자리다. 저건 큰 곰자리 인가? 엄마, 저 별자리는 뭐 같아? 와씨, 달이야 저거? 달이 유난스럽게 크다. 그래서 별들이 덜 보이는 듯하다. 누가 억지로 당겨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의심스러운 달이 뜬 밤이었다.
“엄마, 근데 저 달은 보름달도 아닌데 어떻게 저렇게 크지?”
“...”
엄마는 소리 없이 잠들었다.
홀로 가만히 누워 별을 쳐다보다, 달을 바라보다, 사막 끝 보이지 않는 어둠 속을 직시하다,
“석진아~” 툭, 우연처럼 그의 이름을 입 밖으로 꺼냈다. 나는 그를 4년 전에 떠났었고, 그는 나를 3개월 전에 떠났다. 우린 그렇게 한 번씩 다른 사람이 좋아졌다고 말하고 떠났다. 공평하게. 누가 누굴 원망할 수 없는 사이였다.
4년 전에 헤어진 그를 다시 만나겠다고 말했을 때, 주변 반응은 가지각색이었다.
“그래. 네가 만났던 사람 중에 걔가 제일 괜찮았어. 잘 되었다.”
“떠난 널 다시 받아준다고? 혹시 복수하려는 건 아닐까?”
“그냥 새로운 사람 만나. 왜 다시 옛사람을 만나려고 해?”
걱정 어린 시선들이 많았지만 후회는 없었다. 가장 순수하게 나를 좋아해 주고, 힘들었던 시절 묵묵히 내 곁을 지켜줬던 그 사람 말고는 누구와도 한 평생을 살 자신이 없었다. 이번 생은 그 사람 곁에서 만족할 수 있겠다고, 이 사람 저 사람을 만난 후에야 깨달았다.
‘장미가 그토록 소중한 건 네가 들인 시간 때문이야.’
어린 왕자의 이 구절이 너무 좋다며, 연애하던 시절 그에게 편지를 써준 적이 있었다. 내가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그의 sns에는 이 문구가 올라왔다. 그는 우리가 서로를 길들인 시간 속에 허우적대고 있었고, 난 더 예쁜 장미를 찾고 싶은 마음에 흘러 다니던 때였다.
사하라 사막 위에 누워
운 좋게 찾았던, 손쉽게 놓아 버렸던, 오랫동안 후회했던, 스스로 내 곁을 떠나버렸던, 내 인생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생각했다.
안녕...
눈을 감는다. 쌔근대며 자는 엄마의 소리를 더 듣고 싶어 몸을 돌려 엄마를 쳐다보고 누웠다. 여전히 달은 비이성적으로 크고 별들은 소곤대듯 반짝인다. 행복하다. 사하라 사막에 올 수 있어서, 눈에 담고 떠날 수 있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