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19호실
나의 ‘19호실’은 어디일까.
내가 사랑해 마지않는 도리스 레싱의 단편소설 ‘19호실로 가다.’에는 4남매를 키운 수잔의 공간 ‘19호실’이 나온다.
수잔은 살림과 아이들의 양육에 전념하기 위해 능력을 인정받던 회사를 그만둔다. 그 이후 공허함과 답답함을 느낀 수잔은 어느 허름한 호텔의 ‘19호실’을 빌려 매일같이 드나들며 온전한 자유를 느낀다. 그 ‘19호실’안에서 수잔은 딱히 하는 것이 없다. 그냥 가만히 있을 뿐이다. 그것만으로도 수잔은 해방감을 느낀다.
엄마가 되면, 정신적으로도 삶의 영역이 허물어질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내 공간은 사라지고 집안은 발 디딜 틈없이 아이의 영역이 되어버린다. 그나마 아이가 가만히 누워있을 때라면 모를까, 기어 다니고 걸어 다니면서부터는 꽃병 하나도 맘에 드는 곳에 제대로 두지 못하고, 아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짐들을 허겁지겁 쌓아놓기 바쁘다.
아이의 손이 닿을 수 없으면서 완벽히 내가 컨트롤 할 수 있는 공간. 내가 소리를 지르고, 펑펑 소리 내어 울어도 아무도 들어올 수 없는 공간. 가끔은 쪽잠도 자고, 어느 광고 카피에서처럼 ‘세상에서 제일 작은 카페’가 되는 나의 공간.
나의 ‘19호실’은 바로 내 차 안이다.
출퇴근 시간이 가는 데만 1시간이 넘는 거리여서, 자연스레 나는 차 안 생활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었다. 기분이 울적한 날은 신나는 노래를 틀고 노래방에라도 온 것처럼 크게 따라 부르며 스트레스를 풀고, 새벽 여섯시 반, 머리가 깨어있는 오전 출근 시간에는 영어공부 어플을 틀어놓고 생산적인 시간을 보낸다. 퇴근 시간에는 친구와 친정엄마와 전화통화를 하며 그간 쌓인 이야기 보따리를 풀기도하고, 회사에서 화가 나는 일이 있으면 혼잣말로 감정을 정리한다. 주말, 휴가를 빼고는 하루 2시간 이상은 꼬박 차 안에서 보내기 때문에 나는 그 시간이 매우 소중하며 또한 그시간들이 있었기에 나는 무너지지 않고 회사를 다니면서 육아를 할 수 있는 균형을 맞출 수 있었다.
운전면허를 따고 첫 차는 새 차로 사는 것이 부담스러워서 중고로 산 내 조그만 차는 나를 데리고 어디든 가주었다. 제주의 이 곳 저 곳, 바다로 들판으로 때로는 빗속을 뚫고 무사히 목적지에 데려다주며, 술에 취한 나를 대리기사님과 함께 안전하게 집으로 모셔다 주었다. 6만 킬로미터일 때 산 내 차는 3년이 된 지금 벌써 13만 킬로미터가 되도록나랑 발맞추어 달려왔다.
운전석에 앉은 나는 못 할 게 없다. 그 안에서 나는 혼자일 때는 엄마의 본분을 잊고 신나게 도로를 달린다. 때로는 육아에 지쳐 집 안 어느 곳에서도 기분을 정리할 수가 없을 때, 차 키를 들고 조용히 나가 차 안에서 눈물을 훔치고 들어온다. 집 근처에 있는 카페의 드라이브 스루를 통해서 산커피는 그대로 차를 몰고 바다로 달려가 주차하면, 세상에서 제일 뷰가 좋은 프라이빗한 1인용 카페가 된다.
집에서도 나만의 공간을 만들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지금은 아이가 한창 호기심도 많고 클 때여서 당분간은 집 안모든 곳이 아이를 위한 공간으로 두기로 결정했다.
나중에 바람이 있다면, 언젠가 아이가 글씨를 읽고 엄마를 닮아 책을 좋아한다면, 작은 방 하나를 아이와 나를 위한 서재로 만드는 것이 꿈이다. 벽 하나를 통째로 책으로 빼곡히 메워놓고 책상에 마주앉아 혹은 기대어 누워서 각자 좋아하는 책을 마음껏 읽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주말을 보낼 수 있는 그런 공간.
나의 ‘19호실’은 지금 현재로써는 내 차 안의 팔 뻗으면 사방이 다 닿이는 딱 그 정도의 넓이면 충분하다. 공간의 넓이가 아니라, 그 안에서 내가 느끼는 편안함의 정도가 중요한 것이니까. 언젠가 차를 떠나 보낼 날이 오겠지만, 그 때까지 안전하게 나만의 ‘19호실’이 되어주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