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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스 Jan 02. 2024

포대기와 돌담길(10)

엄마가 바라는 모순

고통을 대신 가져가 줄 수 있는 기술이

세상에는 왜 아직 없을까.


돌 즈음에 아이들이 겪는다는 돌치레를 우리 아이도 제대로 겪고 있던 날이었다. 마침 회사 일이 바쁠 때여서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야만 했고, 알림장의 사진들마다 우울하고 힘없는 아이의 표정을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지는 듯 했다. 태어나자마자 예약했던 스튜디오 돌 촬영은 아이의 컨디션 난조로 결국 한 달 뒤로 미루었다. 겨우 10컷 찍었을 무렵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고, 옷을 갈아 입히자마자 기저귀가 셀 만큼 설사를 심하게 했다. 이런 상태에서 엄마인 나는 사진 한 장 건지자고 아이에게 딸랑이를 흔들며 웃으라 강요했다니. 심한 자괴감에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동네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떡 집에서 찾아온 돌상 떡은 그대로 가져와 냉장고에 처박혔고, 조금이라도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에 돌상에 올리려고 산 새 명주실은 그 자체가 모순이었다.


그리고 며칠 뒤,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이끌고 회식에 참석해야만 했다. 퇴근하며, 혼자서 아이를 케어할 남편에게 미안하다고 연락하면서도 마음은 노심초사 걱정투성이였고,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연락하라고 거듭 강조했다. 다행히 회식 장소는 집에서 차로 10분 거리였고, 나는 술 대신 생수만 들이키며 타들어가는 속을 달랠 뿐 이었다.


그 때가,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 원래 가던 소아과말고 유명하다는 소아과로 가서 처방 받은 항생제가 아이의 몸에 부작용을 일으켜 아이는 분유만 먹으면 위로는 토하고, 아래로는 설사를 하던 시기였다. 특히 밤에는 그 증상이 더 심했는데, 난 이런 상황에서 회식에 참여해야 했던 ‘워킹맘’이었던 것이다.


30분 정도가 지났으려나. 왁자지껄한 분위기 속에서 노심초사 휴대폰만 바라보던 찰나에 남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언제 올 수 있냐고. 아이가 많이 아프다고. 지금 바로 간다고 말했다. 아이가 아픈데, 회식 참석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짓이었는지 내 스스로 사실 확인을 하며, 부리나케 집으로 향했다. 시동을 끔과 동시에 차에서 내려 들어간 집 안은 난장판이었다.


이불 곳곳에 구토 자국이 뒤엉켜있고, 젖병 몇 개는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었으며, 기저귀들은 사방팔방에 던져져 있었다. 아이는 이제 더 이상의 힘도 남아있지 않은 표정으로, 남편은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현관으로 들어서는 나를 보고 있었다. 그 때의 내 표정도 상상이 간다. 아마 거울을 봤었다면 금방이라도 무너져 버릴듯한 얼굴이었겠지. 대충 손만 씻고 아이를 업고서 그 밤을 어떻게 보냈는지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 전에 고열로 응급실에 갔었을 때 아이가 너무 고생한 기억이 있어서 다시는 왠만해선 응급실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열은 심하지 않아서 아이에게 해열제를 먹이고 아침이 밝아오자마자 수액을 맞을 수 있는 어린이병원으로 향했다. 아이의 작은 손 때문에 주삿바늘이 더욱 크게 보였다. 그 작은 손에 또 다시 굵은 주삿바늘을 꽂았다. 아이의 얇은 혈관을 제대로 찾지 못해 몇 번이나 바늘이 피부 속에서헤맸다. 고통에 울부짖는 아이의 몸을 흔들리지 않게 꽉 조여 안으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미안해. 괜찮아. 미안해. 괜찮아.” 아이에게 속삭이는 것뿐이었다.


얼마나 앞 뒤 맞지 않는 말이었나. 다행히 수액이 들어가면서 아이는 진정이 되었고, 1인실에 달려있는 TV로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을 틀어주자 침대 위에서 아이는 내 팔을 베고 쌕쌕대며 급하게 잠이 들었다.


혹여나 잠도 체할 세라 나는 아이의 자는 모습을 끝없이 지켜보았다. 수액이 다 들어가고 아이가 회복세를 보여 바늘을 다시 뺄 때까지 나는 1분도 잘 수가 없었다. 이 순간이 너무 소중하면서도, 절망적이었고, 또 이런 자격 없는 엄마에게 온 아이가 너무 과분한 마음이 들었다.


돌치레가 제대로 관통했었던 그 즈음은 나에게 매일 매일이 모순 덩어리였다. 일을 해야 돈을 벌고 아이를 잘 키우지 하고 출근하면서도, 회사에서는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마음은 온통 콩밭에 가 있었다.

엄마에게는 아들이 제일 소중해 매일같이 말해주면서도 회식 하나 불참하지 못하는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첫 번째 생일을 성대하게 치러주고 싶은 욕심에 아들의 컨디션 하나 보살피지 못하는 엄마라는 내가 어불성설이었다.


세상에는 왜 대신 아파할 수 있는 기술이 아직 없을까.

자식의 고통을 대신 가져올 수만 있다면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내가 그 고통을 사 올 것을.


이 말도 모순이다. 하지만 간절한 모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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