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불완전하다는 걸.
당신의 사랑은 ‘반짝반짝 빛나는’ 모습인가요?
‘사랑’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따스함과 떨림을 느낀다. 그러나 사랑은 때론, 마음을 베는 칼이 될 수도 있다.
난 누군가를 사랑하면서 그가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 있도록 두는 넉넉함과 포용력을 갖춘 적이 없다. 말투가 거슬리면 “그렇게 말하지 말라”라고 탓했고, 이해하기 어려우면 지리멸렬한 말싸움을 이어갔다. 사랑한다는 말로 아름답게 내 이기심을 포장해서, “사랑하니까 그런 거야,” “사랑하는 사람한테 어떻게 그래?”라고 말한 적은 없었을까?
있었을 게다. 분명히.
이 소설을 몇 번이나 읽고, 또 읽었던 이유는
그들의 사랑이 눈부시게 빛나기 때문이다.
쇼코와 무츠키는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예쁜 신혼부부다.
그리고, 특이한 만남이다.
쇼코는 그림 속 화가 아저씨에게 노래를 불러주고, 위스키를 병째로 마시는 알코올 중독자에 우울증 환자다.
무츠키는 의사면서 다정다감하게 집안일을 맡아하는 일등 남편감이다. 단 하나만 빼고.
그는 쇼코와 섹스를 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등에서 콜라 냄새가 나는 ‘곤’이라는 대학생 남자 애인이 있다.
무츠키를 위해서 쇼코가 하는 집안일이라곤 단 하나, 무츠키가 잠자리에 들 이불을 다림질하는 것이다. 쇼코는 이 일을 정말 집중해서 멋지게 해 낸다.
무츠키는 그런 쇼코의 등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소름 끼치게 좋다.
무츠키는 쇼코가 해달라고 하는 ‘곤과의 만남 이야기, 곤과 싸운 이야기, 곤과 섹스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한다.
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의 연속인가,
그럼에도 둘은 서로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존중하고 누구보다 행복한 일상을 꾸려나간다.
톡 하고 건드리면 와장창 무너질 것만 같은 아슬아슬하고 완벽한 행복에 쇼코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그들에게 ‘아이를 나으라고’ 부모님들의 성화가 강해지면서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한다.
헤어짐 밖에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결국 서로가 선택한 것은 ‘상대’다.
쇼코는 무츠키를 위해, 무츠키는 쇼코를 위해 선택하고 결정한다.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쇼코의 가장 친한 친구에게 고백하는 무츠키의 마음도 쇼코를 위한 것이었고,
시험관 애기를 만들기 위해 산부인과를 찾아가 상담을 받는 쇼코의 행동도 모두 무츠키를 위한 것이었다.
그 결정 속에 자신의 이기심이나 상대에게 바라는 마음 따위는 없다.
너무 순수하고 정갈한 배려심에 가슴이 저리기까지 하다.
새드엔딩으로 끝나야 될 것 같은 이 소설의 끝은 해피엔딩이다.
쇼코다운 모습으로, 무즈키다운 모습으로 이 소설은 비현실적인, 그래서 더 아름다운 엔딩을 맞이한다.
사랑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소설의 번역가가 책 뒤에 말했듯이 누가 봐도 서로에게 상처가 될 수밖에 없는 말도 안 되는 만남 속에서
꽃을 피우고 서로를 보듬은 둘의 사랑은 경이롭다.
둘이 함께 있을 때, 각자가 지닌 아픔이 더 이상 드러나지 않는 모습인 게 정말 빛나는 만남이 아닐까?
너그럽고 따스하고 똑똑한 사람과 사람이 만났을 때 완벽한 만남이 이루어지는 게 아닌 것이다.
세상이 모두 등을 돌려도 절대 내 부족함을 부족하다고 여기지 않을 누군가가 내 옆에 있을 때, 우리는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상대가 가장 좋아하는 최선의 것을 건네는 마음,
우린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을 ‘나와의 관계에서 허락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건 아닐지.
틈이 있기에, 빛이 들어올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반짝이는 모든 것들은 불완전하다.
사랑도, 만남도, 인생도, 그 덕에 반짝일 수 있는 것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